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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r 25. 2017

난이도는 내리고 진도는 늦춰라. 그래야 살 수 있다

이번 글은 이전에 썼던 글들의 재구성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같은 사실을 가지고도 다른 감성으로 여러개의 글을 쓰는 건 당연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지금 논문을 쓰는게 아니니까... 논문이라면 자기표절도 표절로 보겠지만 ㅎㅎ


"사장은 월급 엄청받아가고... 경비는 월급 쥐꼬리만큼 받아가고... 세상 참 불공평한 것만 같지? 헌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아. (귀속말로) 사장 아들은 학력고사 180점인데 경비 아들은 300점 넘게 받았대"


필자가 어렸을때 본 신문의 4컷 만화 ( 아마 중앙일보에 연재되던 왈순아지매 였을거다 ) 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사실 40년전의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공부는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길이 열리는" 개념이었다. 물론 정말 돈이 많은 부자집에서는 똘똘한 대학생을 아예 입주를 시켜가면서 자녀들의 공부를 봐 주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ㅎㅎ


구체적으로 적자면... 서울대 정도를 다니는 똘똘한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의 하숙을 제공하는거다. 숙식제공은 당연히 공짜이고 과외비까지 두둑하게 주었다. 거의 왠만한 기업의 한달 월급 수준의 과외비에 하숙비공짜... 이면 지금 가치로 한 400만원 정도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그 과외선생님은 24시간 그집 아이와 붙어서 공부를 가르치는거다. 그집 아이는 시도때도 없이 선생님에게 달려와서 공부를 배운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공부를 배운다고 해도 꼭 그 자녀가 성적이 잘나온다는 보장이 없던 시기인게... 그 때의 공부는 "교과서를 가지고 본인이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루고 점수를 받던 시기"이다. 상대적으로 지금과 비교하면 공부해야 할 내용도 적었다. 하나의 내용을 가지고 깊이있게 공부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하루 8시간 푹 자고 공부해도 진도를 따라갈 수 있던 시기였다. 교과서 안에 진도가 있었고 시험이 있었다. 그것만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면 되던 시기였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면 혹자들은 "지금은 아닌가요?"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지금은 혼자 공부해서는 좋은 성적 절대 안나온다. 


과거에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시험과 진도가 이루어졌다. 사실 하나의 국정교과서를 가지고 전국의 학생들이 같은 내용을 배운다는 것... 필자는 반대다. 하지만 분명 장점도 존재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 특정 정치인을 떠받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통해 단일한 역사해석을 강요하는 것은 당연히 반대한다. 그건 국정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왜곡의 문제지 )


필자도 대학시절 입주까지는 아니지만 집 근처의 중/고등학생들의 과외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꽤 인기가 있었던 선생님이었던 것이... 필자는 문제푸는 요령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신에 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혼자서 생각하고 책을 찾아보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깨달음은 수백 수천가지 상황에 응용되어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그런식으로 공부를 해서 그런지 공부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공부를 해도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았고, 공부를 안해도 성적이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거의 맨날 그 성적 정도가 나왔다. 그도 그럴게 문제푸는 요령이 있어야 맨날 받는 성적 이상이 나오는데... 그건 영 필자와는 안 맞던 개념들이었고, 공부를 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독서양과 깨달음의 깊이가 있으니 기본실력으로 다져진 감으로 때려 맞추어도 나름 높은 확률로 답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덕이기도 했다.


헌데 필자가 군대 다녀와서 복학 후 3학년때 일이다. 근처 지인을 통해서 과외가 들어왔는데 수학과외였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내용이 잘 안들어오는데, 집에서 혼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부분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는 요청이었다. 필자는 기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이게 왠일인가... 그게 필자의 마지막 과외가 되었다.


일단 그 아이는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것도 똑 부러지고 ... 그 아이가 나중에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혼자서 공부하는게 어려워서 과외선생님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모님께 요청을 했을 정도니까... 한번 상황을 상상해 보면 될 것 같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수학문제를 풀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서 질문할 거리를 산같이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 이거 정말 막막하더라... 필자도 공부 좀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말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안오는 문제들만 가득히 적혀있었다"


한 두시간 낑낑대고 과외를 해 보고 난 다음에 그 아이랑 이야기 하는 대화를 적어보면


"... 이거 애들 풀어보면 몇점이나 나오니?"


"애들도 거의 못풀어요 한 평균 20점 나오려나요?"


"이걸 선생님들이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니?"


