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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May 30. 2018

혁명적인 변화는 없을거다. 동력이 한창 모자라거든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7)

필자는 직업상으로라도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구체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술혁명 ( 사실은 필자는 혁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묻혔던 기술이 최근에 다시금 필요성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 을 이야기 하면서 이것들이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대비해야 하고, 그래야만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 사실 필자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고


필자는 혁명이라는 것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몇몇 선각자들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이 바뀌어야 하고 그들의 단합된 힘이 기존 질서를 밀어낼 수 있을때 혁명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단순하게 증기기관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에 더해서 산업자본이 축적이 되었기에 가능했고, 그 산업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라는 책이 나와서 그 당위성에 대해서 '도덕적인 힘'을 실어 주었기에 가능했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그것은 천민자본주의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쓰여지는 나쁜 책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실은 아담스미스 자신이 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EBS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5부작' 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단순히 증기기관 뿐 아니라 자본의 축적과 사상적인 뒷받침... 거기에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이루어진 정치적 안정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기에 농민들의 토지를 값싸게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만일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에 나라의 운명을 걸기보다는 기존에 해 왔던 방식 - 농업과 무역업 - 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경제 운영을 해야했고, 그 때문에 적극적으로 농민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영국에서 펼칠 수 밖에 없었더라라면 과연 증기기관과 산업자본이 축적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필요한 노동력과 자재 ( 여기에서는 모직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양털 ) 을 대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산업혁명은 아마도 쉽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때 맞추어서 불어닥친 대기근도 한 몫을 했다. 농민들이 죽기싫어서라도 있는 땅 다 팔고 당장의 먹을 것을 구하고 난 다음 빈털터리 신세로 공장의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필자가 생각하는 혁명은 이런거다. 단순하게 한 두가지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더라. 어떨 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나라가 뒤집히는 흐름으로 격동치게 되지만, 어떨때는 해도 해도 꿈쩍도 안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관찰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어느 한 기업인의 불법 도박판 운영이 결국 정권교체와 남북회담까지 이어지지 않았는가?  어떨 때는 제 아무리 변화를 역설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목숨을 내 놓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려고 해도 바뀌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된 현실을 바꾸어보자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해서 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기존 질서에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역사속으로 사라진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본다.


해서 필자는 전쟁사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기존의 질서를 가장 수월하게 파괴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가장 쉽게 무너트리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을 세우게 되는 시기는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서 인간은 가장 많이 발전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필자는 전쟁 옹호론자가 절대 아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기존의 질서가 새로운 질서에 의하여 가장 단시일에 가장 확실하게 대체되어지는 시기는 전쟁이었다. 전쟁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사상,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질서가 들어섰다. 아마 인류가 전쟁이라는 것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동네 부락들을 중심으로 이웃 부락들 정도와 교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전쟁은 수 많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었고 발전을 만들어 내었다. 지금 우리가 명품이라는 용어를 부여하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은 군복과 연관이 깊다. 특히 버버리와 휴고보스가 그러하다. 전쟁은 항공기와 자동차 산업을 극적으로 일으켰다. 전쟁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육방법론이 개발되었고, 효과적인 보급을 수행하기 위해 물류관련 기술이 개발되어야 했다. 많은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커다란 항공기를 개발해야 했고 이것은 보잉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내었다. 만일 전쟁이 없었다면 10대의 한 기계공이 만들어낸 작은 회사가 지금의 보잉이라는 이름을 가진 초거대기업으로 커 나갈 수 있었을까?


해서 필자는 전쟁을 싫어하지만 전쟁에 대해서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전쟁을 알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고,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전쟁이라면 그것이 무고한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지 못하도록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전쟁은 반드시 대중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대중의 동의가 없이 일부 통치자나 귀족들의 뜻으로 행해지는 전쟁은 거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해서 독재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에 필요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다소간의 선동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넘어가지 않는 국민들이 있었을때와 그 선동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있었을때의 결과는 너무도 틀렸다...


갑자기 왠 또 전쟁얘기를 했다. 다시금 본류로 돌아가자. 변화라는 것. 혁명이라는 것은 그냥 기술 몇개 개발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류가 겹치고 겹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기존의 많은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또한 기존의 질서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박탈해야 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그러한 급격한 변화를 이루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그래서 인류가 기존의 질서를 해페하고 새로운 질서를 단 시일내에 정착시키는 것은 평화시기보다는 전쟁시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더라...  이것이 필자의 이야기다.


헌데 지금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게 되는 것에 대해서 반가운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 부분은 필자가 보기에는 아니올시다... 라는 것이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진다는데... 어떤 직종을 해야 하나... 앞으로 변호사와 의사는 인공지능이 먹을텐데... 자율주행이 들어서면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 하면서 우왕좌왕은 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아닐거야" 가 아니라 "나도 대체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의 변화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는 힘든 사안이라고 본다. 산업별 직종별로 필수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당연히 도입되겠지만 이것이 사회 전반을 바꾸는 힘을 가질까? 그럴만한 동력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끌어 가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한마디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입만 살았다.


본인들이 할 줄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새로운 질서와 기술이 들어섰을때의 부작용 같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갈등을 풀어나갈지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도 모르더라. 한마디로 혁명을 하라고 부추기고 선동만 하고 있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연구하는 모습이나 책임지는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 보자. 어떤 교육학자가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육은 이렇게 바뀌어질 거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를 대비해서 아이들에게 코딩교육을 시켜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고 셈 치자. 그에 대한 필자의 반론은 아마도 이런 얘기가 될 거다.


코딩교육을 어려서부터 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레고블럭으로 하는 코딩교육이 아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실제로 아주 단순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기본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습득은 필요합니다. 헌데 레고를 조립하는 것으로 코딩을 배우는 것은 그냥 장난감가지고 노는것이지 실제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코딩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을 이끄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코딩을 배운사람들일까요? 아뇨 그들은 유치원/초등학생부터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코딩을 하고 싶은 시기에 배웠고, 그것을 배워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시도했을 뿐이죠. 차라리 지금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열심히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코딩이라는 것은 매뉴얼대로 시켜서 행해지는 일이 아닙니다. 프라모델의 조립설명서 처럼 거기에 적힌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면서 느끼고 공감하는 정서적인 부분이 필수인데 그 부분은 도외시하고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것만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혹시 말씀하시는 분이 코딩 사교육기관과 어떤 이익공유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요?


4차 산업혁명이 교육을 바꿔야 하는데 그럼 인공지능이 어떤 부분을 개혁하게 되나요? 구체적인 영역을 제시해 주세요


영어교육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 입시에서 영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되면 교과서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 그 부분을 어떻게 만회하시려고 하나요


만일 영어 입시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채점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셈 칩시다. 그런 것을 프로그래밍 해 보신 경험 있으신가요? 어떤 사람이 쓴 문장이 잘 쓰여진 것인지 아니면 잘못쓰여진 것인지를 평가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개발이 가능한가요 불가능한가요? 직접 텐서플로우를 이용하여 간단한 문장이라도 그 문장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개발 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알기로는 텐서플로우를 기반으로 하는 딥러닝/머신러닝은 확률을 기반으로 하는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류도 어느정도 필연적으로 존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대학입시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평가한 점수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결과가 어떨거 같나? 자기 자신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시스템을 개발할 생각은 없으면서 신문과 미디어를 빌어서 선동 내지는 학원광고... 정도나 하는 사람들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단언한다 택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다. 앞으로는 가능할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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