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책장 톺기 - 첫 번째 칸 1~4권
서재를 갖는 게 평생소원 중 하나였다.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벽에 붙이지 않은 넓고 단단한 책상이 있는 방. 3년 전,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며 갖고 있던 책과 물건들 중 일부를 작은방 새 책장에 넣었다. 소원을 이뤘다고 보기엔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책장 두 개를 들여놓으며 벽의 일면은 채울 수 있었다. 꿈을 실현하는 첫 단계로 생각하니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나면서 점점 잡다한 물건이 쌓이기 시작했다. 새 책과 헌 책이 엉키며 수직선과 수평선 사이에 대각선도 많이 생겼다. 간간이 정리는 했지만 전체를 다 새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삐져나왔다. 시작하는 순간 대공사가 될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을 안으로 눌러두기만 했는데, 이제는 칸이 다 차 버렸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밖에서 돌아다니는 책들을 언제까지고 바닥에 굴릴 수도 없다. 그래서 다짐했다. 책장을 싹 엎고 새로 정리하기로. 한 칸씩 톺아보며 어떤 콘셉트로 재배치를 할지 고민해 볼 생각이다. 꽤 귀찮을 거다.
작가의 방(2006) / 박래부 / 서해문집
생각하는 미친놈(2011) / 박서원 / 센추리원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2009) / 신주진 / 밈
데뷔의 순간(2014) / 한국영화감독조합 / 푸른숲
김영하 산문 보다, 말하다, 읽다(2015) / 김영하 / 문학동네
시간의 옷(2010) / 아멜리 노통브 / 열린책들
깊이에의 강요(2006)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파피용(2009)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콘트라베이스(2014)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메이드 인 공장(2014) / 김중혁 / 한겨레출판
시간을 파는 상점(2012) / 김선영 / 자음과모음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 / 허지웅 / 문학동네
나의 친애하는 적(2016) / 허지웅 / 문학동네
에디톨로지(2014) / 김정운 / 21세기북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2017) / 김신회 / 놀
변신·시골의사(2017) / 프란츠 카프카 / 민음사
※ 출판연도는 개정판이거나 증쇄한 경우 보유한 책에 표기된 대로 적었다.
1번 칸은 가장 높은 곳이자 왼쪽에서도 제일 첫 번째 칸이라 애정을 좀 담았다. 꽂힌 콘셉트이거나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비치해 두었다. 비교적 처음 배치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연히도 <작가의 방>이 첫 칸의 첫 번째 책이다. 책장의 서두를 여는 책으로 손색없다. 작가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일단 '작가'가 되어야 했지만 너무 어려워서 '방'부터 얻었다. 남들의 작업실은 어떤가 너무 궁금한 마음에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 봤는데, 나중에 사려고 보니 절판돼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마음에 든 책은 무조건 그 자리에서 사게 됐다. 이 책은 몇 년 뒤 중고서점에서 구했다.
사람은 머무는 자리를 꼭 자기 모습처럼 만들게 된다. 어떤 책을 고르느냐, 어떤 물건을 가까이에 두느냐,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취향과 생각을 드러낸다. 유명한 여러 작가의 작업실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도 작업실 창문을 크게 해서 앞에 앉을 공간을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이름은 '청강(淸江)호'로 짓겠다. 청강은 써본 적 없는 나의 호(號)이다.
미디어 쪽에 관심이 생겼던 첫 이유는 광고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지만으로 의미를 전하는 게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인쇄 광고도 좋았지만 시설물과 연계한 옥외 광고가 특히 취향저격이다. 짧은 구절로 긴 문단을 함축하는 카피라이팅은 진로로 한때 삼았을 만큼 관심이 큰 분야였다. 무릎 탁 치는 맛이 짜릿하다.
이 책을 접했을 즈음에는 다른 일을 꿈꾸게 됐지만 오랜만에 번뜩이는 광고들을 보자니 콩닥콩닥 심장이 뛰기까지 했다. 평소 '이거 잘 만들었다' 싶었던 작품들이 다 이 저자의 회사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회사에 지원도 했다. 물론 대차게 떨어졌다. 그 뒤로 이 책은 잘 안 펼쳐본다. 반은 농담.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 부교재로 썼던 책.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드라마 작가들의 10여 년 전 이야기다. 두 작가를 매칭 해서 비교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각 작가들의 이야기 푸는 방식이나 뛰어난 점, 캐릭터 구사 방식 등을 분석해 놓아서 빠져들며 읽을 수 있다. 처음 읽을 땐 한두 명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한두 명 빼곤 다 알아보게 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역사서로 여긴다. 2009년에도 최최신작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그간 뛰어난 작품이 많이 등장했으니 10주년 기념 증보판이 나왔으면 한다.
2009년 출판된 책인데 지금까지도 여기에 거론된 작가들이 한국 드라마를 상당 부분 끌어가고 있다. 그 점은 해당 드라마 작가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이후 등장한, 등장하고자 했던,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좀 서글픈 일이다. 290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는 시대가 오기를 온 힘을 모아 바란다.
이번엔 영화감독들 이야기다. 카메라를 놓고 싶을 만큼 큰 좌절감을 맛보고 있을 때 접해서 마음속으로는 거의 울면서 봤다. 거장들도 처음이 있었다. 나 역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고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내가 가진 건, 실력을 쌓기엔 부족했던 시간과 견디지 않으면 다음이 오지 않는 순간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인지 이 또한 지나쳐야 할 것인지 고민하며 읽었다.
성공담은 결과론적인 경우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은 이러이러해서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성공하고 나서 돌아보니 저러저러했더라는 거 아닌가 싶은 때가 있으므로. 물론 이 책이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는 내용은 아니다. 베테랑이 된 감독들이 데뷔 시절, 처음 그때를 직접 이야기해 준다. 나는 대체 몇 번의 데뷔를 더 해야 할까 고민스러우면서도 그들이 부럽고 좋아서 막힘 없이 봤다. 인터뷰 기사로는 잘 알 수 없던 이야기들이라 별 뜻 없이 보기도 재밌다.
첫 번째 칸은 책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가진 책이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다루려니 길다. 편당 짧게 쓰는 것이 목표이기에 네 권씩 나누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