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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Aug 04. 2020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만난 사람 02. 휴대폰 서비스센터 친절 직원

길동역 사거리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있는 ‘그분’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 사람이다. 세상에 그분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이리 혼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사’다. 


그분은 휴대폰 초기화 담당 안내 직원인데, 엔지니어링 서비스 코너와 별개로 마련된 창구에서 근무한다. 휴대폰 용량이 32기가바이트인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은 너무 적은데다가, 금세 용량이 꽉 차 버려서 서비스센터에 들른 참이었다. 번호표로 안내받은 엔지니어는 엄마의 하소연에 매우 불친절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식의 발언으로 엄마를 대했고, 엄마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자 “이건 고칠 수 없다”고 답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본 나는 엄마를 데리고 그분을 찾아갔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나와 가족들은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그는 앞서 온 노인 손님들과 대화 중이었다. 부서에 직원들은 여러 명인데 다들 서 있기만 하고 그분만 일을 하는 듯 했다. 긴 기다림에 지칠 즈음 우리 차례가 되었다. 엄마와 나는 앞서 당한 엔지니어의 억울한 대우를 보답받으려는 듯, 휴대폰의 증상을 설명한 후 질문을 퍼부었다. 그분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를 위해 몸을 기대 눈을 맞추며 상세히 설명했다. 


말이 빨랐지만 유창했고, 쉬운 어휘와 비유를 써서 이해가 쏙쏙 됐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휴지통을 비우지 않아서 용량이 줄어들지 않은 거에요.어머님, 지금 같은 상황은 댁에서 쓰레기가 나왔는데 밖에 안 버리고 현관에 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는 엄마가 물었던 걸 또 물어도 짜증내지 않고 답했다. 


어느 라디오에선가 그랬다. 부모님이 답답한 건 나를 키우기 위해 희생해서라고. 그러니 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행동이 조금 느려도 이해해주라고. 


엄마 덕에 요즘 들어 이 말을 실감한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노안이 왔다며 글씨를 보기 전에 꼭 돋보기를 찾아 쓰신다. 외출할 때도 돋보기를 안 챙기면 불안해하신다. 내가 방금 전에 설명한 내용을 ‘뭐였지?’라며 다시 물어보시거나, 같은 말을 홀로 다르게 이해하시고는 ‘언제 그렇게 말했냐?’며 역정을 부리시기도 한다. 


이게 다 엄마가 나를 키우느라 에너지를 써서, 늙으셔서 그런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답답한 엄마를 볼 때면 화가 난다. 차가운 딸에게 서운함을 느낀 엄마가 눈물을 찔끔 흘리실 때면 또 마음이 약해진다. 엄마랑 싸우고 화해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다른 이의 말을 들어주는 게 사소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분의 친절한 행동과 말투에 엄마는 물론이고 나도 흠뻑 빠져버렸다.  


그분을 만나고 나오는 길, 엄마는 묵힌 게 다 내려가는 기분이라며 함박미소를 지으셨다. 이런 사람이 서비스센터 직원을 해야지 누가하냐며,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폴짝폴짝 뛰셨다. 얼굴도 잘 생겼는데 마음씨도 착하다는 둥, 싸인이라도 받고 싶다는 둥, 이 사람이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둥... 집으로 가는 내내 칭찬의 연속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도 행복해졌다.


명함을 받아오지 않아 ‘그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쉽지만, 그분이 이 글을 읽으실 확률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으로나마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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