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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범죄케 하거든 잘라버려라

by 하얀늑대

마가복음 9장 43절의 말씀이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


손을 다치고 난 다음에 가장 깊이 묵상하게 되었던 말씀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건 좀 표현이 심하다 ... 이건 예수님도 과장되게 말씀하셨을 거야. 설마 진짜로 손을 찍어버리라고 하셨겠어? 그냥 이건 표현이 잔인하고 과장되어서 좀 마음에 안든다. 겁주는 것도 아니고 ... 그냥 패스 패스..." 이렇게 반응했던 구절이기도 하다.


뭐 ...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깊은 뜻을 다 깨달아 알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솔직히 성경은 읽을때마다 다 느낌이 달라서 ... (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성경이 깨달아 진다고 흔히 교회안의 표현으로는 이야기한다 ) 제한적으로 와 닿거나 ... 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이해가 팍 와닿는 경우들도 많은지라 내가 성경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죄책감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성경을 열라리 많이 아는 사람 앞에서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나에게 필요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니 ... 많이 모른다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는 한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경은 내가 공부해서 머리속에 넣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상이라고 한다면 말이지.


손을 다치고 나니까 이 구절이 정말 이해가 팍 와 닿았다. 손을 다치기 전에는 그냥 패스 패스 ... 했던 구절이었는데 손이 메롱이 되어서 정말 뭐 하나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니 나름 와 닿는 것이 많았다.


일단 음식을 만드는 데 애로사항이 많아진다. 실질적으로 음식을 하는 건 어렵다.

설거지도 하기 어렵다. 한손으로 설거지 하는 거 ... 해 보면 알겠지만 쉽지 않다.

청소도 힘들다. 주섬 주섬은 할 수 있을른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할 때에 애로사항이 많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패턴도 바뀌어야 했다.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기 어렵다.

운전하는데도 힘들다. 한쪽 손으로만 운전하는 거 ... 사고의 위험이 많아서 아예 핸들 놔 버렸다.

거기에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힘들다. 따라서 코딩이나 글쓰기 같은 것도 포기.

스마트폰의 한손가락 타법은 가능하지만 한 손으로 폰을 들고 한손으로 치는 것도 힘들다.

기타치는 건 당연히 불가능.

각종 공구나 도구를 사용하는 것 당연히 불가능.

피아노 치는 것도 불가능. 해서 오른손 한 손으로 치는 연습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다 ...


... 한마디로 내 삶에 있어서의 전투력이 거의 1/4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내 손의 역할을 대신해 주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주지 않는 한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새삼 모든 치료를 마친 후에는 손가락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거의 '복음'수준으로 감사하게 와 닿았기도 했고 말이다.


헌데 손이 이렇게 메롱이 되면서 보니까 ... 일상이 지장이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사실 선행도 악행도 불가능하더라는 거다. 여기에서 성경 말씀이 떠오른게 위에 적은 마가복음의 말씀이다.


'아 ... 손을 잘라버리게 되면 정말로 악행이 끊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 ... 일상이 불편한 수준의 장애를 입게 된다면 선행도 불가능하겠지만 악행 또한 저지를래야 저지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터이고 ... 그러면 하나님은 그 악행이 끊어진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성경말씀은 이야기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


'그렇다면 가만 ... 악행을 못하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 선행을 못하게 되는 것도 있는데 ... 하나님은 선행을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시다는 거지 ... 악행을 끊어서 구원에 이른다는 얘기는 있는데 , 선행을 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책망은 없으신데 ... 그럼 선행을 못하게 되는 것은 구원과 별 상관이 없다는 얘기인가 보네...?'


물론 이런식의 성경해석은 잘못해서 '내가 복음'이 되기 쉽다. 성경 전체의 맥을 흐트리는 해석으로 가기 쉽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공동체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 적어도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라고 성경에서 적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기에 필자는 '내가 크게 잘못된 해석을 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때 강도 두사람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였다. 두 강도중의 한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회개했다. 그리고는 '당신이 당신의 나라에 임할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라고 온 힘을 짜내어 예수님께 말했고 , 예수님은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것이다' 라고 화답했다. 이 십자가의 강도가 선행을 했기에 예수님은 그것을 인정하여 구원을 베푸셨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만일 만일에 ...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손을 잘랐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님은 그렇게 손을 잘라버린 사람의 삶에 어떤식으로 역사하시게 될까나?... 하는 상상을 해 보면서 ... 이런 소설을 머리속으로 써 보게 되었다.


....


나치 독일에 어떤 양심적인 장교가 있었다. 점령지 파리에 부임을 받아서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 위한 명령을 받았다. 해서 레지스탕스를 감옥에 넣고 그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는데 ... 전세가 역전되어서 파리를 점령당하기 얼마 남지 않았다. 독일로 퇴각하게 되는 과정에서 '잡혀 온 레지스탕스를 모두 죽여버려라' 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고심한다. 그들을 죽이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서 그는 결심한다. 부하들을 먼저 철수시키고 자신이 직접 처형을 주관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 후에 , 그는 자신의 총을 들어서 자신의 손을 쏴 버린다. 손이 날아간다 ... 그리고는 자신의 총을 포로가 된 레지스탕스에게 건네주고는 이걸로 감옥의 문을 부수고 탈출하라고 말 한뒤에 마지막 후퇴하는 차량에 탑승한다. 그리고는 상부에 보고한다 '포로들이 총을 빼앗았고 저는 그 포로들이 쏜 총 때문에 손을 잃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후 독일에서 살아남아서 평범한 일상을 지냈고 ... 그 때 풀려난 레지스탕스 몇이 전후 독일을 찾아가서 그 장교를 만난다 ...


