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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Dec 07. 2018

코딩교육 이전에 상처받은 자아를 돌봐야 한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학부모들 특히 어머님들이 자녀의 교육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혹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두려움, 트라우마 같은 것들에 의해 결정이 내려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건 어머님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들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자신의 내면에 채워지지 않은 욕망. 상처입은 자존감 ... 같은 것들이 쌓여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어머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머님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주어야 하는 것이 어머님들의 마음에 쌓인 트라우마와 상처들은 좀처럼 잘 돌보아지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어떤사람에게는 상처를 받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받고 비록 고생하고 아픈 일이 있었어도 또 다른 성취를 통해서 "내가 이런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고생을 통해 훈련받고 연단받았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런 아픔들을 위로받고 떠나보내는 것이 흔한 그리고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의 인생이다.


그래서 보면 하늘아래 별 대단한 인생이 없다는 얘기를 필자는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부자건 가난하건 이런 상처입고 위로받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성취하고 절망하는 일들로 인생이 채워진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 하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예외 없이 말이다.


헌데 보면 "뭐 인생에서 커다란 영화를 보려고 저렇게 무리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건가?" 라는 의이함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많은경우가 상처입은 내면과 무의식이 존재하더라는 거다.


한국전쟁에서도 보면 몇년씩 산에 들어가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면서 빨치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 중에 정말 사상으로 무장된 공산주의자가 끝까지 버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형제가 한국군 또는 경찰, 우익청년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이 끝까지 견디고 버티게 된다.


우리나라의 지금 현실에도 보면 정치적으로 북한공산당에 의해 재산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철저한 우익에 서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고문당하고 감옥생활을 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좌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흔히 본다.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정권이 잘하느냐 잘못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의해 생각과 판단이 지배되는 경우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이 코딩교육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이전에 우선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은 "이러한 상처입은 내면을 그냥 덮고 무시한 채로 온전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집안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들이 총살당하고 혼자서 남쪽으로 내려와 모진세월 보내면서 겨우 집안을 일으켜세운 분들을 붙들고 국제정세의 탈 이념화와 정부의 대북정책 같은 것들을 가지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한들 그 분들은 설득이 어렵다. 왜냐하면 내면에 자리잡은 분노와 공포... 그것이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래도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운 분들은 다를것이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미국유학을 다녀오건, 나라의 요직에서 커다란 권한을 행사하건 그 분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힘과 정보를 가진 분들일수록 자신의 내면속 분노와 공포를 합리화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기에 더 설득이 어렵다.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젊어서 영어실력이 딸려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는 학부모가 있다고 셈 치자. 영어가 안되어서 많은 기회를 놓쳤거나, 무시당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녀의 영어교육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것은 영어에 대해서 별반 상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 예를들어 영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사람들 )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니 한국어든 영어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영어하나 잘한다고 인생이 뭐 그렇게 달라지겠나요?" 라고 그런 사람들은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는거다. 헌데 이미 영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을 가진 분들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땡빚을 내서라도 애들 영어공부는 무조건 최고로 시킨다... 라는 조금은 위험한 판단 아래에는 공포와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자신이 겪은 억울함과 상처를 자녀들에게는 되풀이 시키지 않겠다는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꺼내어서 위로하고 자신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작게 만들어 주기 전에는 중요한 판단은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두려움과 불안감에 의거한 판단은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불안감은 자꾸 덮어버리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내면 속 무의식의 세계에 쌓여서 우리의 삶의 주인처럼 행세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 속 두려움과 불안감을 직시하고 그것을 꺼내어 위로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나가는 얘기 :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우울감 같은 경우도 비슷하다. 자신에게 드는 우울감을 자꾸 외면하고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우울감은 삶 전체를 삼켜버릴 정도로 커진다. 더 우울감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솔직히 자신이 지금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우울감에 지지 않도록 적당한 독서, 산책, 운동, 그리고 대화, 상담등을 통해서 우울한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울감을 아주 없애버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우울감에 의해 자신의 삶이 통째로 삼켜지는 듯한 일을 막을 수 있다.


