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9월 초. 아이들과 노스캐롤라이나 동물원을 갔다. 채플힐 집에서는 차로 1시간30분 남짓. 동물원에서 정말 귀여운 사막 고양이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북극여우도 봤다. 나무가 5~6미터 즈음되는 숲 속에 동물원이 있어서 걷기도 좋았다.
아이들 동물 인형을 사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북극여우 색깔이 겨울에는 하얗게 변한다면서 그때 다시 오자"고 떠들어댔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는 수시로 바뀌었다. 65마일, 70마일 등등. 앞에 트럭 두 대가 있길래 본능적으로 앞질러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아뿔싸. 뒤를 보니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이런 제길.
미국 과속 벌금이 세다는 것은 익히 들었던 바. 남편이 미국 출장 중 스피딩 티켓을 떼었을 때 "나는 속도를 지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긴 한국에서도 나는 잊을 만하면 과속 딱지가 날아오고는 했었다. 김여사의 고속도로 과속 본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
친절한 말투의 경찰은 "65마일(105km) 구간에서 82마일(132km)로 달렸다"라고 했다. 그랬나? 그다음엔운전면허증과 자동차 등록증을 요구. 그런데 그때서야 내가 등록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험증서만 있을 뿐. 내가 허둥대자 경찰은 그냥 운전면허증만 경찰차로 가서 조회했다. 미국 면허 딴 지 한 달밖에 안 됐고 한 번도 교통법규를 어긴 적이 없으니 봐줄 만도 하건만 그 경찰은 아주 정직했다. 바로 티켓을 끊었다.
티켓을 보니 적힌 법정 출두일. 단순 과속일 뿐인데 법정까지 출두하라고? 내가 의아해 하자 경찰은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이 직접 출두할 필요는 없으니 변호사를 구하세요. 2~3일 후면 메일함에 쌓일 거예요."
진짜 딱지 떼이고 2~3일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메일이 쏟아졌다. 얼추 15통은 된 듯하다. 어찌 알았는지 내 딱지 번호가 떡 하니 쓰여 있었다. 함께 운동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의 답은 이랬다. "지역 경찰-변호사-검사는 모두 한통속이에요. 다 커넥션이 있죠."
처음에는 그냥 벌금을 내고 말아야지 싶었다. 지인들이"법정 출두는 벌금을 깎기 위한 게 아니라 벌점과 보험 포인트를 없애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미국에서 1년밖에 안 살 거라면 굳이 법정 출두할 필요가 없다는 것.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낸 우편들을 살펴봐도 벌점과 보험 포인트를 없애준다는 얘기만 있었다. 보험 포인트 올라가면 6개월 뒤 보험료가 1000달러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경고성 문장과 함께. 나는 이미 1년 치 보험료를 완납한 상태라서 나와는 무관한 얘기였다. 그나저나 단순 과속인데 보험금이 1년에 100만원 이상 뛴다고? 온라인을 뒤져보니 200만원 이상 오르기도 한단다. 과속이 심각한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으나 좀 심한 듯하다.
아무튼 문제는 나의 경우 반드시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는 것. 온라인 조회를 하니 제한 속도를 17마일 초과했기 때문이란다. 카운티 별로 규정이 다른데 내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는 해당 속도로는 벌금(이때도 법정 비용, 코트 피는 낸다. 코트 안 나가는데 내야 하는 코트 피라니 ㅡㅡ)만으로도 가능한데 내가 딱지를 떼인 란돌프 카운티는 무조건 법정 출두가 원칙이었다.
한동안 고민했다. 직접 법정 출두할까, 말까. 왕복 3시간 거리인 데다가 법정에서도 3~4시간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니까 그냥 변호사를 구하기로 했다. 우편을 보니 보통 과속 벌금은 10~250달러, 법정 비용은 200~250달러. 법정 비용이 과속 벌금보다 훨씬 많다. 결국 변호사들이 딜을 할 수 있는 것은 과속 벌금밖에 없다. 벌점과 보험 포인트는 논외로 치고. 법정 출두가 강제된 상황에서는 법정 비용을 깎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최저기본 200달러는 깔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몇 군데 변호사 사무실에 이메일을 보내니 답이 왔다. 변호사 비용도 천차만별. 어떤 곳은 75불을, 어떤 곳은 150불을 요구했다. 학교에서 같은 강의를 듣는 분이 "로펌 크기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답을 줬다. 하긴...75불을 받겠다는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하니 교통 딱지와 위임장만 팩스로 보내라고 한다. "더 이상의 변호사 비용은 없는 거냐?"를 여러 번 되물었다. 150불의 잔상이 짙게 남아서. "물론 없다"라고 재확인했다.
10월25일이 법정 출두일이었고 주말이 지난 28일,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우편이 왔다. 벌금 고지서를 보니 별별 요금이 다 쓰여있다. 거기에는 나를 잡았던 경찰에 대한 서비스 요금까지 들어있다. 주 고속도로 순찰차로 가는데 요금은 5달러. 옆에서 이를 본 10살 딸은 '엄마 잡아줘서 감사하다고 경찰한테 돈 주는 거야?"란다. 미국은 팁의 나라이니까 과속 운전한 나를 통제해줬으니 감사하다는 뜻인가. 더 큰 사고를 방지해줘서?
찬찬히 벌금 고지서를 보니 텔레콤&데이터 비용(4달러)도 있고 법원 시설 이용료(12달러)까지 있다. 별걸 다 물리는구나 싶다. 정작 과속에 대한 벌금은 25달러.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란돌프 카운티 코트 유지에 많은 공헌을 한 듯 싶다.
과속으로 잡히는 바람에 알게 된 것도 있다. 미국에 와서 차를 산 뒤 차량 소유증을 미처 받지 못했다는 것. 소유증은 과속 딱지 떼인 뒤 매매처에 문의했더니 1주일 만에 왔다. (그러니까 나는 소유증을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등록증의 경우는 세금 등을 내고 차 번호판에 유효기간 1년의 스티커를 붙이게 되어 있는데 스티커 있던 종이가 바로 등록증이었다. 등록증인 줄 모르고 버렸는데 DMV에 가서 다시 발급받았다. 다행히 무료였다.
과속 벌금 폭탄 사태를 겪은 뒤부터 나는 꿋꿋하게 규정속도를 지키고 있다. 뒷 운전자가 아무리 거북이 운전자라고 놀려대도 꿋꿋하게 제한속도대로(미국에선 절대 제한속도로 안 간다. +5마일 정도는 다들 한다) 운전한다. 오로지 마이웨이. '늬들이 딱지 떼어봤어!'라면서 속으로 화를 삭인다.
덧붙이기.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다. 때문에 관련 내용은 노스캐롤라이나에 한정된 얘기라는 것을 밝혀둔다. 노스캐롤라이나 카운티 별로도 다 제각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