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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16. 2021

글 쓰는 일상

좋은 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좋은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한다.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없는 인생처럼. 그러니까 이런저런 글을 끄적여 보듯이, 이렇게저렇게 고군분투하며 주어진 하루를 살아볼 수밖에.



엄마에 관한 글은 오래 묵은 과제였다. 애초에 10편을 기획했고 주제와 소재도 정하고 시작했다. 스스로 마감일을 정해 매주 토요일에 발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인들에게 미리 수요 조사도 했다. 그렇게 기획을 했음에도, 매번 평균 700자의 글을 쓰는 것은 곤혹이었다.

첫 편은 3주 동안 퇴고했지만, 마지막 편은 하루 전에 쫓겨 썼다. 예정한 10편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소재를 쥐어짠 편도 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애매할 때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분칠하기 위해 또 머리를 쥐어짜내야만 했다. 그런 괴로움 뒤에는, 5편 정도면 될 일을 10편으로 공표해서, 또또 나를 과대평가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엄마에 관한 글을 시작할 때 나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엄마에 대한 감정적 치유. 엄마는 언젠가는 내 인생에서 넘어서야 할 존재였다. 엄마를 생각할 때 밀려오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해소하고 싶었다. 이 목표는 다섯 편을 채 쓰기 전에 달성되었다. 두 번째로 썼던 ‘엄마는 왜 나를 낳았을까’라는 글을 쓰고 많이 울었다. 수년째 내 가슴에 있던 그 질문이 더 이상은 무색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을 통틀어 엄마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글로 정리하기 위해 보다 객관적으로 곱씹을수록 내가 만들어낸 감정으로부터 스스로가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글쓰기 능력 향상. 책을 읽지 않고, 짧은 글에 더 익숙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올바른 문장으로 전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난항이었다.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 사전 예문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글을 썼다. 그동안 글을 쓸까 말까만 생각했지, 기본 자질은 형편없었구나. 게다가 10년이 넘게 직무에서 글이 핵심이었음에도 남의 일, 남의 글이라는 핑계로 더 공부하지 않았음이 부끄러웠다. 급하게 교정 공부를 했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세 번째, 끈기를 가지고 계획을 완주하기. 결과적으로 이 목표도 달성한 셈이지만, 스스로의 동기만으로는 아마 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목표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지면서 엄마에 관해 글을 쓰는 내적 동기가 감소했다. 이때 ‘남들의 눈’이 큰 동력이 됐다. 예고한 발행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혹은 글이 일기 수준으로 형편없다면 독자들 중 누군가가 나를 비난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열심히 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글을 쓴다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약속을 해야 효과적이려나.

어쨌든 10주 넘게 이어진 글 쓰는 일상은 꽤 규칙적이었고, 나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취미였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별 감흥 없는 글일지 몰라도, 여전히 몇 몇 글은 읽을 때마나 눈물이 난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전문 분야가 없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남의 글을 잘 읽지도 않는다. 아마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무도 묻지 않는, 내 이야기를, 굳이 해도 될까? 게다가 남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나는 그 보답으로 무언가 멋진 것을 표현해야만 할 것 같다. 적어도 교훈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

그렇지만 자격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누구든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믿어본다. 그리고 글이란 어디까지나 ‘지금으로서는 이렇다’는 전제로 쓰는 것이다. 글을 읽는 시점에 글을 쓴 시점은 이미 과거다. 평생 내가 쓴 글에 얽매이거나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생각이 나를 용기 있게 만든다. 장기하의 표현대로, '상관없는 거 아닌가?'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지금의 나를 가장 맑고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다.

엄마가 실제로 어땠는지 곱씹고, 그때 형성된 감정을 확인하고, 그 감정을 해소해가는 지금의 나를 인지하고, 이 경험을 더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데 이렇게 밖에 못 쓴다는 것을 자각하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글을 쓰며 알게 된다.

손가락이 자음과 모음을 합쳐 한 단어 한 단어 써 내려가면 내 두 눈은 그것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수없이 되뇌어 읽으며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 작가로서의 삶을 원한다거나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지 않는 일상은 그때에 비하면 조금 적적하다. 그러니까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말은, 내가 나를 좀 더 자주 만나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구나,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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