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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May 22. 2019

시간에 밥 주기

오토매틱 시계의 아날로그 감성


가끔 오토매틱 시계를 찬다. 오토매틱이라 하면 시계의 용두를 돌려 태엽을 감아줘야만 시계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시계에 밥을 준다고나 할까. 

 

 다분히 아날로그적인데 용두를 돌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드르륵드르륵 태엽이 감기는 미세한 느낌이 손목에 그대로 전달된다. 디지털 시대에 가끔씩 아날로그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온 세상에 배터리가 없어지면 이 시계만 살아남겠지"라고도 말한다.


 몇 날 며칠이 지나 시계가 멈춰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미안함도 밀려온다. 시계의 의무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건만 멈춰 있는 시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물론 그 '멈춤'은 나의 무심함에서 비롯된 것이고.  


 버스 안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용두를 돌린다. 내 손길이 없으면 시계는 어느 순간 작동을 멈출 것이다. 시계는, 그리고 시간은  개인의 노력과 수고에 의해 그 존재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수고 없이 보낸 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그 또한 나의 시간이었을 텐데.


오늘도 나는 오토매틱 시계를 차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마흔 살 넘도록 익히지 못했던 엑셀 작업을 유튜브 등을 통해 배웠다. 그동안 엑셀 없이도 살 수 있던 삶이었는데, 부서를 옮기면서 특정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알아야만 했다. 체득하는 게 많아질수록 노동자로서의 쓸모는 더욱 많아진다. 그게 현실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멈춰 있으면 퇴행, 퇴보한다.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달팽이처럼 굼뜨더라도. 


조금은 뿌듯한 느낌도 있다. 직장 생활 21년 차에 무언가 다른 생존 무기를 장착한 듯해서다. 한 부서에 머물렀다면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시계의 용두들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언젠가 멈추게 될 것이 뻔하다. 기계든, 인간이든 기름칠을 해줘야 한다. 낡고 삭기 전에.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사무실 바닥에 가라앉은 오늘을 사뿐히 지르밟으며 총총히 파란 하늘 아래 또 다른 오늘로 나가야겠다. 오늘의 수고가 바닥에서 먼지가 될지, 꽃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름으로 산화되기를. 그때도 이 파란 하늘만은 파랗기를 바란다. 


퇴근 전, 천천히 오토매틱 시계의 용두를 돌리면서 오늘의 나를 다독여줘야겠다. 드르륵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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