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희 Nov 08. 2018

한국시리즈 4승, MVP가 안 되다

1984년 한국시리즈 MVP 투표 


알쏭달쏭 퀴즈 하나. 다음 중 한국시리즈 MVP에 뽑혔던 선수는 누구일까.

최동원(롯데) ⓶ 선동열(해태) 김용수(LG) ⓸ 김광현(SK) 


 정답은 ⓷ 김용수이다. 누구와 헷갈렸는가. 최동원? 선동열?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거둔 4승을 모두 책임지는 괴력을 선보였다. 1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완봉승(9이닝 7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거뒀고 이틀 쉬고 등판한 3차전에서도 12탈삼진을 잡아내는 등 9이닝 6피안타 2실점의 완투승을 올렸다. 다시 이틀밖에 못 쉰 최동원은 5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을 소화했다. 결과는 롯데의 패배.


 다음날 열린 6차전에 최동원은 뜻밖에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투구. 하루의 휴식 뒤 열린 7차전에서 그는 다시 선발 등판했다. 투수력이 부족한 롯데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투혼’으로 포장된 혹사 그 이상의 혹사였다. 최동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9이닝을 책임졌다. 10피안타 5탈삼진 4실점.  


 열흘 동안 홀로 5경기 40이닝을 소화(팀 전체 이닝의 3분의 2가량을 혼자 던진 셈)하면서 한국시리즈 4승(1패)을 거두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는데도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MVP를 결정하는 기자단 투표는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벌어지던 잠실야구장 기자실에서 동시에 열렸다.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정규리그 MVP 투표 때는 롯데가 3-4로 뒤진 8회초 1사 1,3루에서 유두열이 역전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리고 6-4가 된 상황에서 최동원이 마운드에 올라와 있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마음은 한국시리즈 4승이 거의 굳어져 가는 최동원에 쏠렸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타격 3관왕의 금자탑을 세운 이만수(삼성)가 있었지만 기자들은 망설임 없이 최동원을 정규리그 MVP로 뽑았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OB를 피하기 위해 져주기게임을 했다는 의혹도 이만수에게 감점 요인이 됐다.


 이윽고 한국시리즈 MVP 투표가 시작됐다. 당연히 시리즈 4승에 빛나는 최동원이 되는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유두열의 3점 홈런이 워낙 생생했고 “MVP를 한 선수에게 몰아줄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나눠먹기식’으로 유두열이 한국시리즈 MVP로 최종 결정됐다. 당시 유두열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21타수 3안타(타율 0.143), 1홈런 3타점 2도루였다. 최동원의 성적은 4승1패 평균자책 1.80(40이닝 투구 9실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는 완전히 다른 데도 ‘몰아주기는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 때문에 최동원은 시리즈 1할대 타자에 밀려 한국시리즈 MVP를 놓쳤다. ‘한국시리즈’ 하면 단골로 최동원이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고 1984년 한국시리즈는 오른 어깨를 희생한 최동원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기자들의 순간 잘못된 판단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는 KBO 한국시리즈 MVP 역사를 바꿔놓은 셈이다. 최동원의 업적은 ‘MVP’라는 상 안에 가둬둘 수는 없겠지만. (‘본헤드 플레이’가 된 기자단 투표 이야기는 추후 다시 언급하겠다.) 


 2011년 9월14일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최동원을 기리기 위해 최동원기념사업회는 2014년부터 시즌 최고의 투수를 선정해 ‘최동원상’을 시상 중이다. 올해는 두산 베어스 조쉬 린드블럼이 외국인투수 최초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참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린드블럼에게 1984년 한국시리즈 때의 최동원 이야기를 들려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작가의 이전글 레드삭스 감독은 계약 때 한가지만 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