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갔던 테네시주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닌 우리 가족이 오히려 낯설었다. 거리에도, 식당에도, 호텔 내에서도 마스크 한 이는 극소수였다. 미국의 현실이 이렇다. 미국 내에서만 코로나19 사망자가 15만명에 가까워져 가고 확진자 수가 세계 최대치를 넘어 400만명(7월19일 현재 390만명)을 향해 가는데도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귀국을 앞두고 두 차례 여행을 갔다. 마스크를 챙겼고 살균용 클로록스 티슈도 챙겼다. 첫 장소는 아우터뱅크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날렸던 곳으로 팬더믹이 없었더라면 첫째가 당일치기로 졸업여행을 왔을 곳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가 멈췄을 때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성수기 바닷가는 호텔 가격이 만만찮았다. 팬더믹과 경제 침체로 여행 다닐 이가 적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숙소는 2.5성급, 우리나라로 치면 모텔급이었지만 바닷가 근처라는 이유로 하루 숙박비는 250달러(30만원)를 넘어섰다.
‘겉 이불은 갈았을까’, ‘침대 패드에 바이러스가 스며든 것은 아닐까’ 하는 온갖 상상력이 머릿속을 휘저으면서 침대, 베개, 탁자 등에 클로록스 살균제를 뿌렸다. ‘이리 미덥지 못한데 왜 여행은 왔을까’ 싶지만 3개월여 넘게 집에만 있던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식사는 햇반과 김, 참치 등으로 해결하다가 한 끼는 큰 마음먹고 근처 유명한 식당으로 갔다. 아우터뱅크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속함에도 매장 내 식사가 가능한 식당들이 있었다. 찾아간 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대기 벨을 받고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 한 사람도 마스크는 쓰고 있지 않았다. 식탁 사이 간격이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6인치(1.8m)는 안 돼 보였다.
주문을 하고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니 눈치가 보였다. 다행이라면 바닷가 근처라 유리창이 아예 없는, 바닷가 쪽으로 한쪽 면이 뻥 뚫린 곳이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테이크아웃을 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100일 만의 바깥 식사를 했다. 채플힐에서는 식당 내 식사가 안 되기 때문에 3개월 넘게 외식을 할 수 없던 터였다. 머릿속은 복잡했으나 ‘남이 해준’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아이들도 오래간만에 외식이라면서 좋아했고.
이날의 식사를 제외하면 우리들의 끼니는 ‘대충’이었다. 버거킹 햄버거를 먹었고, 덕도너츠를 깨물었다. 숙소는 원래 ‘아침 제공’을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아침마다 오렌지 주스와 에너지 바, 그리고 오렌지 한 개를 넣은 꾸러미를 줄 뿐이었다. 1층 로비 식당 앞에는 ‘직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내내 붙어있었다. 로비에 있는 소파와 탁자에도 범죄현장처럼 줄이 쳐져 있었고 로비 화장실도 출입금지였다.
아우터뱅크스 호텔 로비. '모두의 안전을 위해 로비 소파 이용이 불가하다'라고 쓰여 있다.
두 번째 여행은 야생 흑곰으로 유명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었다. 단풍으로 유명해서 미국인이 가을에 가장 많이 찾는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얼추 설악산 같기도 한데 그 규모가 몇 배는 된다. 삐뚤빼뚤 산속 길이 몇 시간째 이어진다. 일방통행의 산길도 꽤 된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아서 여차하면 길을 잃기 딱 좋은 그런 곳이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넘쳐났다. 거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은 대도시에서나 봤던 듯하다. 교통체증은 물론이고.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간혹 한 두명만 착용했을 뿐. 무슨 자신감인지 그들은 얼굴 전체를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고 아케이드 실내 게임장에 들어가고 밀착해서 식당 줄을 섰다. 스카이 리프트를 탈 때는 공짜로 마스크를 나눠줬음에도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동굴 탐험을 할 때도 비슷했다. 가이드만 가끔 마스크를 썼다가 벗을 뿐 20여 명 사람들 중 우리 가족 셋만 마스크를 계속 썼다. 순간 ‘바이러스가 화씨 55도에서는 번식을 못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동굴 안도 실내니까 분명 위험할 텐데.
숙소 내 엘리베이터 앞에도, 체크인 카운터 앞에도 손 세정제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4성급 리조트 엘리베이터에는 ‘일행이 아니면 4명만 탈 것’이라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확산 방지를 위해 최소한의 지침은 이행하고 있던 것. 하지만 사람들로 눈을 돌리면...‘마스크는 아픈 사람만 착용하는 것’이라는 일반적 미국 상식이 여전한 듯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오히려 더 뻘쭘해졌다.
사실 내가 사는 채플힐 주변에서는 영화관도, 실내 놀이터도, 미용실도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술집 등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식당 내 식사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아파트 수영장은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처럼 한국보다 더 강하게 방역을 하는데도 코로나19 확산 세는 잠깐 주춤하더니 다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검사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야구의 하이 패스트볼 같은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를 보자면 한숨만 절로 난다.
미국 내에서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할 듯하다. 하긴 대통령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나라니까. 트럼프는 “코로나19는 99% 무해하다”는 말도 했는데 아마 치명률이 1% 안팎인데 따른 해석인 듯하다. 미국인의 1%는 300만명을 넘는다. 트럼프에게 그 1%는 보호받아야 할 미국인이 아닌 것일까. 아들의 친구인 윌 엄마도, 딸의 친구인 헤이즐 엄마도 “미국은 코로나19를 과학이 아닌 정치로 접근해서 상황이 더 악화된다”라고 했다. 전염병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미국이 잘 보여주는 듯하다.
주요 국가별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수
자료 출처: 구글닷컴
두 차례 여행을 하면서 느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종식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쿼런틴에 지친 미국인들은 이제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지려 하는 것도 같다. 하긴 어떤 젊은이는 “코로나19에 걸리면 가족들과 함께 이겨나가겠다”라고 호언장담도 했으니. 며칠 전에는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는데도 증세가 없어서 마스크 없이 파티에 참가했고 그 파티에 참석했던 트럭 운전사가 전염돼 사망했다는 기사도 났다. 바이러스 시대에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긴,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맞겠다는 사람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 많은 레스토랑을 다녀온 뒤 2주 간 알게 모르게 걱정이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곤하면 붓는 편도에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이웃들과 만남도 가급적 자제했다. 다행히 2주가 지났는데도 별다른 증세가 없는 것을 보니 괜찮은 듯하다. 혹은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으나 자각하지 못했거나.
코로나19가 참 고약한 것이 확진자 전부가 아픈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증상자가 30%가 넘으니까. 독감 같은 경우는 증상이 엇비슷하니 대응이 가능한데 코로나19는 ‘숨은 환자’가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언젠가 뻥 터져버릴 것 같다. 같은 병인데도 참 불평등, 불공평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로 마스크 쓰기를 생활화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잔뜩 생긴 마지막 미국 여행이었다. 여행 중 만난 한 백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God bless America’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된다면 미래가 더 암울할 듯 보이지만.
**지난주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여행에서 비교적 많은 사람들과 접촉한 터라 걱정이 됐으나 다행히 코로나19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다. 미국 여행이 3주 전이었으니까여행 중에 전염은 없던 것 같다. 현시점에서는 마스크가 백신이자 치료제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