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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r 09. 2017

하수는 책보고, 고수는 사람보고, 도사는 안본다

이번글의 제목은 필자가 써 놓고도 참 기가막히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아마 "저게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 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만 한번 필자의 얘기를 들어보시면서 제목을 한번 곱씹어 보시기를 바란다.


필자는 나름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관찰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얽혀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살피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아니 어떻게 저 밴드는 저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이런 궁리를 한다는 것 같은? (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경의적인 만남을 만들어 낸 밴드는 본 조비 였다 ) 


하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는가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시대이고, 어떻게 시스템을 갖추는게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른지에 대해서 많이 궁리들을 하고 있다. 어떤사람은 기업의 조직문화를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의 법률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제도를 생각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을 갖추어야 조직의 힘을 극대화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많이 머리를 쓰고 연구를 기울이고 있는 걸 주위에서 필자는 많이 본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마이클해머 ( 꽤 유명한 경영학자 ) 의 이야기를 약간 각색해서 필자의 느낌으로 적고자 한다. "시스템으로 에러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으로 혁신과 장점의 극대화는 어렵다" 라고 하는 얘기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얘기해 본다면 "시스템으로 상상력에 대해 간섭이 들어가면 그 조직이 가질 수 있는 창의력은 죽어버린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전의 글에서 필자는 식스시그마에 대해 이야기 했고, 식스시그마는 불량율을 줄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관리자 입장에서는 유리한 도구라는 이야기를 했다. 헌데 그렇게 좋은 기법이 왜 널리 적용되지 못한건가?...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마도 우리나라가 현재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과 조직"이 얽혀 있는 문제에 대해 하나의 좋은 분석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식스시그마의 영향력 약회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가장 큰 요인이 "아이디어" 라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물은 통계와 숫자를 기본으로 하는 경영 기법 아래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담아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아이디어는 불량율 관리의 측면에서는 "불량"그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아이디어라는 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쌀밥과 같은 개념으로 필자는 느끼곤 한다. 필자가 업으로 강의와 개발을 하고 있는데, 사실 배우는 일과 가르치는 일 모두 수 많은 아이디어의 연속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늘 생각하는 게 '이 아이들이 지금 이런 상태라면 어떻게 이 개념을 설명하는게 잘 먹힐까?' 궁리하면서 하루 하루의 강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이게 뭔지 잘 안 와닿는데 이걸 이해할 수 있는 뭔가 아이디어가 없을까?' 라는 생각을 언제나 한다. 그리고 현재의 지적인 막힘을 타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 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법중의 하나가 질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일상적으로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일종의 모험적인 요소를 동반한다. 실패할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다. 그러기에 유능한 사람은 아이디어를 내되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고 실행으로 옮기다가 잘 안먹히면 잽싸게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적절하느냐 적절하지 않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데, 이 가치는 일정하지 않고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들쑥날쑥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즉 어떤 아이디어는 이런 경우에서는 잘 먹혔는데, 저런 경우에서는 잘 안먹히는 경우도 있다. 해서 한가지 아이디어에 매몰되는 것( 이런 걸 흔히 "타성에 젖는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을 유능한 사람은 경계한다. 또한 유능한 사람은 지금 당장에는 적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디어 자체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위에서 적은 제목의 내용... 하수와 고수와 도사가 바라보는 곳... 이라는 개념을 "아이디어" 라는 개념을 가지고 좀 더 깊이있게 생각을 정리 해 보았다. 강의에 있어서 하수와 고수 그리고 도사...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들의 시선... 


초보강사는 쉽게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 사실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부족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없을 수 밖에 없다. 경험의 부족도 한 몫 거든다. ( 여기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감하게 잘난척으로 넘어가는 선생은 제외하고 이야기 한 겁니다. 사실 그런 사람이 없진 않지만 선생으로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신에 차서 가르치는 그것은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신 초보강사는 그러한 아이디어의 부족을 만회하고자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자신이 준비한 내용 안에서 어떻게든지 강의를 몰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필자도 초보 강사시절에 그렇게 했던 기억이 있다. 강의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시간을 들이고 준비를 했다. 사실 그 정도만 되더라도 좋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그 선생님의 한계에 해당한다. 자신이 준비하고 정해놓은 그 틀을 넘어서는 강의는 잘 못한다.


