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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Aug 29. 2019

맞아도 행복했던 사나이, 이동현

굿바이, 롸켓

10년 전이었다. 경기에서 연속 안타를 허용한 게 떠올라 “너무 얻어맞는다”라고 했더니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그래도 행복해요”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웬만해선 안타를 맞지 않던 그였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다시 한번 “너무 행복해요”라며 씩 웃었다. 거짓 없는 미소였다.


그는 LG팬들에게는 ‘추억’이자 ‘로망’이다. 암흑기를 맞기 직전인 2002년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최고의 허리 역할을 했다. 한국시리즈 6차전 도중 라커룸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는 던지고, 또 던졌다. 만약 그때 조금만 던졌다면, 그리고 2004년에 덜 등판했다면 다른 팔 인대를 떼어내 이어 붙이는 대수술을 3차례나 받지 않아도 됐을까. 이동현은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던졌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어요. 내 팔이 고장 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죠."


 재활은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이다. 눈을 뜨면 쿡쿡 쑤셔오는 아픈 팔을 하루 수백 번 만져주면서 달래야 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지루하게 수천, 수만 번 반복, 또 반복되는 운동에 심신은 절로 지쳐간다. 끝에 거의 닿았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똑같은 단계를 걸쳐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과정을 그는 한참 던져야 할 나이에 겪었다. 김태균, 이대호 등 그의 동기들은 승승장구할 때였다.


 힘들었던 시기에 는 것은 눈물이었다. 화가 나 울었고, 절망적이어서 울었다. 3번째 수술을 앞두고는 심각하게 은퇴도 생각했다. 하지만 3번째 수술 뒤 대선배인 이상훈이 그에게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절대 스스로 야구를 포기하지는 말아라. 팔이 끊어질 때까지 마운드에서 버텨라.”


 김병곤 당시 LG 트레이너도 그를 붙잡았다. 김 트레이너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했다. 그도 잠실구장 관중석 202번 출구 옆에서 동료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그렇게 그의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기는 싫었다. 한 번쯤은 더 라커룸에서 쓰러지더라도 잠실구장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려보고 싶었다. 2009년 5월20일 광주 기아전에서 4년9개월 만의 1군 등판을 마치고 그는 김 트레이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형, 나 다시 공 던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흘렀다. 재활하면서 다 쏟아냈다고, 다 게워냈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잠실구장 더그아웃에서 기어이 터져 나왔다. 지난 8월22일 통산 700경기 등판을 막 마친 뒤였다.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어서”,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어서” 행복하던 그는 더 이상 던지지도, 아웃카운트를 잡지도 않을 날이 올 것임을 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팔꿈치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그런 날.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차마 꺼낼 수 없던 그 말, 은퇴.  그는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9월29일, 잠실야구장 마운드에서 진짜 마지막 프로 마지막 공을 던진 뒤 그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앞으로 야구때문에 더 울지 않아도 되는 그다.


 이동현은 프로 은퇴를 발표한 뒤 자신의 SNS에 “LG가 우승하는 순간에 나의 인대를 팀에 받치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해 아쉽지만 이제는 아들 정후가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공 던져줄 인대는 남겨놓았다고 생각해” 달라고 했다. 충분히 그는 LG 트윈스에, 프로야구에 자신의 인대를 희생했다. 여러 번 절망했지만 결코 좌절하지는 않았던 그였다. LG팬들도 이를 알기에 그의 은퇴에 더 먹먹해지는 것일 것이다.


 그는 “실력이 모자라 떠나는 지나가는 선수”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이동현은 ‘불굴의 의지’라는 말에 방점을 찍은 선수였다. 경기고등학교 시절 한 경기에서 170개 이상의 공을 던졌고 프로 시절에는 연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불펜에서 늘 대기하면서 묵묵히 마운드에 올랐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공을 던지던 그의 어깨, 팔꿈치는 그렇게  마모되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뚝이처럼 그라운드로 돌아왔었다. 그의 말대로 “행복하기 위해”.


이제 그는 공을 내려놓는다. 야구 밖 인생이라는 또 다른 공을 던질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굿바이 이동현, 굿바이 롸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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