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 낼 수 있는 은총

by 하얀늑대

손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필자는 스스로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 그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에 비해서 손 부상 이후의 삶이 너무 풍요롭기 때문일거다. 잠들기 전에 손가락을 까딱 까딱 해 보면서 마구 마구 충만함을 느낀다. 정말 그 시간 만큼은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면서 손가락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점검해 보고 , 마지막으로 아무는 흉터를 쳐다본다. 그리고 매우 매우 만족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 한다 ...


솔직히 생각해 보면 좀 미친것 같기도 하다. 필자가 평소에 바라고 원하던 것들은 그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욕구충족으로 인한 만족감 같은 거랑은 완전히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게 현실이다. 헌데 적어도 지금 만큼은 필자는 그 삶이 즐겁다. 그리고 삶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만족감을 느낀다. 적어도 지금 만큼은 말이지 ... ( 아마도 조만간 또 삶이 힘들고 막막하다고 툴툴 거릴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은 있다 ㅋ )


그러면서 한번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사람이 욕구를 구지 충족하지 않고서도 잘 살수 있을까?...' 라는. 헌데 그것은 좀 무리가 따를거라는 생각은 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학교에서 지나가듯 배운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에 관련된 이론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 욕구가 심하게 결핍된 사람이 망가진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현실이니까 말이다.


어릴적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인생을 살아내지 못하고 , 어릴적 충분히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폭력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인생도 보면 망가지기 일쑤고 , 가난 때문에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는 가치관의 붕괴로 이어지기도 하고 , 유아기적 배변 훈련때 제대로 환영받지 못했던 경험이 애인과 배우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는 넘치고 넘친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충분히 채움 받지 못했을 때에 망가질 수 있다.


( 사실 백퍼센트 모든 사람들이 다 망가진다 ...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심리학 이론에 있어서는 그 채움 받지 못한 욕망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내면 세계로 이어지고 , 무의식의 세계로 이어져서 언젠가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지만 말이다 )


헌데 말이다 ... 인간이 과연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욕구를 충분히 채우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나? 선진국이 아닌 후진국 까지를 포함하게 되면 ... 거기에 인구는 넘치고 넘치는데 사회 환경은 선진국에 비해서 지극히 불안한 저개발 국가 까지를 포함하게 되면 과연 인류는 자신이 필요한 욕구를 충족 받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거기에 인간의 욕구는 점점 늘어난다. 매슬로우의 이론에 의거하면 하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게 되면 인간은 상위단계의 욕구로 이어지게 된다. 헌데 그 상위단계의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데는 비교적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는 원칙에 의거하면 이 상황에서 '욕구를 채우기 위한 제한된 자원을 놓고 쟁탈전이 발생할 수 있을거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거다.


즉 ... 누군가의 하위 단계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자원을 빼앗아 와서 누군가의 상위 단계의 욕구를 채우는 쪽으로 사회는 돌아가게 될 것이고 ... 결국은 가난한 자도 당연히 채움 받지 못한 욕구에 허덕이겠지만 ... 상위 단계의 욕구를 채우는 자도 결국에는 한계에 부딛쳐서 자신의 채움받지 못한 욕구에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날이 오게 된다.


결국 인류 모두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불행을 부여잡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어떻게든 최악을 막아보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성경의 창세기 안에서 아담이 저지른 원죄 때문에 인류 모두가 짊어지게 된 죄의 결과라는 생각을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한다. )


사실 ... 대충 머리만 굴리더라도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건 중딩들도 알 수 있다.


1. 인간은 욕구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면 망가진다.

2. 인간의 욕구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하위 단계 욕구를 채우면 또 상위의 욕구를 채우기 바란다. 일시적으로 욕구를 충족하게 되는 시점에는 만족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3.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리소스는 제한 된다. 그것을 둘러 싼 제로섬 게임은 존재한다.

4. 빼앗긴자는 하위 욕구를 채우지 못해 가슴을 부여잡고 살고 , 빼앗은 자도 계속 늘어나는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가슴을 부여잡고 산다.

5. 모든 인류는 그렇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 한다. 즉 인류는 욕구 때문에 결국 이렇든 저렇든 불행할 수 밖에 없다.


필자의 오랜 친구 한명이 대학시절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군 생활이 힘들어서 친구에게 털어놓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 때 그 친구는 아직도 필자의 머리에 남아 있는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주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 건 당연한 거야. 군대 생활도 마찬가지야. 군대 힘든건 당연한 거 아냐? 그거 받아들여. 군대가서 뭐 대단한 일 하려고 갔냐? 그냥 다치지 말고 그 시간 어떻게든 보내다가 때 되면 제대하는 게 군대생활 아냐? 뭐 너 지금 군대생활에 뭐 대단한 거라도 기대하고 있냐?"


맞는 얘기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서글펐다. 삶이라는 것은 결국 힘든 거구나 ...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고생과 수고만 하다가 아픈 가슴 부여잡고 죽는 것이었구나 ... 라는 걸 인정하니 말이지. 사실 그 군대시절도 힘들었지만 ... 그 이후에 그보다 더 힘든 시절은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필자가 생각하는 그나마 인생이 온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욕망의 가공" 이다. "충분히 가공된 욕망" 이라면 구지 채워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삶을 갉아먹지 않고 , 오히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헌데 이건 사실 종교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다분히 영적이다. 마치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색즉시공' 과 같은 개념일 것 같다는 거지.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고 ,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또한 자신으로 부터 떨어트리고 객관화 시켜 어떤 영적인 체험 속에서 재 정립하는 작업 말이지 ...


