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늑대 Jan 17. 2019

교육은 생산성이 결코 좋은 분야는 아니더라

손해볼 생각으로 가르치는 게 맞을거다


사실 소시적에는 절대로 손해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솔직히 일부러 손해를 보라고 한다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이기고 내가 이익인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할게 되면서 부터 어른이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



요즘 필자의 주위에서는 입시를 치루는 고3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서울대 합격을 이룬 성공한 부모의 이야기도 있지만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부모 ( 아마도 내년에 다시 한번 시험을 치루어야 하는 ) 들도 여렷 있고 ... 그러면서 자식농사라는 것이 과연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교육이라는 것이 생산성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수지가 맞는 장사가 아니다. 교육은 하나를 넣으면 절대로 하나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를 넣어도 제로, 열을 넣어도 제로... 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 하나를 넣었더니 열이 나오고 스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신비로운 영역이 교육 같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대해서 안달하는 것 같다. 백만원을 넣었으면 백만원 만큼의 결과가 나와 주어야 하는데 그게 나오지 않는 부모들은 초조해 한다. 하지만 백만원을 넣어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손절할 수는 없다. 자식문제에 대해 그렇게 쿨하게 접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백만원이 안되면 오백만원 천만원을 넣어서랃라도 결과를 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헌데 이런 부모마음이 결국 돌고 돌아서 아이들을 망치게 만드는 것 같은 생각을 필자는 많이 한다. "내가 자식의 교육에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봐야겠다. 그로 말미암아 객관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들 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 그것을 발판으로 사회에서 상류생활을 당당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라는 마음이 "변별력"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


사실 이 변별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나라 교육은 산으로 산으로 향해 갔던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열이 높은 것은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별력을 가지고 내 아이 , 우리 아이의 우수성을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결국 교육 전체의 방향을 나쁜 곳으로 끌고 가 버렸다는 생각을 필자는 하고 있다. 해서 필자의 글 들 곳곳에서 변별력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던 것이기도 하고


.....


헌데 말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들인 만큼의 결과를 봐야 하는 것인지른 생각을 해야 한다. 꼭 돈을 들인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인지 ... 그게 교육의 본질에 어울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다.


사실 대부분의 교육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한시간의 노력을 하면 한시간 만큼 성장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하지 않고 , 어떤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쭉쭉 나간다. 어떤 사람은 드럼 스틱 잡는거만 가르쳐줘도 드럼을 얼추 연주하지만 어떤 사람은 손과 발이 따로노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몇개월을 헤메고 헤메이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 상황이 다르고 그릇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생산성을 확보할 수 없으니 교육에 투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일에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이 한계에 다다를 때 까지 부딛쳐 보지 않고서는 말이다.


필자가 이전에 썼던 예화지만 여기서 다시한번 들어보겠다.


어느 고등학생이 성악교수에게 레슨을 받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 학생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영선수였다. 접영이 주 종목이었던 그 학생은 부상과 소질부족 등으로 운동에 대한 꿈을 접었다.


헌데 그렇게 운동을 접고 나니까 고등학교 이후의 삶이 막막했다. 공부가 이미 많이 뒤쳐져 있었으니까. 해서 그 학생은 다른 길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성악이었다고 한다.


그 성악교수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었다고 한다. 사실 어려서부터 성악을 연습하고 연습한 아이들도 성악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이제 겨우 2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이 학생이 성악으로 대학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을 가졌다. 아마도 왠만한 사람이라면 다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헌데 이 학생은 놀랄만큼 빠른 성장을 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수영으로 다져진 호흡과 발성에 필요한 몸을 만들어 왔었던거다. 성악교수는 그 학생의 빠른 성장에 놀라면서 노래에 맞는 몸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자. 수영에 투자한 시간은 분명 실패한 투자로 끝난 셈이다.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맺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성악으로 이어졌을때 , 수영을 통해서 다져진 폐활량과 등 근육 , 복근 , 복식호흡 등은 성악에 있어서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수영에서의 투자실패가 성악에 있어서의 투자성공으로 이어졌다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이렇다.


어느 한 분야에서 투자한 만큼의 결과가 뚜렷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요령이나 요행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내용을 통해 스스로의 몸으로 체득하면서 되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결과가 나오건 나오지 않건 그것은 무조건 성공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어설픈 요령을 피우면서 제대로 된 교육내용을 소화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잘난 척 하면서 넘어가는 식의 교육은 결과는 잠시 나왔을 지언정 애초부터 실패였고 결과도 실패로 나오게 될 것이다.


필자가 소시적에 기타강사... 노릇을 좀 한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인 내용은 다 무시하고 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만 칠수 있게 해 달라고 한 학생이 있었다. 물론 그 학생은 그걸 어설프게 칠 수는 있었지만 그 한 곡 이외에 다른 곡은 칠수 없었다. 그런 교육이 바로 실패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설프게 결과를 보려고 하고 , 그것을 가지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월감 열등감을 가지게 하는 교육이라면 그 자체로 필자는 실패라고 본다. 해서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의 교육은 그 자체로 이미 실패했다. 그 체제 안에서 제대로 된 인재가 길러지는 건 그 사람이 대단한거지 절대로 우리나라 입시교육이 뛰어나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교육이라는 것이 그렇다. 생산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과정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몸에 익히고 활용하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나를 넣으면 하나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는 거다.


결국 교육을 대하는 자세에서 손해를 감수하게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고 , 제대로 된 선생님을 찾아 낼 수도 없다. 제대로 된 선생님이라면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몸과 태도 그리고 개념과 자세를 중요시 한다. 그러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초조해 지기 마련이다. 돈은 들어가는데 결과가 안나올테니. 하지만 그게 맞는 길이고 맞는 교육이라는 거지


필자가 ncs 욕을 바가지로 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도 이거다. 꼭 그 교육기간 안에 결과를 내야 지원은 계속된다. 씨 뿌리는 입장에서 기다리고 손해보는 마음이 들어갈 구석이 없다. 헌데 그건 우리나라 정부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육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는 거지


이걸 어떻게 설득할지 ... 그게 필자의 생각거리이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생각거리 말이지.

작가의 이전글 기본부터 다시시작하는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