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보면 은혜 또는 은총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한다. 사실 은혜/은총의 개념앞에 인간이 스스로 잘난척을 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것이야 말로 정말 순수하게 아무런 댓가 없이 하나님으로 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개념이니까...
기독교의 기본 교리와도 어느정도 은혜/은총.. 이라는 개념은 어울려 보인다. 인간이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라는 개념 말이다. 뭐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이라면 당연히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잘 꿰고 있겠지만 , 그래도 한번 아주 짧게나마 정리를 해 보면 ... 필자는 이렇게 정리 해 본다.
'애초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을 맺었고 ,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율법이라는 것을 받았지만 ,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벌어니니 제사를 통해서 그 죄를 사하여주는 제도가 필요해 졌고 ... 그 제사가 형식적이고 겉치레로 치우치면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어지고 ...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 하나님과 화해하며 ,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고 ... '
사실 하나님의 원리와 뜻 안에서 인간이 인간위에 올라서는 개념은 잘 없다. 물론 하나님이 지도자를 세우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사건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지도자가 '자신의 권위와 통치를 위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행위를 하나님이 좋아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진다.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와가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모세가 돌판에서 물을 낸 사건을 아마도 성경을 좀 읽어 보신 분들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사건때문에 지금껏 고생 고생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모세를 크게 책망하셨다. ( 민수기 20장에 보면 그 이야기가 나온다 ) 이 일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혼자 죽으라는 준엄한 댓가를 치뤄야 했다.
하나님이 왜 이리 야단을 크게 치셨을까? 물론 신학적인 지식이 뛰어난 학자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필자는 이렇게 생각 되어진다. "모세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 하나님의 방법대로 집행해야 했는데 , 모세는 당시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물을 주겠다는 식으로 백성들에게 접근했다." 즉 자기가 열 받았고 , 자신을 열 받게 한 넘들에게 본때를 보여서 확실하게 기강을 세워야 겠다는 마인드로 접근했고 ...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권위가 아닌 모세의 권위' 를 세우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징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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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병원 애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모세와 구약성경의 이야기로 갔느냐고? 앞서서 필자가 생각한 고민거리 , 그리고 나름 손등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하나님 안에서의 은혜거리 ...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보면 "다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은 부하게 태어나고 ,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 어떤 사람은 운 좋게 치명상을 명하는데 , 어떤 사람은 그런 운이 따르지 않아서 장애가 남을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되는지..." 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자신에게 되어지는 일을 자신이 조심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는 없더라" 라는 생각에 이르고 , 결국은 우리네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선택적으로 생길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지만 , 적어도 좋은 일이 생긴 사람과 나쁜 일이 생긴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고 , 위로하고 , 권면하면서 살아 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거든.
사실 그렇잖아?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좋은 일만 평생 생기다가 죽는 사람이 있을까? 제 아무리 부와 권력을 누리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거든.... 아마도 평생 불행한 일만 생기면서 살다가 죽는 사람은 있을른지도 모르겠다. 그거 까지는 필자가 알 수 없겠지만 ... 적어도 우리가 이런 생각은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지 않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유한한 것이고 ,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도 언젠가는 다 내것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온다. 적어도 그 때를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 정도 말이다.
헌데 말이다... 그런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잘 없다. 자신이 영원히 좋을 수는 없고 , 행운이라는 것이 오면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에게도 그러한 고난이 찾아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더라.
대신 '아직은 내가 승승장구하고 올라갈 때야. 내 운은 아직 꺾이지 않았어' 라든가 ,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를 저 사람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사랑하고 계시지 않을까?' ,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으니 구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고난을 주실 이유가 없어. 그런 고난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맞서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나에게 필요하지 않아' .... 등등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은 하나님의 고난과는 관계가 없다 ... 라는 쪽으로 생각을 끌고 가려는 것이 역력하더라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는 관계가 적어' 라는 식으로 생각을 몰고 가는 사람들의 특징.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는데 한계가 명백하다는 거다. 그 사람들의 고난을 위로할 줄도 모르고 , 어떻게 돕고 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사실 고난 당한 사람을 위로할 때의 가장 기본이 눈 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나도 언제든지 그런 고난 당할 수 있다. 내가 고난 당하게 된다면 , 지금 내가 위로하는 이 모습으로 위로받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성경에도 적혀 있지 않은가? 네 이웃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이웃을 대접하라고 말이다.
( 필자는 사실 우리가 자선을 베풀거나 , 복지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을 보호한다거나 , 아니면 내 인격으로 자선을 베푼다 라는 식의 눈높이의 접근이 아니라 , 나 또한 언제든지 저런 상황에 쳐해질 수 있다. 인생에 있어서 복과 고난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은 신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고난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라고 말이다 )
물론 그것들이 그 사람들의 인성이 저렴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사람들은 고난이 두려운거다. 고난에 얽히는 게 싫은거다. 해서 고난이라는 것은 쳐다도 보기 싫고 , 듣기도 싫은거다. 그런 식으로 고난당하는 자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것이고 ,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한 SNS 게시물을 보면 본능적으로 외면하게 되는거라고 본다. 두려워서 그런거다. 고난을 직시한다는 것이 말이다.
