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초대장 세 번째 초대, 양희경 작가님 북토크
댄비학교(꿀벌과 인류의 공존을 꿈꾸는 커뮤니티) 에는 '소학교'라는 문화가 있다. 꿀친(커뮤니티 멤버)들은 은 교육, 제로웨이스트, 식문화 등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소학교를 선택하고, 5~10명 내외의 멤버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
그중 '집밥학교'는 집밥의 소중함을 알고, 집밥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소학교이다.
꿀벌이랑 집밥이랑 무슨 관계야?
우리가 먹고 있는 식재료 중에는 꿀벌의 수분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사과, 멜론, 수박, 양파,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밤, 고추, 당근, 딸기, 귀리, 커피 등 아주 많은 작물들이 벌들의 도움을 받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100대 작물 중 71%가 꿀벌을 매개로 수분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공식품, 배달음식 등 수많은 가공을 거친 음식들을 먹다 보면 자연과 음식의 관계성을 알기가 쉽지 않다.
집밥은 '내가 먹는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시장에서 하나둘 고른 재료를 내 손으로 씻고 다듬어 내 방식대로 요리하여 먹는 즐거움! 집밥을 해 먹는 습관은 쉽게 쌓이는 배달음식 쓰레기를 줄여 기후변화를 늦추는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실제로 집밥학교는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함께 장을 보기도 하고, 집밥 챌린지를 통해 각자의 식탁을 공유하는 등 서로 집밥 실천을 돕고 있다.
어느 날 집밥학교 리더 꽃이피다 님께서 제안을 주셨다.
양희경 선생님께서 이번에 집밥과 관련된 신간을 내셨는데,
댄비학교에서 북토크를 진행해 보면 어떨까요?
양희경 작가님의 책 제목은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평생 방송인으로, 연예인으로 활동하시면서도 집밥으로 가족과 자신을 부축해 오신 집밥 이야기와 레시피가 담겨있는 책이다.
집밥 역시 자연으로의 초대라고 생각하는 나는 '벌들의 초대장'으로 이 북토크를 진행해 보자고 제안드렸다. 꽃이피다 님께서는 집밥학교의 초대로 이를 열어보자며 단번에 승낙하셨다.
이전 초대들과 이번 초대가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이 있다면 바로 인원이다. 기존 초대는 많아도 10명 내외의 인원으로 진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초대는 최대 50명. 3-4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졌다. 외부연사를 모시는 자리였기 때문에, 공간이 비지 않도록 초대 인원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생각보다 신청이 빠르게 마감되지 않자, 나는 더욱 불안해져 초대 신청자 목록을 여러 번 새로고침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한 학생분께서 작성하신 신청 이유를 보게 되었다.
저는 아직 20살도 안 지난 미성년자 17살 고1 학생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양희경 님을 TV에서 보고 자란 영향 덕분인지 양희경 님의 책은 물론이고 연기하셨던 드라마, 내레이션 등 출연작들을 꾸준히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책을 별로 읽지 않는 편인데 유독 양희경 님의 책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는 꾸준히, 자주자주 읽게 됩니다.
(중략)
저도 웬만하면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밥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식파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다양하게 먹는 것 자체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 저의 성향과 매우 비슷하게 책에 여러 가지 요리와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보거나 듣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이기도 있구요.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지만 막상 대화를 하면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초대가 된다면 북토크는 이번이 처음인 만큼 꼭 초대에 성공돼서 양희경 선생님의 집밥 이야기를 경청껏 들어보고 싶습니다! 초대가 되어서 양희경 쌤을 볼 생각을 하니 상상으로도 매우 큰 기대가 돼 두근두근 합니다!
초대 정원을 꽉 채우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초조함에 전전긍긍하던 나는 이 글에 매우 감동을 받았다. 단순한 신청 이유가 아니라 한 편의 편지 같았다. 이렇게 이 초대를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초대에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꽃이피다 님께도 이 소식을 알렸고, 양희경 선생님께 꼭 전달하겠다며 함께 기뻐해주셨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감동을 전하고자, 편지 내용과 책의 내용을 담아 1분 정도의 릴스를 만들어 댄스위드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였다.
