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없는 비시즌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름의 ‘야구’가 왔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다. 신인 이신화 작가의 장편 입봉작인데 <별에서 온 그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의 <사랑의 불시착>(뭔가 올드한 제목이다)을 시청률과 화제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야구팬뿐만 아니라 비 야구팬의 시선까지 끌어모으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그라운드 안팎의 사전 취재가 풍부했다는 뜻일 게다.
사실 <스토브리그>는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정통 야구 스토리가 아니다. 야구가 아닌 야구 시스템과 그 안의 야구장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인 드림즈 백승수 신임 단장을 중심으로 내년 시즌 전력 보강과 팀 체질 개선을 위한 물밑 싸움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 제목이 나왔을 테고.
<스토브리그>는 사실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허구의 드라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음 직한’, ‘그럴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다룬다. 너무 허무맹랑하면 사람들이 외면할 테니까. 그렇다면 <스토브리그>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20년 가까이 야구장 주변에서 맴돌면서 취재를 했지만 나 또한 제한적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적확한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
#야구 전혀 모르는 외부 단장?
2010년 이전까지도 단장은 사장과 함께 그룹 내 낙하산 인사가 거의 도맡았다. 두산 김태룡 단장처럼 야구단 내에서 내부 승격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으나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야구단 내부에서는 “야구도 모르면서”라며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선수 출신 단장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10개 구단 중 7개 구단 단장이 선수 출신이다. 외부 인사로 깜짝 발탁된 성민규 롯데 신임 단장도 선수 출신이다. NC(김종문), 히어로즈(김치현), 삼성(홍준학) 단장은 비 선출인데 이들은 내부에서 승진한 케이스다. 드림즈 백승수 단장처럼 인터뷰를 통해 구단 바깥에서 영입된 비 선수 출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야구 산업이 조금 더 발전하면 모를까. 모그룹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 생존이 가능할 만큼. (참고로 MLB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30개 구단들 중 14개 팀 단장이 아이비리그 명문대 출신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단장이 비 야구인 출신인데 운영팀장까지 비 야구인이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합이다. 차라리 운영팀장이 소프트볼 국가대표 출신으로 부상 등으로 은퇴 뒤 드림즈에 들어와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면 드라마가 더 설득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A급 선수간 대형 트레이드?
현실에서라면 이 또한 쉽지 않다. 선수협 결성 추진 이유로 감행된 보복성 트레이드(롯데 최동원-삼성 김시진)가 아니라면.
한 구단에서만 10년 넘게 선수 활동을 한 스타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선수가 팀 내에서 독보적인 스탯을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선수라면 아무리 인성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트레이드는 어렵다. 물론 ‘야생마’ 이상훈처럼 이순철 전 LG 감독과 불화로 트레이드가 된 케이스도 있었지만 A구단 4번 타자와 B구단 국가대표 에이스를 맞바꾸는 것은 가히 힘든 작업이다. 카드를 맞춰보다가 엎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내의 경우 야구단이 10개뿐이어서 트레이드는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내가 버린 칼이 비수가 되어 나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신 단장이 아니라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테고. 그런데 팀 중심 타자를 내준다고? 게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자기 자리를 걸고 트레이드를 감행할 강심장을 가진 단장이 있을까? 드림즈 백승수 단장처럼 ‘1년 뒤 구단 해체’ 조건을 갖고 단장으로 선임됐다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코치 간 파벌 싸움
구단마다 파벌 싸움은 있다. 보통은 단장 라인, 감독 라인으로 갈린다. 현 감독이 레임덕 상황이라면 차기 감독이 될 후보 밑으로 자연스레 몰리기도 한다. 모그룹 내 고위직과 연결된 코치 라인도 있다. 프랜차이즈라면 자연스레 모그룹 고위직과 인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파벌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파벌 싸움은 물밑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 서로가 누구의 라인인지는 안다. 정상적인 시즌이라면 문제없지만 감독 임기 말이나 팀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으면 ‘파벌’ 문제는 수면 위로 점차 떠오르게 마련이다. ‘모래알 군단’이 되는 셈이다.
