밥차 때문에 멘붕이 왔다

디스이즈 컴페티션!

by 아임유어엠버

드라마PD들이 모여있는 오픈채팅방에서 밥차를 추천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어느 밥차가 괜찮았더라?. 휴대폰 메모의 기록들을 찾다가 이런 걸 발견했다.

2019년 2월 1일
‘ㅅ’ 밥차. 현금 7000원 카드 7700원. 저녁 60인분


촬영을 할 때면 식사를 밥차에서 하는 날이 많았다. 근처 식당에 가서 따로 밥을 먹으면 집합하는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밥차를 불렀다.


제작부 입장에서는 밥차를 부르는 게 마이너스였다.


대충 몇 명 쯤 먹겠다 싶어서 주문을 해두면 밥차의 한끼 식비가 비싸다고 편의점에서 따로 사먹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시켜먹거나 밥을 안 먹겠다고 하는 스탭들이 꼭 생겼다. 그렇다고 많이들 안 먹겠지 싶어 적은 양을 주문해두면 이번엔 다들 먹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밥과 반찬이 모자르는 일이 생긴다.


밥차들 중에서도 ‘ㅅ’ 밥차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아주 끔찍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그날은 대구의 어느 장례식장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전의 새 건물이었기 때문에 장례식장 안에서 식사를 하려면 병원 측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병원 관계자는 혹여나 음식이 벽에 튀거나 공간 자체에 냄새가 배면 안 되서 밥차를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그걸 겨우 설득해 건물 밖 지상에 차를 주차하고 음식 통을 직접 옮겨 장례식장 안에서 식사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ㅅ’ 밥차 사장님이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셨고, 식사준비도 착착 진행됐다. 별 문제가 없겠지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스탭들이 줄을 서서 스스로 배식을 받는데 반쯤 지나갔을까, 밥과 반찬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것도 감독님 차례에서 밥이 똑 떨어지고 말았다. 바로 조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스탭들은 밥을 먹으라는 거냐며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우리 부서 상사까지 책임을 내게로 떠넘기면서 내 머릿속은 멘붕이 됐다. 스탭들이 밥 퍼가는 양을 왜 계속 체크하지 않았냐는 거였다. 상사는 바닥이 보이면 얼른 음식을 추가 공급해와야지 뭐하고 앉아있냐고 소리쳤다. 마치 자기는 지금 이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선을 긋는 걸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여러 일거리가 몰아칠 때마다 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당시 우선순위를 따져보았을 때 내 결정은 얼른 밥차로 가서 사장님께 추가 음식을 받아오는 거였다. 문제는 스탭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거였다. 밥 달라고 난리인 것은 둘째치고, 돈 낸 걸 환불해달라, 너 때문에 밥을 늦게 먹어야 하지 않느냐, 왜 밥을 조금만 주문했냐 등등 하소연과 함께 한숨과 거친 말들까지 오갔다.


그들의 닦달을 듣는 건 매우 성가시면서도 마음의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이기적인 내 상사는 스탭들의 불만을 듣기 싫다며 본인이 반찬을 더 받으러 가버렸다. 나를 굶주린 스탭들의 먹잇감으로 던져둔 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들을 진정시킨 후, 골똘이 생각에 잠겼다. 사장님은 분명 내가 주문한대로 60인분을 준비해오셨다고 했고, 실제 스탭의 수는 60명이 채 안됐는데 왜 밥이 모자라는 지 이상한 일이었다.


알고보니 사장님이 멋대로 50인분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지난번엔 예상보다 밥이 많이 남길래 이번에도 남기면 아까우니까 밥을 조금만 준비해왔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럼 50인분을 가져와놓고 돈은 60인분을 다 받으려고 했단 말인가!


나는 사장님에게 부당한 점을 따졌다. 그리고 금액 딜을 해서 제작비를 아꼈다. 그리고 밥이 모자라 늦게 먹게된 스탭들에게는 밥값을 2000원 할인해 5000원만 받았다. 나머지 금액은 제작비로 충당해야했지만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장님께 지금 당장 가능한 반찬을 부탁드렸다. 사장님은 급히 계란후라이를 몇 십 개 만들어오셨고 스탭들은 방금 막 한 계란후라이에 화를 풀었다.


"디스 이즈 컴패티션!"


제시가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한 말은 비단 '디스'를 위한 유행어만은 아니다. 정말로, 사회는 전쟁터이고 일을 하는 과정에는 경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은 동아리가 아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보다는 견제하고 잘못을 들추어내고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기에 '팀'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도우며 지내면서도 내 밥그릇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걸 잘 해내기에 나는 단단하지 못했고, 남들보다 약했고 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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