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케를 태우는 이유

삶,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슬프다

by 김양희

톡이 왔다. 친구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지만 만날 짬이 도저히 나지 않는 절친. 워킹맘들은 시간을 짜내기가 어렵다. 회사와 가정에 시간에 쪼개고 나면 개인 시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넋두리, 맞다.

친구도 나와 같은 아이 둘 워킹맘이다. 차이라면 나는 딸 있는 엄마이고, 친구는 아들만 둘 있는 엄마다. "파이터"라고 친구는 자신을 표현한다.


"나 임신했어."


날벼락. 잠깐, 우리 나이가... 내년이면 45살이다. 친구의 둘째가 10살이니까 아이들 나이 터울도 상당하다.


"진짜?"


"노산 중에 노산이지."


차마 축하한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육아라는 게, 특히 보행 인간이 되기 전(이를테면 누워서 울기만 하는 그런 때) 아기를 돌보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30대에도 나날이 전쟁이었는데 40대 중반에는 오죽할까. 태어날 아이에 대한 축복보다 난 친구의 건강이 더 걱정스럽다.


"몸 관리 잘해야겠다. 성별은?"


"딸이야 ㅎㅎㅎ"


그나마 다행이다. 셋째마저 아들이었으면... 문득 아들 둘을 키우는 동생이 생각난다. 동생도 "셋째가 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 낳겠어"라고 했었다. 아들 삼 형제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선물인 거네. 몸 잘 챙기고 무리하지 말고."

"응~."


그리고, 친구는 지난 1월에 셋째를 낳았다. 다행히 둘 모두 건강하다. 오빠들은 막내 여동생의 기사가 돼 잘 돌봐준다. 잠깐 일을 쉬었던 친구도 복직을 했다. "전쟁 같지"라는 표현을 하지만.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2년 동안 반장, 부반장을 맡으면서 절친이 됐다. (3학년 때 학급 임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2학년 때 임원들이 그대로 했다.) 대학교는 달랐지만 많이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 때 총무를 맡았던 다른 친구와 함께.

친구 결혼식 때 나는 부케를 받았다. 친구 어머니가 지역에서 유명한 플로리스트여서 정말 예쁘게 잘 만들어진 부케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다른 승객들이 한 번씩 눈길을 줄 만한 그런 자태(?)였다.


100일이 지난 뒤, 나는 부케를 태우기로 했다. ‘부케를 받고 100일 뒤 잘 태워줘야만 그 부부가 잘 산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안 하면 꺼림칙하다. 친구 부부가 잘 살았으면 싶었기에 기꺼이 ‘부케 태우기’에 나섰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방화동 오피스텔. 오피스텔 바깥은 대로변이어서 나가서 태우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집 안 화장실. 그런데 웬걸. 연기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 아닌가. 꽃들은 바짝 말라 있었는데도 하얀 연기를 마구 뿜어댔다. 환풍기는 고장이 났는지 작동을 안 하고. 어째 이런 일이. 연기가 가라앉을까 싶어서 싱크대에 물까지 틀어놨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피스텔 내부는 하얀 연기로 가득 찼고 결국 현관문까지 열어야 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5층 복도까지 연기는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당최 이게 연기인지 안개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상황.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혹시 스프링클러가 고장 나 있던 것은 아닐까도 싶다. 지은 지 5년도 채 안 된 오피스텔이었는데... 연기의 질 자체가 가벼운 것이어서 그랬는지. 왜 작동을 안 했을까...)


몇 분 뒤 다른 집에서도 문을 열고 나와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복도 천장이 연기로 가득 하니 불이 난 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다만 모르는 척하고 슬며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연기의 출처를길은 없었다. 천장은 그저 구름이 걸린 듯 하얗기만 했다. 참 이런 민폐도 없다.


다행히 부케는 깔끔하게 잘 탔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친구 부부는 지금 뒤늦게 셋째까지 낳고 아주 잘 산다. 부케 잘 태우려다가 오피스텔 방화범으로 몰릴 뻔한 내 덕이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그들 부부의 복인 것을.

결혼을 하고도 아이는 낳지 않는 딩크족이 늘어나는 현재,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가 이색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친구는 가끔 "내가 환갑일 때 아이가 16살이야"라고 푸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는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복하다. 늦둥이 공주님은 예전에 친구의 부케가 그랬듯 지금 주위를 아주 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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