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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Feb 09. 2020

미국은 독감 치료비도 모금한다

#미국전파견문록 : 독감 사망자, 1만2000명을 넘어서다 

“독감 시즌에 미국에서만 8200명이 사망했다네요.”

아들에게 기초영어를 가르치는 70대 과외 선생님은 나의 말에 짐짓 놀라는 투였다. 

“정말이에요? 820명이 아니고?”

아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35명 정도가 사망한 것은 아는데, 그 정도 높을 리가...”

나는 아침에 읽었던 CNN 기사 내용을 전달하면서 “나 또한 놀랐다”라고 대꾸했다. 그날 저녁, 영어 말하기 연습을 도와주는 UNC 1학년 대학생을 만나 같은 얘기를 했더니 똑같은 반응이었다.

“정말? 그 수치가 맞아요?”

답답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구글링을 해서 다른 언론사의 비슷한 기사를 보여줬다.

“봐! 가짜 뉴스가 아니잖아.”

이번 시즌 미국 내 독감 사망자. 미국 현지인들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많다. 어쩌면 겨울이 되면 흔한 질병이 감기여서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감이 치명적인 병이라는 사실을. 익숙해서 잊었던 것일까. 

CNBC 자료. 2017~2018 시즌 미국 내 독감 사망자는 6만1000명이었다. 

 8200명. 이 또한 열흘 전 수치다. 2019~2020 독감 시즌 미국 내 사망자는 8일 현재 1만2000명을 넘어섰다. 아이들도 78명이 독감 때문에 숨졌다. 1주일 동안 14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전역에서 2200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현재 21만명이 입원중이다. 수치상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많다. 치사율이 0.095%(CNBC 3일 보도)라는 게 그나마 위안일까. 하지만 2%(코로나바이러스 치사율)든 0.05%든 ‘나’나 ‘가족’으로 한정한다면 100%가 될 수도 있다. 1000분의 1이든, 10000분의 1이든 ‘1’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라면 어쩌지, 하는 공포. 미국질병통제센터(CDC)는 이번 시즌 2100만명이 독감에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에서는 2017~2018년 독감 시즌에 6만1000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9월부터 방송에서는 독감 예방 접종을 독려하는 광고가 많이 나왔다. 12월 즈음에 이르러서도 “독감을 예방하려면 접종을 맞아야만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라며 뉴스 등에서 강조했다. 한국에서 보도가 안됐을 뿐이지 독감 관련 뉴스는 매일 꼭 나왔다. 

 미국은 한국처럼 아이들의 경우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준다. 어른들은 35~45달러(회원제로 운영되는 코스트코는 19.99달러)를 내야만 한다. 미국 의료보험은 독감 접종비도 보장해 준다. 대형 마트에 입점한 약국에서도 접종 가능해 편리한 점은 있다. 물론 예방접종을 했다고 해도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백신에 대한 불신도 넘쳐난다. 


함께 연수중인 모 신문사 기자의 8살 딸도 예방접종을 했음에도 B형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먹어야 했다. 열이 펄펄 끓어 병원에 가서 진찰 및 독감 검사를 받고 처방전에 따른 약을 사는 데만 총 650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70만원이 넘는 돈이다. 보험이 없다면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다. 


미국 내 1만명 이상의 독감 사망자는 비싼 의료비도 한몫하는 듯하다.  기금 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COM)에는 독감 입원 환자의 치료비를 보태달라는 사연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독감 악화로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게 병원 문턱은 높기만 하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자가치료를 하다가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돈 없는 사람이 아프면 서럽고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CNN, USA투데이 등 미국 언론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독감이 더 무섭다”라고 연일 기사를 내보낸다. 하긴 아직까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폐쇄된 공공시설은 없지만 독감 때문에 임시 휴교한 학교들은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최근에는 4살, 11살 어린이들이 독감으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반면 미국 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기사는 현재까지 없다. 주변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이들도 없다. 대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은 “이웃이 중국 여행을 취소했다”(아들 과외 선생님) 정도일 뿐.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독감 예방접종을 하세요.”

 여전히 뉴스에서는 ‘예방접종’을 강조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아들 과외 선생님은 맞았고 나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는 대학생은 맞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맞았는데 올해는 굳이 맞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도 무료 접종이 되는 65살 이상 고령층이나 어린이를 제외하면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성인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익숙하기 때문에, ‘아는 병’이라고 해서, 치료약이 있다는 이유에서 신경을 덜 쓴다. 어쩌면 한국이 미국보다는 의료비가 덜 들어서일 수도 있고.   


 하지만 한국도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한해 독감(독감으로 인한 폐렴 포함)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2015년 메르스 때 사망자는 38명이었다. 익숙해서 부주의하고 낯설어서 주의하고. 그 차이가 죽음의 통계를 바꿔놓는 것일까. 이는 비단 ‘병’에만 한정된 게 아닐 것이다. 익숙함이 때로는 가장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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