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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r 04. 2017

스펙싸움에는 창의도 이야기도 감동도 없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스펙경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했다. 아마도 젊은이들 중의 상당수는 이러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는 줄 잘 안다.


그리고 사실... 필자의 의견이 진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많은 부분 토론과 수정의 여지가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아마도 '스펙경쟁'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필자의 소신이고 또한 양심에 의거한 생각이기도 하다. 혹 누군가가 스펙경쟁이 가장 객관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임을 증명한다 하더라도 필자는 "그 보다는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고 주장 할 것 같다.


이번 글은 "왜 필자는 스펙경쟁을 아니꼽게 보는가" 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적고자 한다. 이 부분은 나름 필자의 교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필자의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스펙경쟁에서 절대 유리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기에 필자는 필자의 교실에 모인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너희들이 스펙경쟁에 뒤진다고 해서 절대 너희들이 인생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안되. 그냥 걔네들은 시간과 돈이 남아서 그런 말도 안되는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너희들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하거든. 너희들은 오히려 일찌감치 스펙경쟁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다른 방향을 찾아 나선 선구자가 될 기회를 본의아니게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깐 기 죽을 필요 없어" 


사실 공부하는데 있어서 자존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스스로에 대한 패배의식에 푹 젖어있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공부도 소용이 없다. 조금만 어려운 일에 부딛쳐도 '난 안되. 나 같은게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고는 지례 겁먹고 움츠려 들게 된다. 해서 필자의 경우에도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다. 하지만 필자가 제 아무리 공을 들이더라도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가족들이다.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스펙이라는 것은 결과다. 사실 스펙을 이야기 할때 '토익이 몇점' 이라는 결과가 중요하지 그 스펙을 쌓기까지의 과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도 그다지 없다. "스펙을 이야기 할때, 그 결과만이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스펙경쟁은 무의미 하다" 라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싶다.


사실 공부에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정이다. 수학 문제를 풀어나갈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하고, 적절한 풀이 방법을 생각해 내고,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을 적용하고 응용하면서 열심히 시간을 들여서 풀었지만 틀렸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문제를 틀렸기에 점수는 얻지 못했겠지만 그 풀이과정에서 '내가 왜 이 문제를 틀렸을까..' 에 대한 고민은 실제로 학생을 성장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앞서서 필자는 if 문장을 수십개 써서 코드를 만들어 낸 학생에게 조금의 요령만 가르치면 그 학생은 실력이 쑥~ 올라가 버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적은 바 있다 ( 필자의 친구 프로그래머가 그 글에 대한 동감의 글을 적어 주기도 했다 ㅎ ) 즉 틀린 문제를 왜 틀렸고 어디까지는 맞았고 어디부터 틀려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한 문제를 통해 분명 그 학생은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것들이 쌓여서 진짜 실력이 되는거다.


해서 필자는 필자의 교실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절대로 너희들에게 판에 박은 것 같은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너희들의 혼신의 힘이 담긴 오답을 원한다. 그러니 정답을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답을 얘기해라. 틀려도 상관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필자의 교육관에 많은 사람이 긍정할 거라는 거 알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족집게 교육 - 정답만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풀이요령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교육 - 이 성행하는 건 사실이다. 왜냐? 생각해서 틀리는 문제는 0점이지만 요령을 터득해서 맞춘 문제는 100점을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리고 그 점수는 곧 평가가 되어서 그 사람의 우수함을 이야기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기 때문이고.


사실 아무리 전인교육이 중요하고, 과정이 강조가 되는 교육이 중요하고 창의성 운운해도 일단 점수가 안나오면 뭐 말짱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특히 그것때문에 상처입을 학생들과 조급해할 학부모를 생각해 본다면 그저 '점수 못올려준 선생님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스펙쌓기는 필자가 보기에는 결과만을 쫓는 공부다. 토익점수를 올리는 요령을 터득해서 어떻게든 점수를 올리는 것이고, 공모전에 통과 할 수 있을만한 요령을 전수받아 상을 받는 것이지 그 안에는 자신의 고민이나 열정이나 특히 "나는 이런게 정말 하고 싶었다" 라는 애정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기에 필자는 스펙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만을 쫓아가려고 하면 사실 요령을 익혀서 그대로 하는게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중간고사의 한국사 시험이 과거 10년 동안에 출제된 시험문제에서 거의 그대로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백프로 "한국사는 기출문제만 보면 되, 다른 공부 할 필요 없어. 그것만 보면 90점은 나오니까 그 과목은 그렇게 공부하고 한국사 이외의 다른 과목에 시간을 배분하는게 경제적이야" 라는 전술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 나 같아도 그렇게 공부하겠다 뭐 )


하지만 말이다. 요령껏 공부해서 점수는 올렸지만 남는게 있을까? 점수는 땄겠지만 정말 그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연산군이 왜 그렇게 삐뚤어진 왕이 되었을까' 를 궁금해하고 궁리하면서 과거의 역사로 부터 배우는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연산군의 어머니 윤비는 연산군이 어렸을때 자신의 그릇된 행실에 더해 권력투쟁에 휘말려들었기에 사약을 먹고 죽음을 당했는데... 이 상처가 연산군에게 깊은 트라우마가 되었을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 역사를 통해 절대권력을 가진 군주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얘기다.


