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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ul 26. 2020

내 안의 리듬을 찾아서

몸치인 내가 서른에 '춤바람'이 난 이유

“넌 화장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지난해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가 길을 걷다 불현듯 이런 질문을 해왔다. 내 화장이 상대에겐 보이지 않는다고? 그날 나름 신경 써서 평소보다 짙게 화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했다.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날카롭게 그은 그 남자와는 얼마 안 있어 헤어졌다.  


나는 스스로를 단장하고 가꾸는 데 서툴다. 거울도 잘 안보고 화장도 스킨-로션-선크림-비비크림, 거기에 립스틱 딱 거기까지만 한다. 심지어 어제 입은 옷을 오늘 다시 입기도 한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치마를 입고 가면 동기들이 “오늘 무슨 일 있냐”며 주목할 정도였다. 또 어떤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손수 눈썹 정리를 해주기도 했다.


사실 꾸미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오프숄더 셔츠를 사본 적도 있고 가끔은 등이 파인 원피스를 입기도 한다. 귀걸이에 대한 욕심도 조금 있다. 그저 우선순위가 다른 데(일) 있고 나를 꾸미는 데 투자할 여유가 없어서였다. 쇼핑하러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거울을 본 지가 언제였더라. 눈썹부터 속눈썹까지 화장을 짙게 하고 모임에 가본 적이 언제였더라. 내 궁시렁거림이 ‘애둘맘’의 회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지하철 계단을 바삐 내려가다 걸음을 멈추고 거울을 봤다. 전신 거울로 나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거기에는 북어눈깔처럼 어딘가 쾡한, ‘죽어있는’ 인간 하나가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정 백팩을 메고, 긴 곱슬머리를 질끈 묶은 나였다.


안 그래도 대학시절 알던 지인들이 최근 나를 보고 ‘통통 튀던’ 느낌이 사라졌다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동안 남들이 보는 내 표정과 몸 형태에 크게 신경을 안 써서 몰랐는데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등은 살짝 굽어있고 양 어깨는 삶은 오징어처럼 말려있었다. 얼굴의 다크서클이 어둡게 깔려 피곤해보였다.


바쁘게 일하며 지낸다는 게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팔딱여본 지 오래된 어항 속 금붕어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던 이십대 초반의 포부는 이미 내 삶에서 사라진지 오래라는 걸 그때 알았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방법을 몰라 에너지를 발산하기만 하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사는 동안 살고, 죽는 동안 죽어요. 살 때 죽어 있지 말고 죽을 때 살아있지 마요.


힘들 때 마다 보려고 휴대폰 사진함에 저장해두고 다니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속 대사다.


살아있는 것처럼 살자. 그 말을 읊조리면서 매일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설레진 않더라도 가끔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불타올랐다. 그전에 안 해봤던 일, 미뤄왔던 일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춤’이었다.  



화장만큼이나 나는 춤과 거리가 멀다. 30년간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여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춤을 잘 추는지도 알 수 없다. 춤을 춰본 경험을 굳이 찾아내자면 기껏해야 회식 때 노래방에 가면 박수 치고 다리를 까딱이는 정도랄까. 아!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이효리의 ‘텐 미닛’과 그룹 신화의 ‘와일드 아이즈’에 맞춰 장기자랑 연습을 한 적은 있다. 유학시절에도 룸메이트가 아이돌 댄스를 좋아해서 매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는 내게 춤을 추자고 제안했었는데 관심이 일지 않아서 동요되진 않았다.


그러나 우리 엄마 말씀에 의하면 나는 어린 시절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이고, 어른들 앞에서 개다리춤을 출 정도로 참 흥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아직 제대로 춰본 적이 없으니 배우다 보면 잘 추게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니에요? 춤은 추다 보면 늘어요.”


댄스 학원 카운터 직원이 하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령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치’ DNA로 이뤄졌음이 판명됐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다. 춤이라는 게 원래 감정을 담는 몸짓이고, 즐기면 그만인 장르니까. 몇 시간 땀 흘리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충분한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를 위한 투자이니 아까워하지 말자. 눈 질끈 감고 카드로 4개월 치 수업료를 긁었다. 직원은 잘한 선택이라며, 춤 초보 직장인들이나 아줌마들이 학원을 많이 찾으니 처음에 잘 못 따라가도 하나도 창피할 게 없다고 했다.


대망의 첫 수업 날, 연습실에 들어온 나는 직원에게 속았음을 알게 됐다. 초보 직장인들과 아줌마들은 개뿔. 10대 후반, 많아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 20여 명이 춤을 꽤나 출 것 같은 복장을 하고 꽉 차 있었다. 몇 몇은 수업 시작하기 전인데도 알아서 음악을 켜고 그 전주에 배운 동작을 연습 중이었다. 홀로 구석에 가만히 서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선생님은 올블랙으로 무장을 한 키 작은 젊은 여자였다. 나이가 나보다 몇 살 어려보였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스피커에서 클럽용 음악이 흘러나왔다. 까랑까랑한 구호와 함께 벽의 거울에 시선을 고정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한물 흘러간 발라드에 맞춰 발레 동작을 하고, 힙합에 맞춰 팔을 꺾고 턴을 했다. 분명 어려운 동작은 아니었다. 셔플 댄스같은 경우, 방송에서 수없이 봐왔던 춤이었다.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거랑은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다. 머리에서 내리는 지령을 몸이 수행해내지 못했다. 오른쪽 왼쪽 구분도 안 갔고, 박자를 맞추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실수로 옆 수강생 발을 밟기도 하고, 나 혼자만 가만히 있기도 했다. 그러든 말든, 수업은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턴을 하다가 스치듯 거울을 봤는데, 놀랍게도 내가 웃고 있었다. 옷은 땀에 젖어있고 머리칼은 조선시대 죄수처럼 풀어헤쳐져 있는데 눈빛이 반짝였다. 그때 불이 꺼지면서 새빨간 사이키 조명이 현란하게 몸을 감쌌다. 내 안의 심장이 팔딱이는 것처럼 보였다. 경계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남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함께 어울렸다.  


