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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늑대 Dec 06. 2018

코딩교육 이전에 엄마들을 일으키고 손잡아줘야 한다

나름 휴재기간중에 필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 중에는 코딩에 연관된 사람도 있었고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일과 관련된 사람들도 있었고 필자가 하는 일 ( 프로그래밍 & 강의 & 컨설팅 ) 과 크게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필자의 친구가 하나 있다. 대학 영문과 교수를 하고 있는 재원이다.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엄청 똑똑하고 능력있는 친구기도 하고...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나온 이야기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필자가 물었다. 나름 요즘 엄마들 보면 똑똑한 엄마들 엄청나게 많다. 학벌도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높은 편이기도 하고. 헌데 이 똑똑한 엄마들이 자녀를 낳고 난 다음에 자녀교육에 나름 몰입하는 거 보면 나는 공포감 마져 느낀다고. 정말 말도 안되는 현실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도데체 왜 저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그 친구 앞에서 투덜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대학교수 친구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나름 그 사람들이 고학력이고 학교 다닐때는 뛰어난 재원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결혼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가정주부의 역할을 떠안게 되면서 그 사람들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린다고. 그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싶었던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녀를 기르는 일 밖에는 없었고 그 자녀양육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 것이다... 라는


어느정도는 공감되는 얘기기도 했지만 어느정도는 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사실 여자들만 자아실현 하기 어려운 거 아니니깐. 남자들 또한 직장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나. 이런 생각을 해 보면 필자는 그 의견에 공감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직장생활하는 남자들이 보람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지옥이고... 자신의 자아실현이나 따뜻한 대인관계가 존재하는 직장은 정말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하는 희귀 아이템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주부들만이 자아를 실현할 기회가 없어서 막막해 하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직장이 지옥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정도는 자기 편도 있고 자신의 경쟁자도 있고 자신의 적도 있다. 그 와중에서 그래도 절대 빈곤의 상태는 아닌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하루 하루 매우 힘들고 막막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그들과 동료애를 나누고 힘든 상황은 서로 다독이면서 위기를 넘기는 인간적인 교류는 거의 대부분의 직장에서 없지는 않은 개념이니깐 말이지


헌데 자녀와 자신만 존재하는 가정주부들은 그것에 비해서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낼 기회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것도 사실이다. 가정 주부의 일에 보람이나 동료애 또는 성취감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드물다. 거기에 승진이나 경제적인 보상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훨씬 더 취약한 것을 감안한다면 그 대학교수 친구의 이야기는 한편 수긍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말이다... 인간이 받은 소외감이나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그것이 적절하게 위로되거나 해소되는 것이 없다면 잠재의식속에 쌓여서 언젠가는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래서 참는것이 미덕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만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는 분노와 소외감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없어지지 않고 인간 심리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폭발할 기회가 생긴다면 터져나오게 된다.


이러한 개념을 아이를 키우는 어떤 어머니에 대응시켜 보도록 하자. 이 어머니는 젊어서는 나름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살았다가 대학을 진학하고 취업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잠깐의 취업기간을 거쳐 결혼했고, 결혼 후 임신한 몸으로 강도높은 회사일을 견디기 힘들어 퇴직 후 가정 주부의 길에 접어들었다... 라고 가정해 보자.


다행히 건강히 아이는 태어나고 자랐지만 솔직히 어린 아이를 타인에게 맡기고 직장일은 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실제로 검증되고 하루종일 육아가 가능한 베이비시터의 한달 페이는 300만원 정도이다. 웬만한 회사원 월급을 한창 웃돈다 ) 그런 와중에서 점점 사회안에서 자신은 아이를 제외하고는 있건없건 크게 상관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병들게 된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폄하가 일어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음으로서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되는 것으로 증명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헌데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에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의 자아실현의 길은 거의 막혀있게 된다.


사실 사회적 경력이 단절되게 되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되게 된 가정주부의 경우에는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더라도 하등의 관계가 없다' 라는 무가치함을 느끼면서 자존감의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여기에 여성 특유의 감성이 더해진 비교의식이 발휘될 수 있는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나 이웃의 존재가 발견되면 그 감정은 폭발한다.


