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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y 19. 2018

세상을 바꾸는 변화와 그렇지 못한 변화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3)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변증법의 대 전제이기도 하다. 사실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의 삶과 역사는 변화하게 된다. 그것이 한 사람에게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변화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데 필자는 동의한다. 사실 원시시대때도 느리긴 하지만 역사는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이 현대사회로 들어오면 그 변화의 속도는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이 천천히 일어날 때와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과연 인간이 그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는 동일할까? 그리고 인간의 변화 수용태도에 따라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은 인간 사회에 제대로 정착되고 인간의 삶에 흡수되어 과거의 방법을 효과적으로 밀어 낼 수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과연 변화하고자 하는 기운과 변하기를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이 부딛치게 된다면 그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만일 그 변화가 인간을 단순하게 쥐어짜고자 하는 형태의 변화라면 인간은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게 될 것이고 변화는 그저 한때의 유행처럼 사그러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변화가 변증법에서 이야기하는 현재의 상태가 가진 자체적인 모순이 있고 그 모순적인 상태를 유지하는데 한계에 도달하여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기운이 어느정도 차 올랐을때 때마침 등장하고, 그것이 현재의 모순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변화는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잡고 인간의 삶을 뒤바꿔 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 의 기운이 충만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재정치를 몰아내고 자신들을 돌보아 줄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도 그것과 일맥상통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더라도 아니 최근 10년 안에 일어난 일들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서 광우병 파동시의 시위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그것은 먹거리에 대한 안전까지도 천민자본주의적인 논리에 휘둘릴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리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쇠고기를 닥치고 먹고 누군가는 그걸로 떼돈을 벌고? 우리는 닥치고 먹고 그러다가 죽더라도 암말도 못하고? 그런 세상이 온다구? 그건 절대로 안된다" 라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선동되었고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공감대를 얻으면서 시위의 열기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세상을 바꿀 동력이 상실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시위는 힘을 잃었고... 사람들을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보도한 사람들이 몰락하는 것에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것은 "NL계열의 정치세력들이 기존의 이명박정권의 힘을 빼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벌인 그네들의 권력욕에서 나온 과장되어진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필자는 이 광우병사태의 경우를 이야기 하고 싶다. 1) 충분히 기존의 체제에 대한 불합리성이 가득 차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2) 변화를 억지로 이끌어내고자 부풀려진 위기감으로 3) 소수에 변화에 대한 이익이 집중되는 ... 한마디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좀처럼 수용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나누어지는 현재의 사회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면 변화가 실제로 이루어져서 세상을 바꾸어놓는데 성공하는 케이스는 어떤것이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냈던 촛불시위가 아닐까? 이 경우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변화해야 할 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그러했고, 그것이 위반하고 있는 헌법가치가 확실했으며, 그 이전에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보신주의로 일관했던 무능한 어른들 때문에 희생되어진 세월호에 탑승했던 고교생들의 죽음이 있었다.


적어도 필자의 경우에는 그 당시 세월호 아이들의 영전에 꽃 한송이 올리고자 하는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얘들은 어른들이 죽였어. 아니 내가 그 공범이야. 어른들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만들었어. 자신들의 권력과 힘을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바보병신이고 윗선에 아부하고 돈바치는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을 만들어 버린건 어른들이야. 그래서 얘들이 희생당한거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랬기이 문재인정부가 이야기 하는 "적폐청산" 이라는 구호에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지지를 보이고. 많은 보수계열 신문들과 문재인정부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진보 신문들이 연일 정부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쏟아내도 국민들의 지지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바보같아도 실은 집단지성이라는 것은 힘이 굉장히 강하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집단지성을 상대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상당수준으로 차 올라 있어야 하고, 그것은 사람들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소수에게 변화의 열매가 돌아가는 형태이어서는 안된다...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너무 순진한건지는 모르겠다 )


필자의 생각에 가장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은 아마도 "소수의 엘리트들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 무지몽매한 대중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선동과 과장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대중을 흔들어 놓으면 여론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바뀌게 된다. 괴벨스가 그런 식으로 나치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낸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라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이런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충분히 변화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선동으로 변화는 일어난다" 라는 것 보다 믿음이 가는 명제이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IT에 접목을 시키자니 좀 어색했을 수도 있다. 필자의 강의경험을 좀 나눠 보겠다. 2002년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교육기관에서 JSP/Servlet 관련해서 교재를 교체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삼성SDS멀티 캠퍼스 기획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책이 만들어 졌는데 이 책의 내용이 아주 대단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삼성SDS 연구소에 재직중인 연구원 둘이 쓴 책으로 기억을 한다. 그 책의 경우에는 단순하게 문법과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 넘어서서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여 어떤 설계를 하고 그것이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 것인지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차 있었다. ( http://www.yes24.com/24/goods/294846 )


