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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r 14. 2021

증거는 우리 마음 속에 있지!

다음은 누구냐? 연예계 휘몰아친 '학폭 쓰나미'

연예계에 ‘학폭’ 관련 이슈가 휘몰아치고 있다. 연일 방송인의 과거가 폭로되면서 법적 공방이 예고되고, 반박이 이어지면서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드라마업계에 학폭과 관련한 서약서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논란이 불러일으킨 금전적 손해가 얼마나 막대한지 짐작이 간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진흙탕 싸움은 우리에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얼마나 엄중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지 느끼게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일부 스타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변명한다. 이건 좀 의심해봐야 할 부분이다.


70년도 더 된 6.25 전쟁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어르신도 있는데, 10~20년 전의 일을 두고 ‘기억력’의 문제를 운운하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본인이 떳떳하다면 “그런 일이 없다”고 명확히 밝혀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 폭로자의 증언이 잘못됐다면 아니라고 밝히면 될 일이다.


반면 상대는 또렷이 기억하는 일인데 본인은 기억을 못하는 일이라면, 그건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게 사건을 치부해버린 스타의 잘못일 수 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한다면 대중은 너그럽게 받아 들일 수 있다.


나는 학폭을 경험해보지도, 주위에서 목격한 적도 없어 그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다.


실제로 얼마 전 내 창작물을 자신의 것인양 빼앗아간 상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냐?”


이런 말도 했다. “증거가 있냐?”


있다. 증거는 당사자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을지 몰라도 감정은 평생 남는다. 상대의 이름을 보거나 얼굴을 떠올리거나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 과거의 상처가 다시 쓰려온다. 이 반응은 인위적으로 꾸밀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진짜’다.  


굳이 대중 앞에서 민낯을 까보일 필요없이, 서로가 인지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면 될 일이다.


용서라는 숭고한 행위 앞에서 체면이나 명예 따위는 더 이상 필요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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