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삼성 라이온즈 팬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삼성을 응원하다. 조금은 단순한 이유다. 유튜브 구단 채널 [라이온즈 TV]의 퇴근길 직캠을 보기 위해서다. 삼성 선수들의 평소 속마음을 알 수 있는 퇴근길 직캠은 홈경기에서 삼성이 이길 때만 볼 수 있다. 하긴 경기에 진 날 카메라를 출구 앞에 세워놓은들 누가 답을 하겠는가. 그날은 몸도, 입도 무거운 날일 텐데. 반대로 이긴 날은 그날 무안타를 친 선수든, 점수를 많이 내준 선발투수든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퇴근길 직캠의 재미는 역시나 선수들의 반응이다. 강민호는 평소 취재진을 대할 때 그러하듯이 솔직하다. 직캠에서 딸바보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서 이젠 ‘하이 아부지’라는 별명이 더 익숙해졌다. “육아하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라고 구시렁도 대지만 말이다. 박해민과 김호재는 흡사 '톰과 제리' 같다. 둘이 주고받는 티키타카 대화가 꽤 재밌다. 박해민은 직캠을 통해 사랑꾼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스윗가이’ 김대우는 어떤가. ‘친절한 대우씨’라고 불러주고 싶다. 최태원 코치와 김용달 코치는 살가운 표정으로 까다로운 질문에도 척척 응한다. 김상수의 사복 패션은...패셔니스타인지 패션 테러리스트인지 묘한 경계에 있다.
최근 있던 ‘내 인생의 영화’를 꼽는 질문에서는 ‘이프 온리’, ‘어바웃 타임’, ‘원스’, ‘비포 선셋’, ‘노트북’, ‘미 비포 유’ 등 예상 외로 감성적인 로맨스 영화가 많이 나와서 놀랐다. 최태원 코치가 ‘라스트 모히칸’ 영화를 언급했을 때는 ‘아~ 그 영화’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같은 시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박해민이 ‘글래디에이터’ 영화를 모른다는 사실에는 ‘그 영화가 그리 오래된 거였구나’ 싶었고. 최애 곡 선정에서는 99년생 김윤수가 91년 곡인 ‘내 사랑 내 곁에’(김현식)를 꼽아 ‘쟤는 뭐지’ 했다. 그 와중에 이원석은 “아빠가 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가족사진>을 선택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퇴근길 직캠 초반에 건성으로 대답하던 선수들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오승환이 그렇다. 처음에는 무뚝뚝하더니 이제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돌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서서 한참이나 고민하는 선수들도 있다. 경기 직후라서 피곤할 텐데도 그렇게 한다. 이 또한 팬서비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무관중 경기가 다시 이어지면서 팬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을 그들이다. 비록 1~5초 사이의 짧은 답이지만 팬들은 환호한다. 댓글창에 이들을 응원하는 글들로 넘쳐나는 이유다.
퇴근길 직캠을 [라이온즈 TV]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베어스포TV]는 ‘무인 퇴근길’을 하고 [자이언츠TV]나 [슼튜브](SK 와이번스 유튜브), [이글스TV] 등도 가끔 퇴근길 직캠을 한다. 하지만 [라이온즈 TV]만큼 이기는 날마다 꾸준하게 올라오지는 않는 듯하다. 이제 ‘승리한 날=퇴근길 직캠’은 삼성 선수와 팬 사이에 무언의 약속이 됐다. 나 또한 삼성이 이긴 날에는 다음날 아침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스르르 미소를 짓게 된다. 세대교체로 익숙하지 않던 삼성 선수들의 이름도 이제 얼추 알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를 맞아 선수와 팬 접촉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하면 지금이 운동기계가 아닌 감성 인간으로 팬들에게 스며들 기회인지도 모른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팬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해지면 팬들도 승패를 떠나 선수들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지 않을까. '유니폼을 벗으면 선수도 한 인간'이라는 시선이 생길 테니까. '그들도 우리와 같다'라는 인식 같은.
팬 한 명을 얻기는 어렵고 팬 백 명을 잃기는 쉬운 시대다. 야구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스킨십 또한 중요한 시대다. 선수들이 열린 자세로 팬들 마음에 닿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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