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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Sep 06. 2019

허리케인이 온다, 메일이 쏟아진다

미국 견문록 1.  재난 대처법 

“우리 집 물에 잠기는 거야?”

“우리, 2층인데?”

“2층까지 물이 올라올 수도 있잖아.”

“설마 그렇겠니.”


아이들은 등교 전부터 호들갑이다. 허리케인 도리안 때문이다. 도리안은 바하마를 강타하고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해변을 타고 현재 북상 중이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영향권에 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도리안은 최상위 5등급이었다가 바하마에 물폭탄을 퍼부은 뒤 2등급으로 약화됐었다가 다시 3등급으로 올라갔다.  


 도리안 때문에 아이들 학교는 오전 수업만 한다. 인근 캐리 지역의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아이들 학교도 상황에 따라 내일 휴교령이 내려질 듯하다. 48시간 동안 안심할 수는 없다고 하니까. 


 도리안에 대한 경고는 1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허리케인 발생 시점부터 크기, 예상 경로, 더 나아가 대처법까지 뉴스에 내보냈다. 뉴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듀크 전기부터 AT&T(전화), 스펙트럼(인터넷), 교육청 등에서 허리케인 대처법에 대한 메일이 연일 쏟아졌다. ‘전기가 끊겼을 때 대처법’, ‘전화, 인터넷이 불통일 때 대처법’ 등에 대한 안내였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학(UNC)에서도 같은 메일이 왔다. 응급 전화 등을 안내하는 메일이었다.


 아이들 학교가 속한 교육청에서는 어제저녁에 전화가 왔다. 녹음된 안내 방송이었는데 “3 시간 단축수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메일도 왔다. 특이한 것은 한국이었다면 해당 학교에서 문자가 오거나 반 대표 학부모가 단톡 방을 통해 관련 사실을 통보했을 텐데 교육청에서 전화나 메일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아이 반 담임으로부터도 이른 아침에 메일이 왔는데 “아이 하교를 보통처럼 할지 미리 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스쿨버스를 태울지 직접 데리러 올지 선택하라는 것. 스쿨버스가 안전한 것 같아 메일을 보냈더니 바로 답변이 왔다. 

 허리케인의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주위 사람들도 물과 비상식량 등을 사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 등은 생수 등을 눈에 띄기 좋게 앞쪽으로 배치했다. 마트에서는 여러 통의 물을 한꺼번에 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나 또한 물과 비상식량 사기에 동참. 자동차 휘발유도 꽉 채워놨다. 보조 배터리 등도 100% 충전 완료.  


 한 지인은 “너무 호들갑 아니냐”라고 했지만 가까운 슈퍼마켓도 차로 5~10분은 가야 하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흔한 24시간 편의점도 물론 없다. 전기, 수도, 인터넷 등이 고장 났을 때 수리기사가 금방 달려오는 시스템도 아니다. 만약에 집 주변의 거대 나무들(왕복 4차선을 막고도 남을 만큼 길쭉하다)이 쓰러져 도로를 가로막는다면? 혹은 전기가 끊기거나(우리 아파트에는 비상 발전기가 있다 하지만) 단수가 된다면? 무엇이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허리케인이라면 더욱. 어쩌면 최악의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해 봤기 때문에 미국은, 미국 사람들은 더욱 자연재해에 따른 안전에 신경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은행에서 카드를 신청할 때 신분이 확실한데도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도 그렇다. 인터넷 고장에 따른 AS를 신청하면 빨라야 이틀 뒤에나 온다. “1분만 기다려 달라”는 얘기가 “10분을 기다려라”라는 뜻임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혹은 20분, 30분이거나. 놀이공원 같은 경우 식사 주문 처리가 너무 늦어서 족히 1시간은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이렇게 느리고 느린 미국이지만 허리케인 같은 개인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재빠르게 대처한다. 메일 등을 통해 ‘주의를 하라’고 거듭 경고한다. 그래서 경각심이 더 생기는 지도 모른다.


 유비무환의 모습은 야구장에서도 느꼈다. 애틀랜타 선트러스트 파크를 갔을 때 경기 전 전광판에서는 야구장 비상구 상황과 비상 탈출 방법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는 일본 도쿄돔에서도 봤던 광경인데 팬들이 입장하기 30분 전에 야구장 직원들이 관중석 구역 별로 나란히 서서 호루라기를 불며 관중을 대피시키는 모의 훈련을 매일같이 했다. 특정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몸에 배어 있으면 당황할 일도 없을 터. 생각이 얼어붙는 긴박한 순간에도 몸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대처법이 생명을 구할 수도, 뺏을 수도 있다. 

  TV에서는 도리안에 대한 경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엔 폭우와 함께 20만 가구가 정전이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내가 살고 있는 채플힐은 아직까지 부슬비가 내릴 뿐이다. 바깥에서는 잔디 깎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정도라면 만반의 준비를 한 게 진짜 호들갑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어떠랴.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면 될 테니. 물은 마시면 되고, 비상식량은 그냥 먹으면 된다. 두 번째 허리케인이 온다 해도 아마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안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항상 예외가 될 테니까.  


덧. 단축수업을 알리는 메일 끄트머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교 직원(선생님 포함)들도 가정으로 돌아가 안전하게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축수업을 한다”라고. 가끔씩 우리는 선생님이나 여타 공공기관 종사자 등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그들도 누구의 딸, 아들, 엄마, 아빠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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