저 편지를 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의 주인공이 댓글로 등장했다! 릴스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동시에 너무나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17살 인생에 이렇게 큰 감동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진심에 마음이 저릿했다. '이 초대가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핑크빛 설렘이 가득한 초대 당일.
호스트를 포함해 40분께서 초대에 참석하셨다. 댄비학교 4기의 마지막 수업 이후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꽃이피다 님께서는 손수 만드신 주먹밥을 준비해 주셨고, 집밥학교 멤버이신 밀키웨이 님께서는 직접 운영하시는 티 브랜드의 '레몬머틀티'를 준비해 주셨다. 덕분에 따듯한 몸과 마음으로 초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양희경 작가님께서는 벌들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는 말씀으로 북토크의 문을 여셨다.
아름다운 것은 지키는 것이다.
언니이신 양희은 님의 난소암, 어머님의 심근경색 투병생활을 거치며 집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으셨다는 말씀이 와닿았다. 스스로를 지키려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잘 챙겨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노화를 늦추려면 음식에서도 '빼기'가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양희경 작가님께서는 책에 나와있지 않은 집밥 꿀팁, 경험에서 나오는 건강에 대한 조언, 재치 있는 이야기들로 북토크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셨다. 마지막에는 서정홍 시인의 ‘밥상 앞에서’라는 시를 낭송하셨다. 한 편의 극을 마치는 배우의 마지막 대사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밥상 앞에서
서정홍
밥을 먹는 것은
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풀잎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작은 풀잎 위에 내린 달빛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달빛 아래 흐르는 개울물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개울물로 농사짓는 농부의 땀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농부의 땀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그 마음속에 들어 있는 꿈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이 밥을 먹어야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이 밥을 먹어야만
말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밥을 먹습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농부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약자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땅을 살리고 후손을 살리고 싶어서
고마운 마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이 밥을 먹고,
생각과 삶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소박하고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내가 나를 섬기듯이
사람과 자연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이 북토크 시간 이후로 나도 집밥을 해 먹는 빈도가 더 잦아졌다. 냄비밥을 짓고, 미역국이나 된장찌개를 간단히 끓이고, 달걀말이나 야채볶음을 곁들인다. 배달음식이나 가공식품을 먹을 때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 몰라도, 만족도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룸메이트들과 함께 밥을 해 나누어 먹는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이제 집밥은 내 삶에서 유지하고 싶은 건강한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 몰라> 속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렇게 요리를 조금씩 시작하다 보면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럼 이러는 내가 기특하게 느껴지고,
누군가와 나눠먹고 싶어 진다.
메뉴가 하나에서 셋, 다섯으로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되는 거다.
초대가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진행하며 몇몇 아쉬움과 배움이 남아 이를 정리해 둔다.
호스트가 개인이 아니라 '집밥학교'였으나,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리더에게 초대 진행의 무게가 많이 치우쳤다.
호스트가 주목받기를 원치 않으시긴 했지만, 초대 자리에서 집밥학교/꽃이피다 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진행 방향과 역할 분담에 대해 호스트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서 초대장 개설, 초대 인원 파악 등 기존 기획에서는 호스트의 역할이었던 일들을 운영진 측에서 맡게 되었다. 초대가 운영진의 개입 없이도 자유롭게 열고 닫히려면, 궁극적으로는 초대 프로세스를 호스트가 오롯이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이를 실험해 보고, 가능하게 설계할까?
'벌들의 초대장' 꿀벌과 인류의 공존을 꿈꾸는 커뮤니티 '댄비학교'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내가 사랑하는 자연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릴레이입니다.
● 기획 의도가 궁금하시다면, 시리즈 첫 글을 읽어보세요!
댄비학교는 꿀벌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꿀벌의 멸종 위기를 알리고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자 탄생한 커뮤니티입니다.
서로를 꿀벌 친구들, ‘꿀친’이라고 부르며,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처럼 ‘공존을 위한 나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댄비학교의 비전은 “모든 사람들이 꿀벌의 친구가 되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영감을 전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