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있어서 직장생활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기술하시오(500자 이내)”
공공기관에 지원하는 친구가 자소서 문항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연락을 걸어왔다. ‘직딩’인 나도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물음이었다. 나한테 직장생활은 어떠한 존재인가.
지난주 ‘유퀴즈 온더블록’에서 이직을 경험한 사람들이 출연했다. 그 중 삼성그룹의 사원, 기자, 슈퍼모델에 이어 배우가 된 진기주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일이 좋은 이유는 “흥미로워서”다.
그녀는 삼성에서 일할 때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고, 기자였을 때는 상사의 전화를 바로 받기 위해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존감이 가장 깎이고 근무환경도 가장 열악한 배우를 하면서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니!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직장이 따로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한테 직장생활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평범한 삶이란 노동을 하며 땀을 흘리고, 내가 번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으로 온기를 나누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기란 참 어렵다.
필수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인 이유는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평범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게 고통스러웠다.
금전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분명 일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밖에서는 채용박람회에 가는 등 구직 활동을 했다. 유튜버가 억대 연봉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꿈의 직업이 돼 가는 걸 고려하면 꼭 직장생활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에는 ‘사회화’를 향한 욕망이 투영됐다고 본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상대와 친목을 도모하고 정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직장생활을 한다’는 행위는 나를 알아가는 데 목적이 있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며 소통을 하고 몰랐던 걸 배워나가며, 경쟁을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명함’이나 ‘사원증’을 갖는 게 소원인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집단에 소속돼있다”는 걸 증명해주니까. 명품이 그 사람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듯, 한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직장생활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지옥 길을 열 수도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회사에서, 얼굴에 그늘이 일지 않도록 일할 수 있다면 성공한 직장생활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