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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Nov 07. 2018

레드삭스 감독은 계약 때 한가지만 원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위대한 유산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1955년 라틴아메리카 출신 흑인 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이었다.


 우익수로 수비는 일품이었으나 한동안 타격은 기대 이하였다. 서툰 영어 때문에 음식점 주문을 못할 정도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인종 차별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가 쏟아진 탓도 있었다.


 1960년대 들어 클레멘테는 비로소 타격에서도 꽃을 피웠다. 1960년부터 1972년까지 13시즌 동안 단 한차례(1968년)만 제외하고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4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1966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수비 기준으로 뽑는 골드글러브는 12년 연속받았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가난한 노동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클레멘테는 오프시즌 때마다 남아메리카에서 자선활동을 이어갔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통산 3천안타(역대 11번째)를 기록했던 1972년 시즌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2월23일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강진이 발생하자 그는 즉시 응급구조 비행기를 수소문해 의료품과 식료품을 보냈다. 하지만 3차례나 보냈던 구호물품이 부패한 지역 관리에 의해 모두 빼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이 직접 니카라과행 화물 수송기에 올라탔다. 그때가 12월31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탄 비행기는 과적과 엔진 결함으로 바다에 추락했고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1973년부터 사회 공헌에 이바지한 선수에게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여하고 있다. 류현진(LA 다저스)의 동료인 ‘봉사왕’ 클레이턴 커쇼도 2012년 26살의 어린 나이에 이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그 어떤 상보다도 받고 싶었다”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올해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36)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 또한 클레멘테처럼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몰리나가 갓 야구를 시작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클레멘테의 사진을 벽에 붙여놨다. 그의 아버지는 ‘클레멘테의 유산’에 대해 강조하면서 “클레멘테는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야구장 밖에서 그는 더 훌륭했다”라고 말하고는 했다. 몰리나는 “그 말들이 내 마음속에 박혔다”라고 했다.

 2010년 ‘파운데이션 4’라는 자선단체를 설립한 몰리나는 지난해 5등급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할퀴고 지나가자 2017시즌이 끝나고 이틀 만에 고국으로 달려가 14일 내내 봉사 활동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리에서 구호 식량을 날랐고 자정 너머까지 집을 보수하고 철도길을 정리했다. 푸에르토리코를 돕기 위한 성금으로 80만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2018시즌이 끝난 지금 그는, 먼 옛날 클레멘테가 오프시즌에 그랬듯이 푸에르토리코 23살 이하 야구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비단 몰리나뿐만이 아니다.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초보 사령탑 알렉스 코라 감독은 지난해 연봉 80만달러에 보스턴과 3년 계약을 하면서 단 한 가지 요구조건만 내걸었다. 집도, 차도, 인센티브도 아니었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그의 고향 푸에르토리코를 돕기 위한 구호품 가득 실은 비행기였다. 보스턴은 그의 요구조건에 응했고 1월31일 10톤에 가까운 구호품을 싣고 푸에르토리코 카구아스로 날아갔다. 300가구를 도울 수 있는 물품이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메이저리그 사령탑으로 최초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코라 감독은 6일(현지시각) 발표된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 수상 영광을 안았다.


 클레멘테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항상 당신에게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다면 당신은 주어진 시간을 그저 낭비하는 것이다”였다. 그에게는 짧게 허락됐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지금 당신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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