"선생님들도 못가르쳐요 ㅎ 그냥 답 보고 칠판에 베껴 적고 설명 끝이예요" ... "이거 대만의 어떤 대학교 수학과 시험문제 그대로 베꼈다고 하더라구요. 미쳤죠 중학교 3학년에게 대학교 시험문제 풀라고 하니" ... "이거 한 문제 제대로 풀려면 헤메는 시간까지 서너시간 걸리는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수십개를 한 시간에 풀겠어요. 그러니까 어디가서 이런 문제푸는 요령을 좀 배워야 해서 선생님 구해달라고 한 거예요"


... 필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그 문제를 집에 가지고 와서 온갖 방법을 쓰고 고민을 하면서 정리하고 가르쳐 주기는 했다. 그래도 한 1/3은 못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필자가 할 수 있는 난리는 다 치고 난 다음에 필자는 "여기까지가 내 능력의 한계다. 이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다" 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필자의 마지막 과외 학생이 되었고...


필자가 '이렇게 하면 학교가 망가지는 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경험이다. 이게 거의 25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이후로 우리나라 전체 교육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갔다고 보면 된다. 


많이 가르치고, 어렵게 가르치고... 그렇게 되면 공교육은 자연스럽게 부실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왜냐? 선생님들이 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힘들어지고, 설사 선생님들이 완벽하게 지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어려운 수업이 계속되는 현실" 때문에 아이들이 나가 떨어지게 된다.


해서 필자가 주장하는 게 그거다. 공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적어도 교육선진국이 가르치는 수준으로 난이도를 낮추고 진도를 느리게 가져가고, 문제푸는 요령이 아닌 생각하고 말하고 글쓰고 나누는 수업으로 교실을 채워야 한다고. 그래서 혼자서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으로 시험을 치루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헌데 이러한 주장을 일축하게 되는 전가의 보도가 있으니 그것은 "경쟁과 변별력" 이다. 한마디로 일등 이등을 제대로 가릴 수 있어야 학교에서는 될 만한 애를 집중적으로 밀어 줄 수 있고, 그래야 서울대 합격자 수를 늘려서 명문학교의 명예를 얻을 수 있다... 라는 개념 되시겠다.


변별력을 높이려면 시험문제가 평이하고 쉬워서는 안된다. 어려워야 한다. 그래야 상위권 학생들의 점수 편차가 벌어지게 된다. 1등과 5등의 차이가 1-2점에 불과하다면 5등을 밀어내고 1등을 챙겨주기 위한 명분이 부족하다. 하지만 1등과 5등의 차이가 20점이 차이가 난다면 1등을 챙겨주기 위해 5등을 방치할 명분이 좀 더 뚜렸해진다.


이게 변별력을 강조하는 주장 뒤에 숨어있는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 "이 세상은 경쟁사회이다. 경쟁은 당연한것이다. 경쟁이 있어야 다들 열심히 한다. 그래야 모두가 발전한다. 경쟁을 통해서 모두가 다 발전하는 사회가 되어야 국가가 발전한다. 경쟁은 곧 애국이다" 라고 주장하는 경쟁 예찬론자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뭐 여기에 대해서는 나름 할 말이 있기는 하지만... 좋다.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결과로 판단해 보자. 그렇게 경쟁을 강조하고 변별력을 강조한 결과가 지금의 교육이다.


이제는 그 교육이 싫다고 해서 나만 빠질수도 없다. 예를 들어서 지금 평범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집 아이가 있는데, 성적은 중상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헌데 부모의 경제적 사정이 나빠져서 학원비가 간당간당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아이에게 "사정이 이러하니 네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어떻겠냐?" 라는 얘기를 꺼낼 수 있나? 천만에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학원을 안다니고 혼자서 공부를 해서 도저히 성적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게 전국에 수학학원 영어학원 역사학원이 즐비한 이유이다. 앞에서 적은 것 처럼 "의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도 혼자서는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난이도와 진도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상황" 이 벌어지고 있으니, 과거처럼 교과서만 가지고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으로는 절대 성적을 현상유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의 여유가 있는 집은 그나마 "유학"이라는 탈출구가 있지만... 그것마져도 안되는 집은 그냥 노후자금 까먹으면서도 아이에게 퍼 부울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안 퍼부으면 현상유지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 제발 교과서 좀 쉼게 만들고 진도좀 느리게 나가는 교실... 그래서 문제푸는 요령이 난무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풀다가 틀리더라도 그 틀린 것을 가지고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교실' 이 만들어 지기를 말이다.


헌데...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이걸 알른지 모르겠다... 자기들도 문제 잘 풀어서 그 자리에 섰으니 그걸 당연히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교육기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교육재벌의 편에 서 있는 기득권층과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있을거다. 이걸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의 대선이다. 부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건 간에 "교과서의 난이도와 진도를 조정하는" 정책은 꼭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부모도 산다. 길바닥에서 쓸쓸히 죽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교육비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공수래 공수거의 진수를 보여주는 말년을 살게 될 각오를 해야 하는데... 실은 그럴 각오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다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주고 대학에서 자신들이 뽑고 싶은 학생을 자유롭게 뽑을 수 있게 완전한 자율권을 주어라. 그래서 지금의 체제에서 길러진 아이들과 지금의 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에서 공부한 아이들을 선택할 수 있게 자유를 주자. 적어도 그 정도의 자유는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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