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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Oct 16. 2019

잉여 클럽, 혹은 잉여 인간

#미국 견문록 5. 골프 치기 

드르럭, 드르럭.


골프 카트가 끌리는 소리. 집에서 차로 18분 거리에 근사한 골프장이 있다. 골프홀릭은 아니지만 골프만 한 유산소 운동도 없다. 좋은 경치 보면서 잔디밭을 마음껏 밟을 수 있으니까 심적으로도 편안해진다. 10여 년 전 우울증을 한창 앓을 때 한 회사 선배도 골프를 추천했더랬다.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풍경 눈에 담으며 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물론 공이 안 맞으면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지만 울적한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은 맞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도 골프를 다녀온 뒤 "엄마가 운동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골프장 가격은 1년 회원 기준(월~목)으로 월 150달러 정도밖에 안 한다. 여기에 학생 할인(학생증 나오는 연수자니까) 등을 받으면 더 가격은 떨어진다. 한국에서라면 퍼블릭 코스에서 한 번 정도 라운드 할 가격에 최대 16~18번까지 제대로 관리가 되는 코스에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월~목요일 매일 골프를 치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한 달에 10번 정도는 나가 파란 하늘 아래에서 마음껏 잔디를 밟는다. 그냥 산책하는 마음으로 9홀만 돌고 나와도 된다. 한국서는 어림없는 소리지만.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치게 되니까.  


 집 근처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 교포 사장님은 “생존을 위해” 골프를 친다고 했다. 골프라도 치면서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단다. 일단 1년 치 회원을 끊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부러 나와 공을 치게 된다고 했다. 갑갑한 가게 밖에서 그렇게 1주일에 2~3번씩은 오전에 운동을 하고 오후에 가게 문을 연다. 내가 다니는 골프장 최대 셀럽은 84살 백인 할머니인데 하루도 빠짐없이 골프장에 나오셔서 18홀을 전부 돈다. 전동 카트는 타지 않는다. 역시나 그분도 카트를 끌고 다니신다. 어쩌면 그분께도 골프가 생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바퀴 달린 손 카트를 드르럭, 드르럭 끌고 다니며 공을 치기 때문에 체력은 필수다. 13홀 즈음 지날 때는 발에서 불이 나는 듯도 하다. 저질 체력 어디 가겠는가. 골프백 안 클럽수를 줄이면 좀 가벼워질 것도 같은데 차마 클럽을 빼지는 못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 클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이 안 맞는 게 클럽 탓은 아니건만 애꿎게 클럽 탓을 하면서 이리저리 바꿔볼 요량으로 모든 클럽을 다 갖고 다닌다. 


 4~9번 아이언, 3번~5번 우드, 샌드, 피치, 드라이버, 남자용 7번 아이언(골프 처음 배울 때 남자용 7번 아이언으로 배워서 이게 편하다), 물려받은 집에서 굴러다니던 하이브리드, 그리고 퍼터. 이 클럽들 중 4번 아이언은 미국 와서 처음 비닐을 뜯었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클럽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이곳에서 10여 차례 라운드를 했는데 내가 쓰는 클럽이라 봐야 드라이버, 5번, 7번, 9번 아이언, 3번 우드, 샌드, 피치, 퍼터, 그리고 남자용 7번 아이언 정도다. 4번 아이언은 3번 우드가 안 맞을 때 가끔 쓴다. 6번, 8번 아이언, 5번 우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빼도 될 듯한데.


 문득 미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쓸모없는, 아니 쓰임새가 없는 클럽은 그냥 집에 두고 다녀도 될 텐데 힘겹게 두 손으로 끌고 다닐까 하는. 이들 클럽을 놓고 왔으면 내 어깨는, 내 다리는 조금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내 골프백 안에 있으니 같은 힘을 분배받고 있을 텐데. 


 홀과 홀 사이에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골프백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생각도 했다. 저리 자신의 능력치를 믿어달라면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주인은 골프 미숙자라서 제대로 활용을 못해주고 있다. 그나마 믿음이 생긴 쓰던 클럽만 계속 쓰고. 그러다 보니 해당 클럽만 낡고 있다. 쓰지 않은 다른 클럽은 윤기가 바르르. 일 많이 하는 클럽이 버닝아웃 직전으로 가고 있다. 

 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과연 무슨 클럽일까. 처음 골프를 배울 때 길이 때문에 코치가 추천해서 익숙해진 남자용 7번 아이언일까, 아니면 그와 비슷한 길이 때문에 자주 쓰는 5번 아이언일까. 혹은 혹시나 해서 쳐 보는 4번 아이언일까. 숙련되지 않은, 실수가 많은 3번 우드? 한 번도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6번 아이언? 다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쓸모 있는 클럽이 됐으면 좋겠다. 미숙한 골퍼의 손때문에 헤드가 마구 상처가 나더라도. 잉여 클럽이 부담되듯이 잉여 인간으로 부담을 주기는 싫으니까.  


 골프백 안을 보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는 나다. 6번, 8번 아이언의 쓰임새를 찾아주기 위해 더 연습해야겠다. 잔디 사뿐히 즈려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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