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저 사람은 굉장히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하실른지는 모르겠다. 교회에 대한 열심은 필자는 별로다. 아니 평균 이하일 수도 있다. ( 예를 들면 ... 필자는 십일조 제도에 좀 부정적이다 ㅎㅎ - 사실 십일조를 내야만 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형태의 교회는 전 세계를 통털어 보면 그렇게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다 )
물론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고 드린다. 헌데 주일예배때도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어떤 '모범적인 교인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놓고 , 그렇게 믿는것이 바로 믿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곧장 머리속에서 딴생각을 돌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목사의 가르침에 그닥 고분고분 안하는 아웃사이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뭐 ...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일을 맡거나 , 청년부 남선교회 회장이나 총무같은 일을 해 볼 만한 일도 없었다. 대신 열심히 '내가 좋아하는 일 , 그리고 내가 남들 보다는 잘 할 수 있는 일' 을 찾아서 알아서 자기의 교회 생활을 해 나가는 스타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는게 교회에서는 좀 피곤하다. 지금 다니는 교회가 비교적 아웃사이더들이 많고 , 그런 사람들을 잘 용납하는 교회였지만 일반적인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다. 해서 필자의 경우는 남들 보다는 한층 더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겠다... 라는 욕심이 있었다. 하나님을 좀 더 알고 싶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나와는 다른 색깔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 나에게 '너 그렇게 믿으면 안되. 이렇게 믿어야 해' 라고 하는 지적질을 견디어 내기 위해서는 내가 믿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가능한 한 성경을 기반으로 한 확실한 근거와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얘기지만 ... 필자가 필명을 하얀늑대를 쓰는 것에 나름 사연이 있다. 교회의 전통적인 교인상과는 거리가 좀 있는 모습의 필자이기에 이런 저런 태클이 좀 많이 들어왔다. ( 록 음악을 즐기고 , 애니매이션도 좋아하고 ... 소시적 주일학교 선생님때는 분반공부 진도 때려치고 열심히 같이 노는데 전념하기도 했고 ... ) 해서 '나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니라 늑대의 탈을 쓴 양이다' 라고 내 스스로를 칭한것에서 하얀늑대라는 필명이 나왔다. 헌데 그렇게 필명을 쓰고 난 몇년후에 드라마에서 내 필명을 가져다가 쓰더라는 ... 믿거나 말거나.
해서 교회 안에서의 포지션은 아웃 사이더에 가깝지만 ... 나름 성경에 대해서 ,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많이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 아직도 나름 기회 닿는대로 그리고 내 지성이 소화 가능한 수준에서 신학에 관련된 책을 읽고 , 성경을 좀 더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이런 내용도 찾아보면 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눈동자 처럼 지키신다..." 들으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가 ... 하나님이 나같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할 지라도 ,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면 그런 영혼을 받아주시고 , 인생의 섬세한 곳 까지를 지켜주신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 헌데 말이다. 실제로 삶을 살아보면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인생살이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고서는 믿음을 떠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의 한 귀절만 따서 읽어 보면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가 털끝 만큼도 다치지 않게 보호하실 것 같지만 , 실제로 세상을 살다 보면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 인생사에서 벌어지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빈도수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팩트 체크를 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조사가 영국에서 이루어 진 적도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집단과 무신자 집단을 조사하면서 인생 살면서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의 정도와 빈도수를 조사해 보니 ... 그 두 집단 사이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경에서 빈말을 하셨을까?... 괜히 좋은말로 우리를 하나님에게 붙들어 매기 위해서 실없는 소리를 하셨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성경을 읽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성경은 매우 두꺼운 책이고 많은 양의 내용들이 기록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성경은 66권의 책을 편집해서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고 , 각각의 책은 저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내용을 서술한 책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성경책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고 주욱 읽어나가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한 구절만을 집중적으로 파는 것은 성경을 읽고 ,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서 욥기에 보면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말씀이 있다. 헌데 욥기의 주제는 이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고난은 절대로 인과응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 무얼 잘못했기에 하나님이 벌하시는 형태의 고난이 아닌 인간이 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이 존재하고 , 인간은 하나님이 왜 그런 고난을 인생에서 만들어 주는 지 그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창조주의 영역이다 ... 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주제이다. 헌데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면 '이거 뭐하는 얘긴지 도통 모르겠는 얘기들이 주욱 지나가고 있는데 ... 그런 중에 자기 눈에 띄는 귀절 하나가 마음에 꽃히면 그 성경구절을 가지고 아 ... 하나님은 우리의 끝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구나 ... 할렐루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물론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깨달아지는 경우도 있다. 헌데 하나님의 모습에 비추어서 ,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주제와 흐름을 거슬려 가면서 억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살아내는 모습과는 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제대로 된 성경공부가 필요한 것이고 , 내가 혼자서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도록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 , 집단 지성을 통해 내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 ...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 속에서 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어떤 일이고 ,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슬퍼하시고 징벌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지 ... 즉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진노를 알면서 하나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알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지성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파악한다는 것은 평생을 가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고자 했을 때. 성령 하나님은 그런 내 삶과 동행하시고 , 구체적으로 인격적으로 내가 하나님이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신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나는 내가 내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정도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고 , 하나님은 그것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믿음이다.
( 오늘 보니까 전광훈이라는 목사가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 같은 발언을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
하나님의 기쁨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하나님이 뭐에 진노하시는 지도 알아야 하고 . 하나님의 율법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긍휼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이해하면서 그 가치관에 동화되어 나아갈 때 내 삶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삶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런 삶을 순도 100%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 그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노력은 하는 편이기는 한데 ... 지금까지의 그런 노력에 비추어 볼때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 또한 모든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이신데 , 왜 나에게 그렇게 소중한 손을 다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하나님은 혹시 나를 사랑하시지 않거나 또는 전능하시지 않은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미숙했다. 내가 장비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위험한 장비를 미숙하게 다루면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부도 날 수 있다. 중한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사고 날 수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시다.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 그것을 조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피하거나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러면 믿는자는 그런 일을 당할때 어떤 좋은 점이 있는 것이지? 라고 묻는다면 ... 적어도 사고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믿는 자 답게 처신할 수 있는 면이 좋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슨 얘긴가 라고 하면 ... 손이 다치고 난 다음에 나는 불행과 절망에 허우적 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충만한 생활을 했다.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평소보다 더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성경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지금 돌아보더라도 꽤 충만한 시간으로 손이 낫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거의 손이 나아있는 상황에서 , 손등에는 큰 흉터가 나 있다. 이 흉터를 보면서 나는 감사를 떠올린다. 사고가 나던 순간부터 그 이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 그리고 멀쩡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 두 손으로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 밀린 설거지늘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 한 손으로 그런 일들을 해 보시라 얼마나 불편한데 )
하나님을 내가 얼마나 올바로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는 이렇게 믿는것이 바른 줄로 알았는데 나이들고 보니 아니었던 일이 참 많았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을 더 경외하게 되고 , 하나님이 경외스러운 존재가 될 수록 내가 할 수 있고 , 해야 하는 일이 소시적에 보다는 좀 더 명확하게 보여지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신앙의 대가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가르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리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내가 어떻게 지금 되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아는 것의 출발 지점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많이 알고 싶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영역을 넘어서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다가 죽을 수 있을 정도 ... 그 정도 안에서의 깨달음을 구하며 살다가 죽는것. 그게 지금 내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