드라마에서 이해할 수 없던 점은 만년 하위권 감독과 연장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1년 뒤 해체(혹은 매각)될 팀이라서 그랬을까. 그리고 감독에게 3년 계약을 보장해줬다고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주먹 다툼까지 벌인 파벌 싸움이 사그라들까. 임기 첫 해 절반의 시즌만 소화하고 그라운드를 떠난 감독도 있는 와중에.
#선수 접대받는 기자?
선수가 기자‘단’을 접대하는 경우는 없다. 상을 받은 기념으로 기자들(물론 해당 구단 담당 기자들일 것이다) 모두를 회식시킨다고? 정규리그 MVP나 신인상을 받으면 소정의 상품을 제작해 야구 기자들에게 선물하기는 했었다. MVP 000라고 선명하게 박힌 카드지갑이나 텀블러, 백팩(가족 중에 가방 공장을 하는 이가 있어서였다) 등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을 모아놓고 거하게 쏘는 일은없었다. 구단이 마련한 자리에 인사차 들를 수는 있어도.
기자‘단’은 보통 단장, 감독, 홍보팀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물론 친한 사이일 경우 특정 선수와 소수의 기자들이 함께 자리할 때도 있다. 보통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2000년대만 해도 오픈된 장소에서 삼겹살을 먹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 기능 때문에 폐쇄된 공간에서 주로 만난다. 밥값은 선수가 낼 때도 기자가 낼 때도 있다. 일방적인 접대의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물론 분위기가 달라졌고. 야구를 다루는 언론사 또한 많아지면서 선수-기자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외국인 선수와 계약할 때 보통은 스카우트 팀이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국내에서 단장, 감독, 코치 등이 보고 결정한다. 현지 계약은 스카우트 팀에서 한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단장이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시즌에도 단장이 직접 외국인 선수를 보러 가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은 스카우트 팀장이 움직이고 운영팀장은 따라나서지 않는다. 운영팀장은 스토브리그 때 선수 고과 산정과 연봉 계약 등으로 아주 바쁘다. 스프링캠프도 준비해야 하고.
구단마다 축적해 놓은 외국인 선수 리스트는 얼추 비슷하다. 여기에서 팀 사정에 맞는 선수를 골라 계약한다. 점찍어 놓은 선수가 같으면 돈 싸움이 벌어진다. 일본 프로구단까지 가세하면 스카우트 팀이 골머리를 앓는다.
드라마 초반을 채운 스카우트 비리 같은 경우는 왕왕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이중에는 물론 실체가 드러난 일들도 있었고. 군대 입대를 앞두고 국적을 포기한 로버트 길(길창주)의 경우는 현실상에서는 국내 구단 입단이 어려울 듯하다. 모그룹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자생력이 없는 국내 야구단은 모그룹의 결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모그룹은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인 ‘군대’ 문제가 걸려 있는 로버트 길을 품을 리 만무하다. 유승준의 케이스를 보면 더욱 그렇다.
<스토브리그>는 그럴 법한 야구단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연봉 협상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고. 마케팅 부서의 고군분투기도 다룰 만하고. 그 어떤 이야기든 기꺼이 지켜볼 준비는 돼 있다.
“패배가 익숙하고 썩어 들어가는 팀을 성장시키는 과정은 결코 익숙한, 아름다운 성장드라마가 아니다. 썩은 것을 도려내기 위해 악랄해지고 진흙탕을 뒹구는 추악하고 치열한 싸움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만 사는 듯 싸워나가는 주인공에 눈살이 찌푸려져도 ‘약자이면서도 관성에 저항하는 악귀’를 지켜볼 수밖에 없고 응원하게 되기를 바라며.”(<스토브리그> 기획 의도 중)
덧붙이기. 드라마 중 여기자가 등장하던데 경기 전 더그아웃에 있다가 나간 뒤 구단 관계자가 소금 뿌리는 장면이 회상 등의 씬으로 나오면 리얼리티 더 살 듯. "아침부터 여자 보면 재수없다"고 실제로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