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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r 07. 2017

배려하며 지킬 예의, 배려받으며 지킬 품위

필자가 강의하는 교실은 정부 지원으로 개설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때로는 자기 부담금이 얼마간 있는 과정을 강의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수업료는 물론 기본적인 용돈 수준의 수당까지 정부에서 지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과정에서 같은 내용을 강의하더라도 좀 다르다. 다시 이야기 하면 수강생이 어느정도의 수업료를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는 교육과정을 진행할때와 수강생이 한푼도 내지 않고 전액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교육을 받을 때의 분위기가 확실히 좀 틀리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차이 때문에 교육 결과도 좀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많다.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실제로 자기 돈을 200만원 정도 내야하는 과정이 있었고, 한푼도 자기 돈을 낼 필요가 없는 과정이 있었는다. 물론 수업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사실 이건 교육의 개설 연도에 따라서 정부의 예산이 얼마가 책정되었는가에 따라 지원금액의 차이때문에 발생되는 차이인데, 사실 강의하기가 힘든건 자기 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과정이 훨씬 힘들었다. 자기 돈을 전혀 내지 않는 경우보다 자기 돈을 어느정도 내는 강의가 열의가 더 높았다.


사실... 실제로 자기 부담금이 200만원 정도 되는 과정의 경우에는 그 200만원에 해당하는 수업료를 4번에 걸쳐서 나누어 납부해야 했는데,  교육비를 납부해야 하는 마감일 즈음에는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이 보여서 애써 외면하고 수업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다.


친척에게 제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녀석도 있고... 고향의 부모에게 좀 도와달라고 이야기 하는 녀석... 거기에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녀석... 이런 저런 사연들을 보아 하니까 전체 입과생의 한 절반 가까이는 수업료를 내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수업료 때문에 규정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여간 그 교육기간 내내 수업료와 관련된 안타까운 일들은 늘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 사실 정부의 지원이 약간이라도 들어가는 과정에 입과하는 수강생은 아르바이트도 금지된다. 취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


하지만 이렇게 자기 부담금이 어느정도 들어간 경우에는 확실히 자신이 수업료를 부담하지 않는 경우에 비하여 보면 수업태도는 진지했다. 여기서 들어간 돈을 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취업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중간에 이탈하는 인원도 적었도 집중도도 높았다.


거기에 비해, 국가에서 100퍼센트 지원금이 나오고 , 자기부담금이 전혀 없는 교육에서 가르칠때는 그런 교육비에 대한 부담때문에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일은 당연히 없고, 따라서 돈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오히려 "내 돈 들어간게 없으니 언제든지 그만두더라도 나는 잃어버릴게 없다" 라는 생각이 들어가서 그런지... 의외로 이탈자도 많고 수업에도 건성건성으로 임하는 학생도 많은 편이었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질"을 보여주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즉 "지금 너희들이 듣고 있는 이 강의는 다른곳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수준 높은 강의다. 공짜라서 싸구려로 생각하면 안된다." 라는 것을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납득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은근히 공짜는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심 공짜가 괜히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는지라, 조금이라도 허술한 분위기를 느끼면 '공짜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그냥 버려 버리는... 그런 느낌으로 사람들이 교육을 바라보는 경향이 확실히 있더라는 거다. 해서 "지금 우리는 끝내주는 강의를 듣고 있는거야. 인생 몇달 여기에 집중해야 할 의미가 있어"  라는 분위기를 확실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필자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 경험자 내지는 전공자들에게 수업의 가치를 인정받는 방법을 사용한다. 코딩을 해 본 사람만이 가지는 설득력을 활용하는 셈이다. 마치 물건을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들로 부터 나오는 입소문을 사용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들을 통해 '제대로 된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꽤 중요하더라. 


해서 해서 필자는 경험자 또는 전공자들을 가능하면 스터디 그룹의 중심적인 인물로 임명하는 편이다. 그들을 반 안에서의 여론을 이끌어내는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 스터디 그룹을 통해서 반의 학습분위기를 만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점심시간은 서로의 친분은 가볍게 무시하고 "스터디 그룹원들 끼리 반드시 점심은 같이 먹는다" 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스터디 그룹원들이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미팅을 진행하고, 거기에서 나온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형태로 스터디 그룹장들에게 어느정도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줌으로서 반 분위기를 이까는 노하우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면 반의 여론의 중심은 경험자와 전공자들에게 실리게 된다. 마치 대의정치를 하되 실제로 강의장에서 일어나는 강의에 반의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영향을 끼치는 길을 만들어 주고, 필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수준높은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험자/전공자 들과 좀 더 밀접하게 협력하는 ... 마치 작은 의회와 작은 정부의 모습으로 반을 끌어나가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반 분위기를 다잡으려면 경험자/전공자들에게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것과 비교한다면 여기서 꽤 수준높은 강의를 배우고 있다" 라는 진심어린 인정을 받아 낼 필요가 있다. 해서 필자는 아이큐 110 - 120 정도의 비전공자들을 타겟으로 하면서 동시에 4년제 대학에서 컴공을 전공한 학생들 또한 중요한 강의의 타겟으로 삼고 있다. 그들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는 강의를 해 주어야 그들을 통해서 전체의 에너지가 순환하기 시작한다. 만일 전공자/경험자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강의라면 이런 방법을 함부로 쓰기 어렵다.


