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눈’이었다.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고... 아니다. 눈놀이에 들뜬 게 아니었다. 눈에 따른 ‘휴교’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눈이 오면 학교 며칠 쉰다”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은 터다.
우리가 사는 곳(노스캐롤라이나)은 눈이 오면 도시 전체가 마비된다. 눈이 흔한 곳이 아니라서 제설장비가 마땅찮아 눈만 오면 도로 사정이 엉망이 된다. 이곳의 대부분 학교는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눈 예보가 있으면 전날 미리 휴교를 알리고 눈이 오면 온대로 휴교를 한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분명 다음날 예보에서 눈은 오후 3시부터 온다고 했는데 휴교령이 내려졌다. 눈이 많이 오냐고? 예보상으로는 2~3cm였다. ‘참 호들갑이구나’ 했다. 오전 눈 소식도 아니고 오후 눈 소식에 휴교라니.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할렐루야!”를 외쳤다.
눈은 정확히 오후 3시부터 흩날렸다. 원래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오후 2시30분이니까 그대로 수업해도 됐을 텐데 싶지만 셔틀버스 운행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셔틀버스로 학교에 등교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쏟아진 눈 때문에 자가용으로 귀가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전화해 엄청난 항의를 했었다고 한다. “도로 사정상 셔틀버스도 운행 못하는데 어떻게 승용차가 다닐 수 있겠느냐”라고. “왜 처음부터 휴교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미국 학부모들도 한국 학부모들 못지않다. 아마 그때부터인 듯하다. 이젠 허리케인, 폭풍, 눈 등 날씨 때문에 휴교를 할라치면 새벽 6시든, 전날 오후 8시든 전화 통보를 한다.
휴교를 했을 뿐인데 도시는 왜 마비가 될까. 이곳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지인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 부모들 중 한 명은 집에 있어야 하잖아. 12살 이하는 무조건. 그러면 맞벌이는 어떻게 하겠어. 아이를 둔 간호사가 출근을 못하니 의사도 그날은 아예 병원 문을 닫아버려. 병원이 이런데 다른 레스토랑이나 상점들도 비슷하겠지.”
하긴 폭풍우, 눈 등의 예보가 있으면 사람들은 1주일치 물, 식재료 등을 미리 사둔다.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미리 대비해둔다. 워낙 집과 집 사이, 집과 마트 사이 거리가 멀어서 고립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는 거다. 도로 정비 등이 곧바로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애초부터 없다. 구석구석 도로들이 너무 많은 시골이다. 그리고 공공 근로자들도 그날은 쉬어야만 한다. 이곳에서 날씨 때문에 단축 수업을 할 때 학교에서 보내온 메일 등을 보면 꼭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 교직원들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있어야 합니다.”
사실 부럽기도 하다. 휴교에 따른 결근에 대해 회사가 이해를 해준다는 뜻이니까. 아이 중심의 사회가 이런 것일까. 한국에서 “아이가 학교를 못 가서 회사를 못 가요”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눈이 흩날리기 전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 메일과 문자가 왔다. 날씨 때문에 내일 학교 오전 수업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늦게 교육청에서도 전화가 왔다. 날씨 때문에 관내 모든 학교가 내일 휴교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눈은 새벽까지만 온다던데, 역시나 안전 문제 때문인 듯하다. 눈은 5cm 정도 쌓였을 뿐인데. 밖에서 눈사람을 만들다가 집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