....


뭐 이런 스토리를 상상을 해 보는 거다. 상상하는데 돈 드나? ㅎㅎ


정말로 정말로 자신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손을 잘라버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실까? "아니 너는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냐? 너는 학교에서 과장법도 안 배웠냐?" 라고 책망하실까나?


소지적 예전에 어떤 중학생 남자아이가 자위행위를 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잘라버렸다는 얘기를 어느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하나님이 책망하실 것 같다. "아니 내 이야기를 왜 그렇게 잘못 이해를 하냔 말이다. 그건 내가 얼마나 죄라는 것을 미워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얘기였고 , 그리고 넌 오난의 얘기도 모르냐? 자위행위를 내가 가증스럽게 여겨서 벌한다고 넌 생각했단 말이냐?" 라고 이야기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자신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손을 자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손을 자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주시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 한 손이 메롱이 된 이후에 물론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살았다. 하고 싶었던 일도 못하고 ... 해야 할 일은 포기해야 했고 ... 집안 꼴은 말도 안되게 시리 해서 살았다. 음식도 청소도 못하고 ... 빨래만 겨우 겨우 하고 사는 ... 하지만 그 시간이 암울했냐라고 하면 그렇지 않았다. 뭔가에 충만하게 살 수 있었다. 해서 필자는 주위에 이야기 하고 살았다. "그래도 살아갈 힘을 주시니 살만 하다고" 말이지 ...


물론 이것이 내 손가락이 멀쩡하기에 하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가 손을 영원히 못 쓸정도의 깊은 부상을 입었다면 아마 지금 이 시간 까지도 나는 절망하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전동공구에 손을 다친건 그렇게 사소한 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부상을 통해서 나는 많은 불편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기간동안 결핍에 시달리지 않고 , 마음에 불평이나 절망하지 않고 나름 풍요로 채워 주셨던 것도 사실이다.


해서 감히 이야기 하게 된 것이 ... 내가 기도의 공로와 능력으로 , 또는 내 인간적인 지식과 노력으로 나에게 닥쳐져 있는 상황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 가능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거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실 수 있을 수 있지만 ... 하나님을 내 생각대로 조정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과는 거리가 멀다...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렇게 역사해 주신다면 감사할 일이지만 ...

아무리 내가 조심하고 조심해도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미숙하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모은 인간은 미숙하고 ,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계와 제도와 문화는 미숙하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예측하지 못한 일에 휘말릴 수 있고 , 내가 노력하고 조심한다고 해서 내가 늘 감당할 수 있는 일만 만나고 살 수 없더라.


손을 다치게 된 것도 내가 예상하고 준비한 일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 다치는 걸 상상하고 공구를 사지 않았고 , 판자 두개를 붙이는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일어 날 수 있는 법. 공구를 사용하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더라. 해서 손을 다쳤고 ... 나는 일시적이나마 매우 무능해 졌다.


하지만 이런 예측하지 못한 상황때문에 나의 삶이 , 우리의 삶이 변화를 겪게 되더라도 ... 하나님은 그 나름대로 손을 다친 나와 동행하시면서 , 손을 다쳤기에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될 때에 거기에 화답하시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을 주시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겨우 그 정도 다쳤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지. 나는 그거보다 더 크게 다쳤어. 그 정도 쯤 되면 아마도 너도 그런 배부른 소리 못할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거다. 이해한다. 솔직히 필자도 손을 다쳤을때 잠시 그런 생각 했다. "예전에 썰렁이 잃었을 때 보다 힘들기야 하겠남 ... 지금 손가락이 그래도 붙어 있으니 , 그 때보다는 좀 버티기가 낫지 않겠남 ... " 이라고 말이다.


필자도 과거에 손을 다치는 것 보다 훨씬 더 힘든 경험을 했었다. 그 때는 거의 2년 가까이를 정신 못차리고 지냈다. 하나님을 등졌다. "저는 하나님 당신이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는 것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준비했었는데 ,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 하면서 하나님을 등졌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앞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었다 ... 그 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첫 아이를 잃었던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도 돌아보면 ... 살 수 있는 힘을 그나마 주셨기에 살 수 있었다.

해서 지금도 ... 장담은 할 수 없지만 ... 자신이 이겨내기 힘든 고난을 겪고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 나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셨던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잡아주시는 손을 붙들고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고 버티어서 살아내는 일이 ...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이 있어지기를 잠시나마 기도하고 간다.


손을 다치면 ... 손이 다친 대로 그에 맞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손을 잘라버리면 ... 손을 잃어버린 대로 그에 맞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

그렇게 살아가다가 우리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친히 죽음을 이기고 천국에 이르는 길을 여신 만큼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사모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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