예를 들어서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예술활동을 멋들어지게 하는 친구나, 결혼 후에도 자신의 경력을 멋지게 만들어가는 여성을 알고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비교나 질투의 감정이 들어서게 되면서 자존감에는 상처를 입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무가치함에 절망하게 되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약간 지나가는 얘기지만 ... 앞으로 로봇이 인간이 해야 할 생산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직업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게 될 것이고, 그 때 인간은 아마도 위에서 예를 들고 있는 가정주부와 같은 무기력과 무가치함을 경험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대가 되면 지금 저 주부의 고민과 억울함과 설움이 우리 모든 인류가 겪고 극복해야 할 감정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아 어떻게든 자신이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받을 만한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 주부에게는 자신의 의미를 증명해 줄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이 낳아서 기르는 "자녀"가 바로 그 대상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는 부모가 지극정성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을 그렇게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있는 엄마로 비추어 주는 경향까지 있다 ( 신사임당이 5만원 지폐의 도안 모델이 되고 있는 나라이니 )


그리고 내 자식이 서울대를 가게 되면 엄마들 사이에서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봐 준다. 한마디로 이건 남자들이 직장에서 이사승진하는 것 같은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자녀가 지방대 합격한 엄마는 만년 대리이고, 자녀가 인서울 합격한 엄마는 만년 과장이고, 자녀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정도 들어간 엄마는 회사의 부장정도 그리고 서울대 연대 고대 정도 들어간 자녀의 엄마는 회사의 이사... 이런 개념이 된다.


아마도 자녀의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40대 중반 정도에 이런 현실을 접하고 나서 기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자녀의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상황이라 그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지 모르지만 이대로 갈 데 까지 가는 수 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러기에 앞으로 노후걱정 같은 것 다 모른채 하고 한달에서 수백만원 정도의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수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가정을 필자는 꽤 많이 봤다.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에 어머님을 붙들고 자녀를 그렇게 키우면 안되느니 ... 그건 올바른 교육이 아니니... 라고 설득해 봤자 소용이 없다. 자녀의 교육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설명하는 이유가 되게 되면 어떤 핑계와 명분을 들어서라도 그것은 정당화하는 쪽으로 생각이 가게 되어있다. 그게 인간의 심리다.


필자도 나름 코딩교육쪽에는 전문가이고 20여년의 경력을 자랑하는지라... 자녀를 코딩분야의 인재로 키우기를 바라는 분들의 상담을 꽤 받았다. 헌데 거의 공통적인 부분인데 ...  내가 아무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야기 하더라도 그런 분들은 자신들의 바램만 있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


예를 들면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개발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 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개발능력은 기본기에서 많이 좌우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정말로 중요한 개인의 업무능력은 거의 대부분 상식이 통하는 수준에서 결정되고 따라서 어린 나이에서 부터 대단한 준비를 하기 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교육은 지양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코드로 옮기는 기본 중심의 교육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분들은 이미 자신의 자녀의 객관적인 성공과 그에 따른 자기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분들이 많다. 그러니 당연히 대화는 안통할 밖에... 그리고 그 분들은 돈을 가지고 있고, 자녀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울른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 필자는 그 분들에게서 아웃되는 셈이다.


지나가는 얘기지만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은행 입사를 위해 국제 금융 전문가 자격증을 딴다는 얘기도 있다. 헌데 그 자격증은 은행원들 중에서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그 자격증이 있어야지만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헌데 타인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받기 위해 그런 것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필자가 절망한 부분도 여기다. 필자는 그 분들의 상처입은 내면을 감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 분들은 필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 - 한마디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생각이 없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 같이 움직여 주지 않을 사람 - 에게 자녀를 맡길 생각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그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을 찾고 찾고 또 찾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얘기를 해 줄 사람을 찾기는 찾을거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른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코딩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이런 내면세게 심리학의 영역의 문제 까지 내려왔지만 필자는 이 부분에서 결국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교육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면 ... 나는 혹시라도 내 상처받은 자존감과 사회로부터의 소속감과 존재감에 대한 희미함을 자녀의 교육문제를 통해서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는것인지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스스로 생각할 뿐 아니라 자녀를 통해서 그리고 전문가를 통해서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본 많은 분들이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자녀들에게 물었을때 "엄마는 나를 통해서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크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러한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마음을 가진 다음에 자녀의 교육문제에 대한 올바른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과정이 없다면 백이면 백 분명 내면의 상처받은 자아를 보상받고자 하는쪽으로 무의식적으로 향하고 결정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터이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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