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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Jan 24. 2021

한때는 죄책감 따위 못 느끼는 거짓말쟁이였지

블링블링 기억수첩 12P

3월.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간다는 기쁨과 새 친구를 사귈 기대감에 부푸는 새 학기.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중1의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긴장감에 떨어야 했다. 


“넌 어느 아파트에 살아?”


친구가 물으면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경제적 수준이 높은 가정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반 친구들 대부분 부모님의 직업에 ‘사’자가 들어갔고, 여름방학에는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 안에서도 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를 기준으로 계급이 나뉘었는데, 집이 다른 동네에 있는 학생의 경우 암묵적인 따돌림을 받았다.  


반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친구들은 대부분 빌라에 살았다. 초대를 받아 가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쪽방에 사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 대문이나 초인종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들의 부모님은 맞벌이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엄마는 내게 중대 발표를 하셨다. 바로 주민등록등본에서 내 이름을 떼어 바로 옆 동네 사는 엄마 친구네로 옮긴다는 것.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도록 하기 위한 엄마의 술수였다. 


예술중학교 같은 특별 학교에 지원하지 않는 한, 주민등록 등본상 거주지와 인접한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약간의 꼼수는 통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한 주소에서 함께 산다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게 슬퍼서 처음엔 반항했지만, 결국 엄마의 뜻에 따랐다. 나는 옆 동네 중학교 새내기가 됐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옆 동네였기에 등굣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나였다. 14년 인생에서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에 부닥쳐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았다. 친구로부터 처음으로 집에 관해 물음을 받았을 때, 더듬거리면서 말을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는 혹여나 딸이 말실수를 해서 주소를 옮겼다는 게 들통날까봐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나는 3월 첫 주, 엄마 친구네 집 주소를 자다가 일어나서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웠다. 실제 그 집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답사까지 갔다.


그 덕에 행정 서류를 내야 할 때라든가 친구가 내가 사는 아파트를 물어볼 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심장은 쉴새 없이 쿵쾅거렸고 머리칼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등하교할 때는 가짜 집 쪽으로 가는 척을 하다가 빙 돌아서 진짜 집으로 갔다. 그 바람에 원래 드는 시간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아예 친구들과 마주칠 일이 없도록 어떨 땐 새벽 일찍 학교에 가고 해가 져서 집에 온 적도 있다. 


3월 말이 될 즈음, 상대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몇 동 몇 호에 사는 지까지 답할 정도로 나는 거짓말에 익숙해졌다. 말을 줄이고 남들의 말에 동조하는 스킬도 익혔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이 왔다. 


“넌 어디 살아?”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갓 입대한 훈련병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가짜 집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어? 나도 너랑 같은 동에 사는데. 집 갈 때 같이 가자”  


아뿔싸! 심지어 그 친구는 내 한층 아래에 산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일이 있다고 하고 제안을 거절할까 두 선택지를 두고 끙끙대다가 하교 시간이 왔다. 친구와 학교를 나와 가짜 집 쪽으로 걷는 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의 수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찼다.


친구와 아파트 건물에 도착해 나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어설픈 핑계를 댔다. 친구는 이상해하면서도 내 말을 믿어줬다. 친구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있는 힘껏 달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그 행동이 나 자신을 궁지에 몰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 친구는 다음 날에도 나와 하교를 함께 하자고 했다. 거절을 못 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전날의 상황이 반복됐다. 가짜 집 앞에 도착해,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친구는 우리 집이 복층인지 단층인지를 심문하듯 물었다. 엄마 친구네는 복층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단층이라고 답했다. 


“너, 여기에 산다는 거 거짓말이지?” 알고 보니 친구는 전날 내 뒤를 밟았고, 진짜 집까지 확인한 후 돌아간 것이다. 거짓말이 탄로 났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점점 커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학교를 계속 못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사과하거나 해명할 생각도 못 하고 또 집으로 도망쳤다. 그날 나는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책상에서 뜻밖의 쪽지를 발견했다. 내 진실을 알아버린 그 친구가 보낸 거였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어린 나의 잘못을 감싸준 친구 덕에 나는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그날 이후 친구들이 집에 관해 물어보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밝혔다. 진짜 집에 초대해 놀기도 했으며 그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우리 집 환경을 떳떳하게 소개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신뢰를 잃을 만한 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꾸며진 나로 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게 나를 믿고 아껴주는 이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새 학기,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내게 준 인생의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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