해서 공부가 참 어렵다. 이런 것 까지 생각해서 강의를 해 나가지 않으면 자칫 반 안에서 생겨질 수 있는 "공짜로 배우는 강의가 뭐 대단하겠어?" 라는 의구심에 반 분위기를 빼앗길 수 있는 기회를 여러번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그 교실은 공부를 좀 하는 학생과 포기하는 학생으로 쫙 갈라지게 된다. 그리고 포기하는 학생들은 명분으로 "공짜로 하는 강의니까 대단할 것 없다" 라는 것을 내세우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안 좋은 이야기가 반에서 한번 돌아버리면 정말 골 때리는 일이 벌어진다. 쉽게 얘기하면 극단적으로 부정적일 수 있는 사람에게 여론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되는데... 그러기가 너무 쉽다는 거다. 


필자가 실제 경험한 이야기다.


필자가 처음부터 강의를 시작한 과정에 비해 중간에 넘겨받은 교실에서는 상당히 분위기를 다잡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험이 많았는데, 필자 이전에 4주 정도 강의가 진행된 이후에 넘겨받은 교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이전의 선생님이 좀 경험이 부족하고 마음이 여린 편이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긴한데... 초반에 전공자와 입과전 프로그래머로 근무했던 인력들 몇에게 한마디로 약점을 좀 잡힌 모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전공자인데... 내지는 프로그래머 출신인데 저 선생님 솔직히 좀 별로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버린 듯 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니까 수업시간에 그 몇몇 인물들은 수시로 자리를 이탈해서 "야 지금 수업시간에 얘기하는 거 하지 말고 이거 해. 이게 더 중요해" 하면서 수업의 권위에 먹칠을 하고 다녔는데, 문제는 그 선생님이 이걸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고 그냥 무시하고는 "너희들은 무시해라 나는 그냥 내 강의 할테니" 라는 식으로 한달 정도를 끌어 왔다는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해서 필자 같은 경우는 조금 충격요법을 썼다. 한 며칠의 수업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특히 이전 선생님의 수업을 무시하고 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고 다니던 몇명에게 신경을 썼다. ( 한마디로 실력으로 좀 눌렀다는 얘기다 ㅎ ) 그리고는 강온 양면으로 개별적인 설득 작업을 해야 했다. 물론 몇몇을 신경쓴다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 전원에 대한 개별면담을 하는 형식을 갖도록 했지만...


그러면서 좀 더 온순한 인물로 반장도 다시뽑고... 상담을 통해 반 전체에 긍정적인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것 같은 인물에게 스터디그룹을 이끌도록 하고, 좀 자유로운 인물에겐 충분한 자율을 보장하되 대신 반 전체의 수업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안한다는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거의 한달 정도의 시간을 흩어진 반 분위기를 다시 추스리느라 쉽지 않은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 ( 장기 교육과정은 이런게 더 힘들다. 그냥 강의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이 강의에 집중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


그 강의가 필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어려웠던 강의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좋게 마무리 하긴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개설되는 과정의 경우 특히 신경써야 하는것이 "공짜라고 해서 허술한 강의를 내 놓아서는 절대 안된다" 라는 거다. 오히려 자기 돈을 내는 강의보다 더 신경써서 교육이 가져야 할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 받는 사람들로 부터 "공짜가 다 그렇지 뭐"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런 분위기가 교실을 휩쓸게 되면 그 교육은 제대로 된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은 지원대로 하는데도 수강생들은 강의를 불신하면서 "그래 공짜로 이딴거나 받아 먹으라고 우리를 우습게 아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또한 교육에 입과하는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기본적인 윤리를 분명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듣는 무료교육이라고 해서 건성으로 교육에 임한다거나, 여차하면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교육받고 그 교육받은 만큼 다시 납세자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나라에 돌려준다"  라는 마인드를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면 이거다.


배려하는 자가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또한 배려받는 자가 지켜야 할 품위가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에서도 , 교육기관에서도, 그리고 수강생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큰 원칙을 가지고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뭐 필자도 강의를 지금껏 해 오면서 나름의 아이디어도 있고, 노하우도 있지만 핵심은 위에 적은 두 줄이다. 예의와 품위...


시스템을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사람들의 인식이 따르지 않은 시스템은 최악을 면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초기 정부에서는 미국의 정치제도의 장점과 영국의 정치제도의 장점을 따서 제일 좋은 제도를 만드려고 시도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식으로 도입되는 제도는 결국 모두에게 인정 받지 못한다. 영국의 정치제도 뒤에는 영국 사람들과 영국역사가 있는 것이고 미국의 정치제도 또한 그러하듯이...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필자는 적어도 필자가 가르치는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의 대원칙은 "예의와 품위" 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효율적으로 최선의 제도가 아니더라도, 정교하고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위에 적은 것 같은 "예의와 품위"를 만들기에 적합한 시스템이라면 필자는 그것이 우리에게 맞는 제도이고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교육은 사람이 하는거다. 사람이 가르치고 사람이 배운다. 제 아무리 촘촘히 만들어진 시스템이라 할 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가르침을 주고 받는 현장"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만들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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