고수는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선다. 사실 고수에게는 강의 준비라거나 교재 같은건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이 강의해야 할 내용은 숙지를 넘어서 통달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 그리고 강의에 사용하는 교재는 교재를 쓴 저자보다도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고수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없다.


해서 고수급들의 강사는 교재를 펼쳐 강의를 하더라도 교재에 얽매이지 않는다. 필자가 만난 명강의를 펼치는 강사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들은 한번 강의에 한 권의 책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강의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미 수십권의 책을 읽었고 그 책을 소화하고 있기에 사실 어떤 교재를 사용하는가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강의에 여유를 가진다. 강의 내용에 매몰되는 대신에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다. 지금 강의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피고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의 반응을 흡수하고 사람들의 반응과 같이 리듬을 맞추면서 생동감 있는 강의를 만들어 낸다.


이런 고수들의 강의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하나가 막히면 즉각 우회로를 만들고, 강의에서 언급되어지는 모든 내용을 골고루 다 강조하기 보다는 정말 강조되어야 할 하나를 위해 다른 개념들은 건너뛸 수도 있는 융통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런 융통성과 아이디어가 풍부한 강의는 엄격한 품질 관리를 강의장에 도입하려는 정책과 궁합이 상당히 좋지 않다. 즉 창의적인 강의는 강의의 불량률을 줄이려는 정책과 거의 정면으로 부딛치게 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한데, 대부분의 경우 창의적인 강의가 상처를 입고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보곘다.


필자가 강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어려운 강의 기법은 "무엇을 빼고 강의하는가" 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무엇을 강의할까... 를 고민하면 그건 하수다. 무엇을 뺄 것인가... 를 고민할 수 있으면 그게 고수다. 정말로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빼지 못한다. 특히 하수의 경우는 어려운 것이 "이거 안 가르치고 빼고 가르치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기에" 더욱 어렵다.


예를 들어서 SQL을 강의하는데 서브쿼리에서 반 분위기가 난관에 부딛친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고 해 보자. 실은 이 서브쿼리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기본키와 외래키의 개념이 잘 와닿지 않으면 그런 일이 흔히 발생되는 경향이 있다. 기본키와 외래키를 이용하여 테이블을 분리하여 설계하는 것이 이해가 안가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고수는 여기서 생각한다. 차라리 JOIN을 간소하게 가르치고 기본키와 외래키 개념을 복습하면서 정규화라는 개념을 맛보기로라도 가르치는 것이 이 난관을 헤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품질관리 면에 있어서는 이건 명백하게 불량이라고 판단내릴 수 있다. 가르쳐야 할 JOIN은 간략하게 가르치고 정규화 개념이 예정에도 없이 들어간 꼴이 되니까.


나중에 고수가 "거의 대부분의 JOIN은 서브쿼리로 구현이 가능해요. 지금 당장은 서브쿼리 하나를 확실히 하여 프로젝트를 돌릴 수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고, JOIN은 나중에 취업한 다음에 가르쳐도 늦지 않습니다. 서브쿼리만 제대로 이해해도 금방 독학해도 가능한 개념이 된다고요" 라고 설득하고 이야기해도 해도 아마 관리자는 그걸 변명으로 듣지 진지하게 듣지 않을거다. 그리고는 자신의 권한으로 "불량선생" 이라는 판정을 내려 버릴거다.


이런 일이 교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수 있다. 정말 그 순간을 제대로 넘기지 않으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한 순간의 판단을 몽땅 다 "불량"으로 돌려버리는 시스템에서라면 고수급의 선생은 그냥 쩌리가 되어버리니... 그런 평가제도 아래에서는 고수급 선생이 남아 있기 어렵다.


고수의 강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최 우선시되는 환경에서는 어렵다는 것인데, 위험회피야 말로 불량률을 줄이는 가장 핵심기법이니... 당연히 이 두가지 개념은 쉽게 부딛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그것마져 넘어선 선생이 도사급이다. 한마디로 신선... 정도의 레벨 되시겠다. 흔치 않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강의를 하는 인물이 있기는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필자가 소시적 회사생활할때 싸부님으로 모시던 선배가 한명 있었다. 사람이 엄청 순수하면서도 프로그래밍 능력이 거의 괴물급인데다가 둘다 물리학을 하다가 때려친 경력이 있는지라 필자가 사부님으로 모신분인데... 한마디로 엄청무시무시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래머 되시겠다.


