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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잘 만날수 있는 은혜 주세요

by 하얀늑대

손을 다치고 난 바로 다음날 부터 병원에 다녀야 했다. 당연한 얘기다. 당장에 피부가 없어져서 근육이 보이는 상태에서 상처가 아물어서 덮일 때 까지 감염은 절대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잘못해서 녹농균 같은 균이 들어가서 감염이 심해지게 되면 손을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물론 그런 걱정을 하면서 불안해 하는 것은 좀 오버하는 성격이 짙다고 본다.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고 , 나름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감염을 제때 치료 못할 정도의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되고 있다. ( 나름 우리나라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 아니겠는감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나라에서 의사에 대한 불안감은 솔직히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의사가 실수하거나 오진해서 환자의 병세가 악화되거나 장애를 입게 되는 경우의 얘기는 종종 들려오기도 하고 ... 수술때 잘못되어서 삶이 망가지는 얘기도 들리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듣게 되면 일단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불안해 지는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솔직히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의사가 전문가인 것은 맞다. 오랜 기간 수련을 거치고 전문 지식을 함양하고 있다는 것은 맞지만 ... 의사는 신이 아니다. 실제로 필자가 이번 손을 다치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의사가 치료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진짜 회복되고 손이 아물어 가는 것은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하더라... " 라는 것이다. 즉 의사는 치료의 방향을 설정하고 몸이 치료하도록 돕는 사람이고 , 치료는 내 몸이 한다 ... 라는 것이다.


의사가 제시하는 치료의 방향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면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는 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믿지 못한다면 몸을 어떻게 맡기겠는가. 더군다나 필자의 경우 손을 다쳤는데 , 이 손이 만일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필자는 인생에 있어서 매우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제 아무리 전문가라고 할 지라도 믿을 수 없다면 치료를 맡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필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의사들이 모두 전문가라고 하지만 판단하는 것과 , 그에 따른 치료의 방향은 사람마다 달라 질 수 있다고 봅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전문가에 따라서는 의견이 갈리어 지는 것 또한 저 많이 봐 왔습니다. 제 손의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치료와 처치를 해 줄 수 있는 의사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치료의 방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 저는 열심히 약도 먹고 고기도 먹고 ... 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게 해 주세요"


일단은 응급실에서 잡아 준 성형외과 예약이 있으니 ... 실려갔던 XX 종합병원으로 갔다.


.....


초기에 감염되지 않게 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해서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다녀야 했다. 항생제도 꼬박 꼬박 먹어 가면서 말이다. 어차피 손가락 상태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상황이 못되었기 때문에 일을 당분간 제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병원 때문에라도 일하기는 어려웠다 ( 종합병원 예약이 어디 내 사정에 맡게 시간을 잡을 수 있냔 말이지 ㅋ )


독자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 종합병원의 선생님들은 매일 진료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틀에 한번씩 손의 상태를 보고 , 소독 하고 드레싱 하는 일을 하는데 매일 매일 진료를 봐 주시는 선생님이 달랐다. 당연한 일이다. 같은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서 3-4일에 한번씩 드레싱을 하는 것은 초기 감염에 즉각 대응해야 할 수 있다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바람직 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지.


1주차에는 모든 선생님이 유심히 감염 여부를 살폈다. 이 단계에 있어서는 모든 선생님의 의견이 일치했다. 헌데 2주차에 들어서면서 선생님들의 의견이 조금씩 달랐다.


한 선생님은 '수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경과를 보자' , 한 선생님은 '여기서 부터 여기까지 피부가 모두 괴사되었으니 빨리 피부 이식 수술을 하자. 날짜를 지금 정하자.' , 한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그냥 드레싱만 해 주시고 ... 좀 상황 파악이 잘 안되었다.


