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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May 07. 2020

미국 팬들이 KBO리그를 즐기는 법

KBO ON ESPN: 응원팀 고르기

워렌 크리스천은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에서 근무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그는 탬파베이 레이스 팬이다. 탬파베이 산하 트리플 A팀인 더럼 불스 야구장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는 최지만도 좋아하고,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이학주도 좋아한다. 이학주는 한때 더럼 불스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워렌은 요즘 새벽에 한국 프로야구를 보는 재미가 생겼다. 새벽 1시에 열린 삼성-NC 다이노스 경기도 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두산 베어스-LG 트윈스 경기도 ESPN을 통해 시청했다. 라이브 경기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컸다. 그는 “라이브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어 정말 좋다”면서 “관중 없는 야구를 보는 게 이상하기는 하다”라고 했다. 더불어 “한국 야구 스타일이 정말 좋다. 특히 경기 진행이 빨라서 좋다. 메이저리그보다 빠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워렌의 향후 응원팀은 NC다.  “ESPN이 이번 주에 NC 경기를 많이 해주고 NC가 노스캐롤라이나(NC) 같아서”다. ESPN은 SPOTV 영상을 받아 생중계를 하는데 이번 주에 NC 경기만 4차례 잡혀 있다. 미국에도 익숙한 기업인 삼성, LG 위주로 하루 1경기를 편성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NC가 이들 팀과 상대한다. 워렌처럼 NC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를 줄인 말과 같아서 응원한다는 미국 야구팬이 꽤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MLB 팀이 없기 때문이다. 남한 면적의 1.3배에 이르고 인구도 1000만에 가깝지만 농업 등 1차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적 특성때문인지 메이저리그 구단은 유치하지 못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더럼 불스 외에도 샬럿(주도인 랄리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최대 도시다)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 A팀인 샬럿 나이츠가 있다. 근처에 독립리그 팀이 있기도 하지만 메이저리그 팀이 없으니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은 다른 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트리플 A에서 더럼 불스는 꽤 전력이 탄탄하다. SK 와이번스에 4년간 활약한 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스카우트된 메릴 켈리도 SK와 계약 전에 더럼 불스 소속이었다.

SB네이션의 제임스 데이토가 NC 다이노스를 응원하면서 올린 다이노스 마스코트 사진.

 NC 마스코트가 공룡인 것도 노스캐롤라이나 야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공룡 화석 발굴로 유명한데 랄리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자연사박물관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심장을 가진 공룡 화석 윌로가 있고 세계에서 하나뿐인 아크로칸토사우루스 뼈까지 있다고 한다. SB네이션의 제임스 데이토는 아예 NC 다이노스를 응원하자면서 그 이유로 공룡 마스코트를 꼽기도 했다. UNC 대학 야구팀의 유니폼과 NC 다이노스 유니폼 색깔이 비슷한 점도 노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하늘은 'NC블루'라는 색을 품고 있는데 UNC 유니폼에 반영돼 있다. (부연설명: 구글에 '노스캐롤라이나 베이스볼'을 치면 가장 먼저 UNC 야구팀이 소개된다. 그만큼 노스캐롤라이나는 대학 스포츠 인기가 많다)

 

 한 미국 야구팬은 NC-삼성전이 끝난 직후 개인 트위터를 통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야구팀은 NC"라고도 했다. 개막전 직후 모창민의 배트 플립 등이 스포츠센터 등을 통해 계속 리플레이됐고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NC가 강조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낯선 리그에서 '승리팀' NC의 첫인상이 꽤 뇌리에 박힌 듯하다.  

구독자수 14만명이 넘는 미국 MLB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KBO 소개 영상에 달린 댓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사니까 NC 응원' 식으로 미국 야구팬들에게는 KBO리그 응원팀을 고르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됐다. 응원팀이 있어야 몰입도가 더 커질 터. 팬들은 SNS나 유튜브 댓글 등을  통해 “디트로이트 라이온즈(NFL 팀)와 비슷해서 삼성 라이온즈”라거나 “유니폼이 예뻐서 SK 와이번스”,  “오리올스 팬이라서 김현수가 있는 LG 트윈스”, “밀워키 팬이라서 테임즈가 있던 NC”, “시카고 베어스(NFL 팀) 팬이니까 (두산) 베어스”, “매트 윌리엄스가 감독으로 있는 KIA” 등의 이유를 제각각 대면서 응원팀을 정하고 있다. 미국 내 여러 매체들도 경쟁적으로 KBO리그 팀들을 소개하며 응원팀을 고르라고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승패에 민감한 베팅 사이트도 KBO리그를 대만리그와 함께 베팅 종목에 넣었다. 라이브 스포츠가 전멸한 상황이니 필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개막전 중계 직후 트위터 반응.

 미국 야구팬들에게는 ‘진짜 야구’의 시작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한국 야구 개막에 맞춰 메이저리그도 6월 중순 스프링캠프, 7월 초 개막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몇 경기 중계되지 않았지만 한국 야구를 지켜본 미국 팬들은 워렌처럼 “빠른 진행”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투구 간격이 짧고 타자들도 배터스 박스를 벗어나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KBO 스피드업의 결과물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호쾌한 배트 플립에 가장 많은 환호를 보내고 있지만.


 사실 미국 팬들 대부분은 KBO리그 선수들을 모른다. 하지만 팀, 선수에 대한 낯섦은 ‘야구’라는 낯익음으로 극복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커뮤니케이션부 제레미 셔맥 교수는 <NBC 뉴스>와 인터뷰에서 “결과를 알 수 없는 경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펼쳐지는 야구에 대해 배우는 것 또한 재미가 있었다”라면서 “분명 다른 점은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가 사랑하는 익숙한 그 게임”이라고 했다.

 하긴 응원 이유를 댈 필요가 있으랴. 야구가 시작됐는데. 어쩌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할 텐데. 야구 자체를 놓고 끊임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는데. 결과에서든, 과정에서든.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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