어느정도냐고? 취미로 짬짬이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씩 개발하시는 분이었다. 당연히 혼자서. 해서 옆에서 모시면서 이것저것 많이 배우긴 한 것 같은데 당연히 그 때는 그 선배가 개발하는 코드도 못알아 듣고 하는 이야기도 제대로 못알아 들었다. 그 가르침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건 회사 뜨고 3년 쯤 지난 후의 일이다. 필자가 내공이 쌓이고 쌓이니 어느새 그 선배가 먼저 간 길이 보이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 그니까 장운이 아저씨! 이거 혹시 보거들랑 나한테 연락좀 해요 )


이런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긴 한데, 실은 이런 사람들의 강의를 들으면 당장은 강의 평판이 바닥을 친다. 한마디로 품질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 골치덩이가 없다.


필자가 강사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이 선배를 추천한 적이 있었다... 헌데 수강생들의 강의 평가가 참 대단했었다. 이야기도 많았고. 강의 평가점수는 당연히 바닥을 쳤고 덩달아 강사를 추천한 필자까지 욕을 먹었는데... 그렇게 강의평가가 낮게 나온데 반해서 정작 수강생들의 반응은 "너무 대단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였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 어쩃든 그 선배는 아마 다시는 강의 청탁을 받지 못했을 거다... 한번 그렇게 찍히면 다시 강의하기 어려운게 이 바닥의 생리라서 )


"... 일주일 40시간 강의 내내 책은 한번도 펴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나는 못알아 들었고 주위에서도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헌데 뭔가 엄청난 얘기가 되어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강사는 데리고 올 생각을 안할거다. 한마디로 불량 암덩어리 같은 존재가 이런 도사급의 강사이다. 헌데... 우리나라에 지금 가장 필요한 인물이 바로 이런 인물 아닌가?


필자는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제도 같은 제도권 안에서 보여지는 프로그래머 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 재야에서 소리소문없이 혼자서 프로그래밍 하면서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대략 이런 사람들은 유명해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헌데 대단한 사람들이 보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자신의 일을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창조경제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헌데 실상은 최순실 좋은 일 하느라 너무 많은 기회를 상실했다는 ... )


불량률 0에 도전하는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수와 도사 모두 자기 눈에 차지 않는다. 그들은 툭하면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는 관리자 입장에서의 불량의 가능성을 늘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불량률을 관리하는 경영 기법을 이용해서 강의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량률은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었을른지는 모르지만 결국 지금 당장 깨달음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고수와, 미래를 선도할 수 있고 미래를 쳐다보고 있는 도사의 강의는 듣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그 나름대로도 굉장히 가치있고 수준 높은 강의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불량률이 최소로 관리되고 있는 강의장 안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강의 진행상의 불량도 없었고 사고도 없었지만 늘 갇힌듯이 혁신하지 못하는 강의만 연이어서 개설되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해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필자는 강사들을 대할 때 공산품 대하듯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내공을 볼 수 있는 내공을 가진 관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협지에서도 그런 얘기 있다. 내공이 전혀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내공을 느낄 수 없다고...


결국 불량관리 기법으로는 혁신은 이끌어 내지 못한다.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리스키 하고 그걸 넘어서는 개념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터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쯤은 어느정도의 돈을 날릴 각오를 하고서라도 "우리 회사 직원들을 죄다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대처하는" 연구를 하는 한 사람을 키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 물론 그렇게 연구를 하더라도 노조의 반대에 부딛쳐서 실제로 실행가능 하지 못할 수도 있겠고, 연구에 실패해서 돈을 날릴 수도 있겠지만... 또 누가 아나 그렇게 연구되어진 결과가 전혀 엉뚱한 측면에서 쓰여지는 일이 벌어질지 ... 혁신이라는 것은 그렇게 불량과 돈날림을 각오하고 하는 것 아니겠나... 이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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