기존의 프로그래밍에서는 서블릿을 사용하여 프로그래밍 하든 아니면 JSP를 이용하여 프로그래밍 하든 둘 중 하나만 쓰면 된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생각이 거의 대부분의 개발자들에게 있었다. 헌데 그 책에서는 둘 다 썼다. 그리고 그 둘의 특징을 활용하여 적절하게 역할을 분담시켰다. 즉 서블릿이 해야 하는 역할과 JSP가 해야 하는 역할을 분담하고 그것을 효과적을 분리시켜 주면서 그것이 가지고 올 설계적인 이점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책이었는데... 필자의 경우에는 극찬을 했다.


헌데... 이게 실제로 교육현장에서는 생 난리가 났다. 가르치는 강사들도 이 책의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까지 복잡하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프로젝트가 구현이 가능한데 왜 이렇게 구지 복잡하게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재에 충실하게 강의하라는 압박까지 받으며 강의를 하니... 그 강의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릴 리가 없었다.


학생들은 더 난리가 났다. 수업을 이해하는 수강생들은 거의 1/10 도 안되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당장에 이 수업을 듣고 나서 회사로 돌아가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강사와 교재에 그들은 등을 돌렸다. 강의 만족도가 바닥을 쳤다. 나름 야심차게 기획했던 일들이었지만 대 실패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얼마간은 교재를 유지하면서 변화의 여지를 지켜 보았지만 결국은 이전의 강의로 돌아가야 했다. 대 실패였다. 그것이 2002년 즈음의 일이었다.


헌데 이것이 약 5-6년 뒤에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엘지쪽에서 스트럿츠라는 웹 개발 프레임워크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 이 스트럿츠라는 프레임워크는 엘지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apache.org 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그룹에서 만들어서 배포했던것으로 기억한다 ) 그리고 그 개발 프레임워크를 현장에 적용하면서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개발현장은 요동치게 된다. 과연 스트럿츠가 뭐냐? 뭐길래 그렇게 사람들이 스트럿츠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그것을 개발현장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필자도 그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찾아봤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이미 5-6년 전에 강의현장에서 사라진 삼성SDS 멀티캠퍼스 기획시리즈 JSP/Servlet 에서 이야기 되어진 내용들과 거의 틀리지 않았다.


실은 이 두개가 같은 이론에서 나온 개념이다 MVC 아키텍쳐라고 하는 이론인데 "데이터를 담당하는 클래스, 흐름과 판단을 담당하는 클래스, 사용자에게 보여지고 입력을 담당하는 클래스, 이 세가지 성격을 가진 클래스는 각각 분리한다" 라는 설계기법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철학 아래서 설계되어진 프로젝트는 클래스의 갯수는 많아지고 동작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프로젝트 관리가 매우 용이해진다. 아울러 유지보수가 매우 편해지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그 스트럿츠라는 프레임워크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프레임워크들이 새로 등장했다 벨로시티, 스프링, 아이바티스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스프링 프레임워크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 정부에서 밀고 있는 "전자정부 프레임워크"의 핵심이 되고 있다.


결국 똑 같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5-6년 전에는 사람들이 죄다 반발을 했다. 이런 거 왜 써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기존의 방법으로도 충분한데 왜 이런 방법을 쓰냐? ... 그래서 개발 현장을 뒤엎어 버리는데 실패했다. 헌데 5-6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복잡하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거기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한계상황에 달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MVC아키텍쳐는 구세주와 같은 것이었고, 더군다나 그것의 표준을 제시했던 스트럿츠 같은 검증된 프레임워크는 실로 빠르게 개발 현장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프로그래머들의 층이 두꺼워 진것이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수포로 돌아갈 것들이 있고, 미약한 변화에 그칠 것들이 있고,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그것을 백퍼센트 맞춘다면 그건 예언자이겠지만 적어도 필자는 "변화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인간에게 되어있는지, 그 모순점에 의한 변화에 대한 요구가 가득 차 있는지"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것 없이 변화에 따른 과실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형태라면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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