반면에 ... 고난을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은 좀 다르다. 얼마나 힘들었을른지 ... 얼마나 지금 마음이 무너져 있었을른지가 느껴진다. 정말 없는 살림을 쪼개어서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 고난 당해 본 사람들이 고난 당하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결코 그 사람의 위에서 자선을 베푸는 포지션이 아니다. '나도 겪어 봤어요.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은혜주신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길 바래요' 라는 식의 마음이 느껴지는 포지션이라고 할까나 ...
사실 고난 당해 보지 않고서 고난 당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그렇더라. 아무리 간접체험을 해 보고 , 고난을 수치화 해서 그래프로 분석하는 일을 빠삭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고난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욥기에서 등장하는 욥의 지혜로운 세 친구들은 당대의 석학이라는 해석을 한다. 헌데 그들은 계속해서 욥을 위로한답시고 들들 볶는다. 그리고는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에 인과응보의 형태로 지금 너는 벌을 받는거야.' 라고 욥에게 이야기 하고 , 욥은 '내가 그렇게 까지 잘못한 거 없거등?' 으로 일관되게 방어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깨갱한다.
사실 아무리 학문이 높더라도 고난 당해보지 않고 자신이 고난받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은 그 사회적 , 심리적 , 육체적 ... 아주 다양한 방면에 영향을 미치거든 ... 그걸 문자와 숫자로 이해할 수 있을까? 천만에 이해 못한다. 해서 필자는 인공지능은 필히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기계는 이해 할 수 없다 )
필자는 고난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익은 커녕 ... 그거 때문에 망가지는 인생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다. 고난은 인간 내면을 깊이 만들어 줄 수 있을른지는 모르겠지만 , 고난 때문에 인간이 망가지는 경우도 수두룩 하더라는 거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 깊이를 깊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자처하는 거? 필자는 왠만하면 말린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 고작 내면의 깊이를 깊게 하기 위해서 그 힘든 경험을 구지 자처하지 않더라도 , 살다 보면 고난은 오토매틱으로 찾아 오게 되어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고난에 대처하는 것 만으로도 인생살이는 충분히 험난하고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난이 아니고서는 사실 고난 받은 자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난을 경험 했기 때문에 다른 고난 받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 , 다음번에 찾아오는 고난에도 어느정도 대비할 수 있을 것이고 , 앞으로 고난을 당하고 살아갈 다음 세대들을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의 세계도 그렇더라. 결국 실력은 위기관리에서 나오더라. 딱 시키는 대로만 매뉴얼 대로 코드를 짜는 사람들은 사실 큰 위기를 겪을 일이 없다. 헌데 자신이 스스로 설계하고 구현해서 적용시키는 가운데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원점에서 부터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해 본 경험을 해 본 엔지니어들은 그런 일 한번 겪고 나면 망가질 수도 있겠지만 내공이 엄청나게 상승할 수도 있다.
솔직히 고난이 필자도 반갑지는 않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라면 필자도 망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면에 망가지지 않고 닥친 고난을 잘 해결하고 맞서게 된다면 그 만큼의 인생의 깊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거든.
크리스챤 들이라면 어차피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최후의 최후가 해피엔딩으로 정해진 인생이라면 고난이 두려워서 피하고 피해서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 피하지 못할 고난이라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어떻게든 살아 내 보고 ...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서 위로하고 , 격려하면서 정말 그냥 피상적으로 알고 지내는 수준을 넘어서는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인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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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신은 하나님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아 고난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독자 분이 계시다면 , 앞서서 적은 모세의 이야기를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바란다. 모세의 권위는 하나님으로 부터 왔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이니 그것을 거두실 권한도 하나님에게 있다. 모세는 한번의 실수로 하나님으로 부터 야단을 맞고 ,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에 대한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우리네의 복도 이와 같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 우리가 잘못해서 거두어 갈 수도 있고 , 우리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거두어 갈 수 있다. 그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고 ,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인간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욥기 후반부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잘 그려진다 )
... 실제로 인간이 노력하고 노력해서 쌓은 명예와 재물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일은 빈번하지 않나? 그러니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믿는 자로서 잘 살아내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손을 떠나게 될 때의 순간은 언젠가는 오게 되어있다. 그것이 죽음이든 심판이든 고난이든 차이는 있겠지만 ,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하는 모습이 믿는 자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자신이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 특별히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은 고난을 당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고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혹시 생각하고 있다면 ...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닥칠 수 있는 고난을 미리 준비시키시고 , 고난 가운데에서도 당신이 온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수도 있으니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고난을 전혀 모르고 그냥 행복만 좋아하는 사람은 별 재미 없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기도제목을 물으면 '요즘 골프 스코어가 잘 안나서 속상해요. 기도해 주세요' 라는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