30분간 준비운동 겸 기본 동작 학습이 끝나고서야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내 첫 연습곡은 청하의 ‘PLAY’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뜨끈뜨끈한 최신곡인데 마침 ‘음악 중심’에서 무대를 본 적이 있었다. 청하가 남성 댄서와 커플 댄스를 추는데 정말 빠른 템포로 동작이 흘러가서 감탄했었다. 그 곡을 지금 나더러 소화하라고? 기가 막혔다.  


“함.께. 해봐요. 왼발. 오른발. 왼.오.왼.오. 참 쉽죠잉?”  


구호와 다르게 내 오른발이 먼저 움직였다. 선생님이 슬로우모션으로 시범을 보여줬는데도 내게는 쉽지가 않았다. 같은 동작을 3~4번씩 반복하고 나서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더 어려운 동작을 배운다. 새로운 구간에 익숙해지고 나면 앞서 외운 구간을 까먹는다. 팔 따로 다리 따로 외웠는데 합쳐서 하려면 멍 해진다. 연습이 좀 됐다 싶은 구간도 음악과 같이 추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아마 그날의 내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했다면 정말 웃긴 예능 프로그램 한 회가 됐을 거다. 어찌어찌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서 집에 걸어가는데 몸에서 땀 냄새가 났다. 땀을 흘린 게 얼마 만인가. 바람에 상쾌해졌다.


그 다음 수업 때부터는 의욕이 생겼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옆 방으로 가서 에이스들과 15분간 연습을 더 하고 집에 갔다. 지금까지 청하의 ‘PLAY’를 배우고 화사의 ‘마리아’를 뗐다. 물론 아직 백조들 사이에 헤엄치는 오리새끼처럼 동작이 매끄럽지는 않다. 방금 배운 동작인데도 머리가 새하얘져 버벅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춤 추는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워졌다. 그만큼 춤에 재미가 붙었다. 나는 점점 디테일해졌다. 손끝 하나, 손가락 움직임 하나도 신경을 쓴다. 춤을 출 때는 오로지 춤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웨이브를 선생님과 비슷하게 할 수 있을까’ ‘이 다음 동작은 뭐였지?’ 그간 머리 속을 장악하고 있던 회사 일에 대한 상념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엄지와 검지와 약지를 펴두면 예뻐요” “오늘 했던 건 잊어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다음 수업 때 다시 처음부터 알려줄 게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화사다! 최면을 걸고 추세요” 선생님의 나의 몰입에 많은 도움이 됐다.


어느 날엔 안 추던 춤을 춰서인지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그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물집이 터졌고 아픈 걸 꾹 참고 수업을 들었다. 나머지 연습까지 마치고 발을 절뚝이며 간신히 학원 현관문을 나서는데, 선생님이 내 등을 툭 치면서 말을 걸었다.


“초반에 비해 많이 나아졌어요.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춤을 잘 춰야지 이런 스트레스만 받지 말고 앞으로도 즐겁게 해줘요”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머쓱해지면서도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학원에서 나와 걷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춤과 함께 무미건조하던 내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우선 부모님께서 내가 춤에 도전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곤 뛸 듯이 기뻐하셨다. 당신 딸이 나이답지 않게 노숙하게 사는 걸 속상해하시던 분들이셨다.


유튜브로 그 주에 배우는 수업 무대 영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걸 보고 친구가 말했다. “이런 요즘 곡 무대도 찾아봐? 역시. 너는 예전부터 인싸야.” “응? 내가 인싸야?” “그럼, 너 예전에도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관심이 많았잖아. 생긴 건 차분하게 생겨서 요즘 유행이 뭔지도 은근 빠삭하던데?” 나의 모습 중 하나를 되찾았다는 기쁨에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왔다. 기운이 마구 샘솟았다.


일상에 흥겨운 리듬이 스며들자, 여유가 생겼다. 잠도 이전보다 잘 오고 걸음걸이도 달라졌고, 표정도 밝아졌다. 힘든 날이 날이면 학원에 갈 날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때도 잦아졌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됐다. 괜찮아, 다음 번에는 이번에 놓친 부분을 더 신경쓰면 되지. 자연스럽게 회사생활을 할 때도 한층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 뱉는 말도 편안해지고, 실수에 불안해하는 날도 줄었다.


솔직히 나 다운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떤 향기와 색깔을 내는 사람인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다. 아마 10년 후에도 이 고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나다움’이란 내 본연의 리듬을 표현해낼 때 나온다는 것.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때 비로소 나 다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뾰족 구두를 신고 향수를 뿌리는 게 내가 아니라, 발이 부르트고 땀에 흠뻑 젖어 헉헉대면서도 재밌어서 춤을 연습하는 게 바로 나였다. 나답게 살기 위한 나의 ‘춤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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