요령은 결과를 추구한다.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 많은 생각의 여지들을 차단하고 답을 맞추기 위한 생각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생각'을 효율적이라는 명분으로 비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공부에는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창의성은 커녕 응용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문제를 풀때는 한 문제를 풀던 방법이 다른 문제에 어느정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서 영어에서 I am Tom 이라는 문장을 해석할때의 원리가 I am a student 문장을 해석할 때 일부는 쓰이지만 일부는 새로이 배우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헌데 I am Tom 이라는 문장을 그냥 문제 답 달달 외워서 '나는 탐이야' 라고 요령껏 공부한 학생은 뒤이어 오는 'I am a student' 라는 문장에 대해서 또 다른 족집게 가르침을 바랄 뿐, 스스로 배운 것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은 잃어버리게 된다...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한마디로 나는... 까지는 알겠는데 a 는 뭐고 student 는 뭐야? 또 왜 소문자야? 이런거지 )


문제를 푼다는 것은 대부분 '과거에 내가 풀었던 문제에서 비슷한 사례를 생각하고, 그 일부를 차용하고 조합해서 풀어내는 형태" 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풀어내야 하는 형태의 문제는 거의 학창시절 대학시절을 경험하면서 접한 기억이 없다. 헌데 한 문제를 요령껏 풀게 되면? 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내가 반드시 겪어야 할 일들은 그냥 건너뛰어 버리고 결과만 맞추는 꼴이 되는데... 필자는 솔직히 이렇게 "요령껏" 문제를 푼 사람들이 나중에 시간들여서 그 문제를 깊이있게 다시 공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거의 백 퍼센트 "맞았으니까 되었다. 잊어버리자구" 로 귀결되더라는 얘기다. 


( 사족 : 이래서 필자는 대학의 학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열심히 리포트를 써서 오답을 냈건 정답을 냈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열심히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해 볼 수 있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깐 )


이래서 필자는 스펙경쟁은 필연적으로 결과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결과만을 추구하는 공부는 필연적으로 내용과 과정의 부실함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내용과 과정의 부실함은 결정적으로 학생들이 사회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응용능력의 부실함을 만들고, 나아가 창의력을 갉아먹는 길로 접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런 결과만 쏙 뽑아서 성취하려는 요령은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 많은 이야기거리를 없애버린다. 예를 들어 "누구는 누구와 결혼하기로 정답이 정해져 있다" 라고 셈 치자. 두 사람이 결혼하기 까지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없이 그냥 결혼했다고 셈 치면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줄 만한 이야기가 있을리가 없지 않을까? 


오히려 "이 사람과 내가 정말 결혼해야 하는건지 아닌지"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러면서 서로 기대하고 바라고 어긋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 가운데서 서로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내가 이 사람과 같이 살기 위해서는 이런 생각은 버리고 이런 건 기대할 수 있겠구나..." 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갈등없고 고민없이 꽁으로 먹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내가 자라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그것이 오히려 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내 스스로 발로 걷어차는 일을 만들지 않을까?" 이게 필자의 생각이다.


나쁜남자와 연애하다가 상처받고 헤어질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극복한 뒤에는 착한남자를 바라보는 눈이 분명 달라질거다. 연인의 선함과 배려심에 깊이 감사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될거다. 그런 안목은 대체로 실패를 통해 얻어지더라. 그래서 보면 첫사랑과 결혼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첫사랑과 결혼하면 골치아픈 경우가 무척 많다. ㅎㅎ ( 아무런 고민없이 결혼한게 좋은게 아니다. 매사가 그렇더라 뭐 )


사실 인생살이 정답이 어디있나? 완전한 정답도 없고 완전한 오답도 없는게 인생이라고 보고, 사실 코딩도 그러하다. 처음에 익힐때야 문법을 외우고, 예제를 외우느라 기본에 얽매이지만 기본이 어느정도 무르익은 다음에는 사실 '반드시 이렇게 프로그래밍 해야 한다' 라는 원칙은 없는거다 ( 솔직히 그런 걸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같은 학문도 있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건 또 그 나름대로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고 본다. 엔지니어링 적인 접근으로 장인정신은 못 담아낸다 )


해서 스펙에는 과정이 없다. 결과만 있다. 그러기에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가 없기에 감동도 없고 열정과 사랑도 없다. 개성도 없다.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오답을 놓고 벌이는 치열함이 없기에 응용도 없다. 그러니 창의가 나올리가 만무하다... 


이게 필자의 생각이다. 해서 스펙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괜찮다. 그냥 포기해라. 미련도 아쉬움도 둘 필요도 없다. ( 사실 그럴만한 가치도 없다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 그리고는 열심히 오답을 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열정과 시간을 들이기에 충분히 고상하고 괜찮은 일들을 찾아 나서길 권고한다. 또 그런건 젊었을때 아니면 잘 못한다. ㅎㅎ 그러면서... 그 열정과 시간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고, 그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적을 수 있으면 그게 스펙보다 훨씬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감동적이지 않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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