 필자가 본 우울증에 관련된 동영상중에 WTO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참 감명깊었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으니 보시길 바란다 )


자신의 내면 속 불안감과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마음속 깊이 숨겨두고 있고, 그것에 의해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자신이 듣고 싶은 결론은 이미 내놓고 있는 상태에서 토론과 대화에 임한다"


이건 이익집단의 경우에도 비슷한데, 이익집단들도 보면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토론에 임하게 될 때에 이미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결론을 내어놓고 있는 상황" 이 벌어져 있다. 그들에게 토론이나 회의같은 과정은 그저 자신들이 이미 내린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지 이미 결론은 다 내려진 상황이다.


 마음속 내면에 불안과 두려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분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내릴 결론도 정해놓았고 자신들이 어떤 행동해야 할지도 이미 정해놓았다. 필자가 점쟁이나 예언가는 아니지만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분들의 미래는 대충 그릴 수 있었다.


그런 분들일수록 이런 저런 전문가를 많이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전문가들 중에서 가장 자신의 마음속 불안함을 해소하는 쪽의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채용한다. 이건 필자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고전적인 이론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병에 걸린 다음에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의사를 만날때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분들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을까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서 진짜 명의를 만나고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받게 될 수도 있지만 ... 정상적인 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이나 돌팔이 의사를 만나서 치료시기를 놓치고 마는 경우도 있다. 똑똑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아니다 그런건 똑똑한 거랑 관계가 없다. 스티브잡스도 그런 식으로 자기 병을 키워서 죽었으니깐


사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은 나쁜것은 아니라고 심리학에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런 위험을 최소화 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살아갈 도리가 없고 따라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최소화 하는 쪽으로 판단하고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헌데 이것은 양날의 검 처럼 자신의 불안을 최소화 하기도 하지만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자신의 내면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필자는 집필을 쉬는 동안에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꽤 읽었다. 아니 닥치는 대로 읽었다. 평소에도 관심있었고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이기도 했지만 도데체 코딩교육을 둘러싼 이 광풍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른지를 알 수 없었기에 공부가 필요했었다. 해서 완전히 정확하다고는 보기 어렵겠지만 나름 생각을 축적했다고 생각한다.


코딩교육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 있다.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딩교육을 둘러싼 당사자들 특히 교육을 필요로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불안감을 직시하고 꺼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로하면서 자신이 외면하는 불안감에 자신의 판단이 먹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전문가의 얘기는 무의미하다.


이것은 비단 학부모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코딩 교육을 둘러싼 많은 이해 당사자들 또한 자신들이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것을 합리화 하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되어진 프로그래밍 교육에 대한 많은 경험과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결정은 내려지지 않을것이다. 백퍼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코딩교육을 둘러싼 환경은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고 절대 합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각 이익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정부는 정부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 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쌓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는 마치 게임에서의 만능 치트키를 획득하듯 '이거 하나면 나는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어' 라는 환상을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코딩교육은 실시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존재할 것 같지도 않다. 주류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건 주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비주류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 해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일거에 폭망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 사실 돈은 거의 주류쪽에서 돌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주류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주류쪽 교육은 정부 예산도 많이 투입되어 공짜교육도 많으니 )


사실 필자는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비주류적인 생각을 가진 편이다. 필자의 생각대로 국가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않고 있고, 또한 그럴 수도 없다. 가장 대표적인 생각거리로 필자는 "교육이 대량생산되는 것을 반대한다" 헌데 이런 생각이 주류가 되기는 한국에서 어렵다고 생각하니깐


하지만 누군가 필자처럼 "대량생산되는 교육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필자는 기꺼이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의견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필자가 절필 이후에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대량생산되는 코딩교육에 희망을 걸기 보다 조금 다른 코딩교육을 생각하는 분들과 생각을 나누면 그래도 조금 다르게 그리고 조금 더 낫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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