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서 나에게 되어지는 일을 내가 컨트롤 할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을 사실을 소시적에는 잘 못했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뛰다보면 나는 내가 오를 수 있는 곳 까지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었거든. 헌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건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세상에 보면 참 고수들이 많고 많더라. 인격이 높고 지혜가 깊은 사람들도 많더라. 헌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명성을 얻고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느냐 ... 라고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 않더라. 오히려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 그들의 허상? 환상? 에 맞장구 쳐 주고 ,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허영심? 교만함? 에 어울려 주는 듯한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이 얻는 경우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사실 유명하다 ... 라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 봤을 때 , 종종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실력이 있는 거야 없는거야? 왜인지 이 사람이 지금 쌓은 명성은 다 그냥 말빨과 정치빨로 세운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도 세상에 보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 자신이 그만한 권한과 지위를 가질 자격과 역량이 없는데 그러한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 우리나라 처럼 학벌과 지연이 세상 살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 수 없더라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솔직히 있다. 보면 신앙적으로 그다지 성숙한 것 같지 않은데 한 교회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도 있다.
교회의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우편향 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 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교회를 정치판으로 몰고가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를 믿으면 ( 자신 처럼 ) 축복을 받고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만일 그러한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잘못 믿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봤다.
'자신은 예수를 잘 믿어서 지위에 오른 것이고 , 다른 사람들은 아직 신앙이 부족하기에 좀 더 굴러야 한다. 이 나이에 내가 구르랴? 너는 굴러라.'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봤다.
... 아마 전 교회 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믿는 모습을 수집한다면 정말 대단한 분량이 모일 것 같다. 적어도 저 위에 적은 것들은 필자가 직접 겪고 들은 이야기들이지만 ...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듣고 겪은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모아 본다면 정말 하나님께서 읽다가 뒷목 잡고 쓰러지실 만한 내용들로 채워진 수백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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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솔직히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켜 주셨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0.1 초도 안되는 찰라의 순간이었다. 공구가 튀어오르고 , 그 공구의 두꺼운 톱날이 필자의 손등을 직격했다. 헌데 하필 그 위치가 그나마 필자의 손을 살릴 수 있는 위치였고 ... 필자는 수술도 없이 , 치료의 어려움 없이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축복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총에 맞아서 부상 당한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다. 항생제도 구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치료 시기를 놓쳐서 간단한 치료로 회복될 수 있는 아이들도 손 발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의사를 만나게 되는 일도 많다고 한다. ( 국경없는 의사회의 유튜브 광고를 보면서 ... 이런 아이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마음이 아팠다 )
'하나님은 정말 공평하신가?...' 라는 질문을 해 본다. '하나님은 정말로 선하신가?....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가?... 라는 질문을 해 본다. 솔직히 그것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믿느냐 ... 라고 얘기한다면 필자는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과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 하나님의 때에 심판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이 회복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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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 그럼 적어도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른지를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하나님이 이런 고난도 주시기도 하고 , 저런 복을 주시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질데 ...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요 ... 저는 하나님의 복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 라는 것을 물었다. 사실 답은 금방 나왔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손가락이다. 그러니 남은 생애 이 손가락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되게 사용되지 않기를 기도하자. 노력하자. 또한 기왕에 손가락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살아 갈 거라면 하나님 뜻에 바르게 사용되기를 기도하자.'
사실 손가락 상태가 메롱이 된 이후에 깨닫게 된 것이 많다. 손이 멀쩡한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이전에는 몰랐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손이 멀쩡하기 내가 코딩도 할 수 있었고 , 운전도 할 수 있었고 , 글도 쓸 수 있었고 , 청소와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헌데 손을 다쳐서 그런 것을 못하게 된 이후에는 ... 알게 되더라는 거다. 그 모든 것에 손이 있었다는 걸.
지금도 그런 기도는 한다. 하나님 살려 주신 손이니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로 쓰다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게끔 하나님 제 마음과 생각과 지식과 가치관을 붙들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 하나님이 제게 보여주시는 일 이라면 기꺼이 제가 제 욕심 내려놓고 그 일을 위해 제 손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라고 말이다.
아마도 손을 다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헌데 손을 평생 못 쓸 수도 있었던 것을 '정말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손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 사실 그 손을 가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 지더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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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은혜입었다 ... 라는 개념들이 어쩌면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것을 통해서 '나는 너보다 좀 우월한 ... 그러니까 하나님으로 부터 조금 더 사랑받는 ... 좀 더 레벨이 높은 ... 그런 사람이다' 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용도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참 많이 보았던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하게 사랑하신다 = 그래서 그 사랑의 결과로 내가 부와 지위와 권한을 얻었다 = 그러니 내 지위와 권한은 하나님 주신거다 = 그러니까 나에게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대하는 것이다 ... 뭐 과거 중세시대 절대왕정을 추구했던 왕들이 내세우던 논리와 비슷하더라는 거다.