마치 이건 우리가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 그것에 대해 충분히 애통하는 시간을 가지고 위로를 받으면서 그것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는 것과 유사할 것 같다. 욕망 또한 그것을 직시하고 , 그러한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 그것을 이룰 수 없고 또한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으로 남지 않도록 깨달음을 쌓는 경험 말이다.


사실 필자는 이것을 어떤 수식이나 이론으로 정립 할 만큼의 식견도 없고 , 능력도 없다 . 하지만 말이다 마치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손주를 키우면서 '나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그저 손주 녀석 건강하게 자라주면 된다. 그리고 따뜻한 봄날에 조용히 세상을 뜰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게 뭐가 있겠나' 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필자도 살면서 보면 요즘 손을 다쳤을 때 처럼 ... 뭔가 '삶이 충만한 느낌이 있을 때'는 욕구가 구지 충족 되지 않더라도 꽤 잘살았던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이구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인데도 , 뭔가 충만한 기운이 있어서 사는게 힘들고 어렵지 않더라는 거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심리학적으로 이야기 하기 어렵더라는 거다. 필자의 경우에는 한 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관련된 책을 좀 사서 나름은 공부를 했었다. 물론 심리학을 평생에 걸쳐서 공부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식이지만 ... 적어도 그 부족한 식견 아래에서라도 '채워지지 않은 욕구 때문에 망가졌어야 하는 인생이라고 봤는데 , 이것이 영적인 그 무엇이 존재해서 인지 이상하게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는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심심치 않게 관찰되곤 한다.


필자는 이것을 가르켜서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성령으로 부터 공급받는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필자도 직접 했고 , 고난을 견디어 내면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로 부터 유사한 이야기를 들어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듣게 될 것 같다.


물론 인간은 욕망이 없으면 사는게 더 골치아플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하는 많은 약들이 사람을 힘이 없고 축 늘어지게 만든다. 한마디로 삶의 의욕을 꺾어버린다. 삶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행복도 같이 없어지게 만드는 형태의 약물이 처방된다.


'아니 고통만 없애고 행복감은 남길 방법이 없을까?' ... 라고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건 쉽지 않지 않을 것 같다. 삶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 본성을 무시하는 것도 불행을 향하게 되지만 , 그 본성에 충실한 것 또한 불행을 향하게 된다는 건 대단한 철학자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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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필자는 요즈음 '어떻게든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에 주목하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부분 까지도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기를 소망하고 , 또한 자신의 두려움을 그대로 인정하고 , 그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또한 소망한다. 이런 걸 달라고 하면 과연 하늘에서 그런 것이 뚝 떨어지나? 기독교를 믿는 다는 것은 그런 걸 믿겠다는 것 아니겠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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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초기 기독교가 퍼지던 로마시절 ... 기독교도들은 극심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잃지 않았다. 로마의 압제 때문에 기독교도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흩어졌다. 그리고는 그 트라우마 때문에라도 기독교를 버려야 할 것 같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더 전파시키고 전파시켰다. 사실 그 때에 흩어진 평범한 기독교도들 때문에 로마는 결국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다.


( 사실 성경상에 나오는 사도들과 바울 같은 인물들은 그 박해 시절에 다 죽임을 당했다. 지도자가 없어진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 ... 그리고 박해 때문에 잔인한 죽음까지 당해야 했던 경험들 ... 사실 기독교가 융성해 진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 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한 때의 사이비 종교 처럼 사그러졌어야 맞는 상황을 뚫고 지금의 기독교에 이르게 된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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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안의 소망인 줄 알았는데 , 깊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솔직히 필자는 그 사람 대단한 고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직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다. 자신의 약점과 아픈 부분을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고 직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이다.


그렇게 직시 할 수 있어야 자신과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네가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라는 내로남불이라는 얘기를 알지 않은가? 보통 다들 이런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내가 인정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불륜이네' 라고 말 할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너 지금 하고 있는거 불륜이야' 라고 이야기 해 주었을 때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더 큰 용기다. ( 다윗이 그랬었다 )


필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시켜서 제 3자의 처지에서 바라 볼 수 있다면 , 그 뒤는 영적인 가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회개하지 않는 죄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 자신이 하고 있는 이것은 죄가 아니라고 우기고 떼쓰는 가운데는 그 죄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 없다. 마치 욕망과 자신이 동일체가 된 것 같은 상황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작업 ... 그것이 회개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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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필자가 손을 다친 이후에 드는 생각 ....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하자...'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도 포함된다. 아마도 필자 또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가지고 마음을 움켜쥐고 살아갈 날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다 죽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삶을 만족할 수 있고 ,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다.


아마도 어떤 욕망은 채워지지 않아서 나를 매우 힘들게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 어떤 욕망은 깨끗하게 내려놓고 포기하면서도 아쉽거나 힘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부분은 솔직히 물질세계의 영역으로는 해석이 안 될 것 같다. 어떤 영적인 영역 - 종교적인 영역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어느정도는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어디론가로 부터 공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하고


필자는 다른 종교에서는 그런 것이 있다 없다 ... 이런 것을 논할 자격은 없다. ( 다른 종교를 열심히 믿어 본 적이 없어서 ) 하지만 기독교 안에서라면 ,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 상에서의 용서 , 죄사함 그리고 그 이후에 성령이 내려오고 믿는 사람들 각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고 역사하는 과정을 통해서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 , 거룩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 죄를 사하여 주신 것과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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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필자는 '한명의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 평생을 서로 싫증내지 않고 친밀하게 살아갈 수 잇는 것도 사실 어떤 영적인 힘이 없이는 어렵지 않나 ... 하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다. 물론 이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 그렇다고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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