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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n 25. 2020

"내 나이? 3만 살!"

드라마를 보고서4

“그런데... 몇 살이세요?”


요즘 내가 만나는 홍보팀 직원들이 이 질문을 뱉을 때면 불쾌해진다. 대체 일 이야기를 하는데 왜 그게 궁금한데?


그들이 내게 나이를 묻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정말로 궁금해서. 둘째, 나이를 알고 나면 친해진다고 생각해서. 셋째, 내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걸(혹은 많다는 걸)  확인하고 우위를 점하고 싶어서.


대개 둘째 아니면 셋째 이유로 나이를 묻는다.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나이를 듣고 나면 보이는 반응으로 알 수 있다. “더 어려보여요” 혹은 “동안이에요”라는 형식적 인사를 하면 둘째 유형에, 말을 은근 슬쩍 놓거나 “라떼는--”이라며 태도가 확 바뀌면 셋째 유형에 가깝다.  


실제로 내가 본인들보다 한참 어리다는 걸 안 어느 홍보팀 직원들은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띄면서 마치 자신들이 ‘인생의 선배’로서 해줄 말이 많다는 듯 으스댔다. 한순간에 관계를 나이 기준으로 뒤엎으려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나이를 묻고 이전과 달라진 표정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제일 기분 나쁜 것은 본인의 나이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치에 근거하면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본인 나이를 함께 밝히는데, 그 이상 나이인 사람들은 함구한다. 나는 상대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개인 신상을 물어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들의 나이를 알 순 없지만 그들이 40세 전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년 전 해외 패키지 여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줌마들끼리 내 나이를 두고 설왕설래를 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내 또래 여행자들의 나이 서열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용기있는 아줌마 한 명이 불쑥 내게 다가와 나이를 물었다.


“우리끼리는 26~27정도 됐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맞아?”


그냥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라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예상한 대로라면 어쩔 것이고 또 그게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고 숨길수도 없다. 내 나이가 흉도 아니고 비밀도 아닌데 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자조 섞인 마음이 들어서다. 내가 스물 아홉이라고 말하자 그 아줌마는  깜짝 놀라며 답했다.


“어휴, 왜 이렇게 많이 먹었어!”


그러곤 특종을 얻어냈다는 듯 아줌마들 무리로 되돌아가 알아낸 것을 퍼트린다. 아니, 자기들은 50이 넘었으면서 누구더러 나이를 많이 먹었대? 누군가에게 굳이 들을 필요 없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아주 더럽다. 갑자기 십 몇 년 전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 속 삼순이가 된 것 같다. 아참, 그때 노처녀로 나왔던 삼순이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한국인들은 나이를 중시한다. 나이로 선입견을 갖거나 사람의 언행을 판가름 짓는다.


그걸 말해주는 드라마가 바로 2018년에 나온 tvN <나의 아저씨>였다. 조금 엉뚱한 해석인가 싶지만 <나의 아저씨>는 나이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제 나이가 삼만살인 것처럼 살아온 21살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진짜 자기 나이로 살게 되는 이야기’이면서 ‘대학도 안 나온 21살 여자라고 무시하는 사회적 시선에 한방 따끔하게 멕이는 드라마’다.

 

내가 21살이기만 할까. 한번만 태어났으려고. 내 생에 60살쯤 살았다 치고 500번쯤 환생했다 치면 한 3만 살쯤 되려나?


극 중 이지안의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첫째, 그녀는 21년 세월이 3만 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둘째, 나이는 왜 물어봐?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라 이것들아!   

 

이지안에게 나이를 물으며 은근슬쩍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는 직장 상사가 있는가 하면, 박동훈(이선균 분) 처럼 그녀가 삼만살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을 아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삼만살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지만 삼만살인 여자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상사도 없다.

 

사설이 길었다. 암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이 좀 그만 물어보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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