헌데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계속 축복만을 주시지 않는다. 축복을 주시기도 하고 ,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일방적으로 고난만을 주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일생을 통털어 가장 큰 고난이 '기르던 개가 죽은 것과 대학입시에 재수를 한것' 이라고 답할 정도로 평안하고 부족함 없는 인생을 주시는 경우도 있더라.
사실 하나님이 그렇게 주신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게 욥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생각이기도 하다. 욥은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물었지만 하나님은 엉뚱하게(?) 욥에게 많은 질문을 되물으신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욥이 과연 알면 얼마나 아는지를 물으신다. 욥은 그 앞에서 엎어져서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다 ... 이게 욥기의 주제이기도 하지. ( 고난 앞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의 욥기를 읽어 보기시를 정말 권한다 )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 우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 들인 다음에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가난한 자를 돕고 , 아픈 자를 권면하면서 서로 화평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의 지인 중에 ... 아이가 어려서 불치의 병에 걸렸고 , 시한부로 정말 얼마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아이와 그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는 그 판정을 받은 이후에 정말로 간절하게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의학적으로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 아이에게 일어났다. 그 아이가 나은 것이다.
헌데 그와 반대로 필자의 경우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게 시리 첫 아이를 잃었다. 그런 식으로 아이가 목숨을 잃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아이를 잃었다. 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참 많이 서운하기도 했고 , 하나님에 대해서 등을 지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사실 ... 필자의 경우 그 불치의 병에서 나은 아이와 그 어머니를 그렇게 반길 수 있는 마음이 들지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의 자식은 허무하게 죽고 , 누구의 자식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납득하기 어려웠다.
헌데 ... 시간이 지나고 나서 ,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 ... 그 아이와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들게 되더라는 거다. 아마 내 의로움과 내 정의감을 앞세웠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사람 차별할 수 있습니까?" 라는 생각에 갇혀서 아마도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남은 세월 보냈을 거다.
거기에서 다윗왕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불륜관계로 태어난 아이를 잃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음식을 먹었다는 성경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이 이해되었더라는 거다. ( 그냥 지식으로 아는 것과 이해되는 건 틀리다는 걸 예전 부터 알았지만 ... 늘 그렇다. 깨달아 지는 것만 내 삶에 유익으로 남는다. 그냥 아는 것과 깨달아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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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한 사람이 자신의 부요함이 진정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에 인색할 수 없다. 나는 축복받아서 이렇게 잘 살고 저 사람들은 축복받지 못해서 저렇게 못산다 ... 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거두어 가실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삶이라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이니 청지기 답게 하나님 보시기에 공의롭게 사용하고 , 하나님이 도로 달라고 하시면 도로 내어 드려야지 ...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같이 운이 좋아서 손가락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 이 손가락 하나님 지켜주심에 감사하고 , 어떻게 하면 이 손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일이 필요 할 것이고 ( 실은 이 글도 그러한 생각이 미쳐서 쓰게 된 글이기도 하다 ) .... 아울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손과 발을 잃을 수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 ...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사람들의 선행도 보면 ...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 경험한 것에라야 정말 진심이 담긴 선행을 할 수 있게 되지 , 그런 경험이 따르지 않으면 '선행을 통해서 결국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결과 밖에는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록 하더라는 거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보다는 키우는 반려견 반려묘와의 관계가 우선이 되었던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게 되고 , 소시적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은 사람들은 장학사업에 매진하게 되고 ... 결국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인생을 살아나가게 되니까 말이다.
아무쪼록 ...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독자님 한 분 한 분의 삶에 좋은 일도 있겠고 ,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 적어도 믿는 독자분들이라고 한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 그 통치를 잠잠히 받아들이면서 , 자신의 의와 정의를 내려놓고 ,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되어지게 하신 그 일을 받아 들이며 ... 믿는 자로서 그 모든 것은 견디고 살아내는 모습이 있어졌으면 ... 하는 바램이 있다.
결국 내가 내 잣대와 내 정의와 내 원칙과 내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기에는 ... 나는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 정의라는 것은 내 편협함의 영향권 안에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
이제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 부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런 권력이 없는 사람들 , 자식이 공부 잘하는 부모와 공부를 못하는 자식을 둔 부모 , 부모가 잘나가는 청년과 부모가 속썩이는 청년 ... 이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좋은 것을 나누는 모습이 ...
이 세상에 가득 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세상이 모두 그렇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적어도 내 손과 내 목소리가 닿는 범위 안에서라면 내가 하기에 따라서는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