피부가 괴사되고 있다는 얘기는 필자에게는 정말 커다란 걱정거리가 되었다. 안 그래도 사고 직후에 경과가 썩 좋지는 않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고 , 피부가 많이 들려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피부가 괴사되고 , 그것이 감염으로 이어진다면 그게 최악의 상황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는 셈이지.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


이 날이 아마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이 꽤 심란했다. 나름 또 기도해야 했다. 병원을 바꿔서 다녀야 하나 ... 아니면 그냥 믿고 다녀야 하나 ... 불안함을 애써 달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일단 지금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피부의 괴사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선생님만 그런 얘기를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적어도 피부가 괴사되는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 불안을 달래면서 그래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데는 기도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조금 더 큰 병원에서 '피부가 괴사하고 있는지' 에 대해서는 더블체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헌데 말이다 ... 우리나라 종합병원은 예약 잡으려고 하면 무척 힘들다. 가장 네임벨류가 높은 성모병원이나 서울대 병원 , 삼성 의료원 , 세브란스 병원 .... 이런 병원의 외래 예약을 하려면 2-3달을 기다려야 하는 일은 예사로 벌어진다. 여간 긴급한 환자가 아닌 다음에는 이런 병원의 응급실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는 경우들이 보통으로 벌어지고 있고 ... '현재 다니는 병원도 나름 큰 병원인데 , 더 큰 병원으로 옮기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을 받아줄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 순간 친구 P의 아내 C가 생각났다. ( 나는 그 둘과 모두 친분이 있었다. 그들의 결혼식날 운전대를 잡고 호텔에 데려다 준게 나였거든 ) C의 친정 아버지가 피부과 의사셨다. 나름 국내 대형병원에서 명망이 높았던 분이셨거든... 물론 그런 인맥을 통해서 종합병원의 그 촘촘한 예약시스템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못했다. 다만 그 병원에서 나름 실력좋은 선생님이 개업해서 나간 의원 정도를 소개받으면 좋겠다 ... 정도를 기대하고 띡 하니 문자를 보냈다. '손을 다쳤는데 어쩌구 저쩌구 ... 피부 괴사라고 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 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 어디 좋은 선생님 아는 데 없어? 어쩌구 저쩌구' 한 두어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아니 오빠 어쩌다가 그렇게 다쳐서 그랬어?... 혹시 지금 상처부위 사진 찍은거 가지고 있어? 지금 바로 옆에 우리 친정아버지 계시거든? 지금 봐 주신다고 하는데 사진 좀 보내 봐 줘."


아니 이게 왠 할렐루야란 말인가? 사실 확률로만 따지면 내가 그 순간에 전화를 했을때 , C와 C의 아버지가 같은 자리에 있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되며 , 또 내가 그 상황에서 C를 떠올렸을 때 , C가 딱 좋은 상황에서 문자를 확인하게 될 확률도 그렇게 높지 않은데 말이다. 암튼 그렇게 해서 문자로 상처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냈고 ... 20여분 뒤에 전화가 왔다.

"오빠? 사진 잘 받았고 , 울 아버지가 사진 봤는데 ... 피부가 괴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래. 검게 보이는 부분은 피가 피부 밑에서 굳어서 된 것이고 , 혀옇게 된 부분도 지금 괴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네. 잠깐 기다려 아버지 바꿔 드릴께"


완전 나로서는 할렐루야 할 얘기다. 물론 사적인 통로로 우리나라 피부과 최고봉 선생님에게 상처에 대한 조언을 받은 셈이라서 , 의사 한번 만나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 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한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손이 멀쩡하게 남느냐 아니면 많이 안좋은 상황으로 갈 수 있느냐의 갈림길이었던 지라 ... 다른 사람들의 입장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 지금이니까 생각이 들지 ... )


암튼 '이것이 기도응답인가...' 싶었던 순간이다. 아버님과 잘 통화하고 .... 치료 잘 받으라는 덕담도 들었다. 정말 감사했다. 나중에 냉면이라도 한 그릇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 그렇게 주말을 잘 넘겼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던 게 ... 전문가라고 할 지라도 어떤 전문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은 달라 질 수 있다는 것. 똑 같은 야구 코치라고 하더라도 어떤 코치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선수가 꽃필수도 있고 일찍 져 버릴 수도 있다. 똑 같은 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가 성장할 수도 있고 성장이 막힐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


결국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복 중의 하나가 만남의 복이 아닌가 싶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가 살아날 수도 있고 , 내가 팍 죽어 버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만남의 복이 부모 잘 만나는 것 , 그리고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일 테고 말이다....


암튼지 치료를 시작하면서 '의사 잘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치료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었는데 ,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이후에 나올 스토리에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결론 부터 먼저 말하자면 다른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 나는 그 의사선생님의 치료를 100% 신뢰할 수 있었다 ... 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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