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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17. 2021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

모든 시대마다 우울과 절망은 존재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자에게는 그 좌절이 더욱 크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그래서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상은 상대적이다. 절망 또한 그러하다. 진리나 도덕도 마찬가지다. 월든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검소하게 살았던 생태주의자이자 미니멀리스트이자 초월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1840년대를 살았다. 그가 게으르고 천하다고 비난하던 미국의 신진문명은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도 부지런했고 검소했을 것이다. 그가 아쉬워하는 콩코드의 옛모습은 지금에 비하면 무척이나 푸르렀을테지.

그러한 소로조차 엄청난 재력가 후견인이 없었다면 변변찮은 직업이 없이 무료로 월든 숲가의 사유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을 자연친화적으로 산 위대한 사람이지만, 겨울철 나무의 나이테 개수를 세다 젊은 나이에 폐렴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은 그가 거부하던 문명의 진보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아이러니를 인정해야 한다. 사는 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성인군자라도 자신의 삶을 예측할 수 없다. 깨달음을 얻고 해탈한 부처도 결국 돼지고기 식중독으로 죽었다(루머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인체는 원자와 분자, 세포, 근육으로 이루어진 유기체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구는 우주의 Blue Pale Dot에 불과하며, 인류는 그 지구에 잠시 등장한 찰나의 종일 뿐.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은 대단한 노력이 아니라 우연한 결과였을 뿐.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도 가까운 이의 죽음은 아직도 거스르고 싶은 섭리이고, 오늘 먹을 메뉴가 중요하고, 주식, 보험료, 그리고 부동산 정책과 SNS 등이 내 삶을 채운다.


이집트의 화려함은 잔혹한 정복 뒤에 있었고, 그리스의 영광은 노예제도에 기반했다. 이집트가 건설하면 페르시아가 파괴했다. 페르시아가 건설하자 그리스가 파괴했다. 그리스가 건설한 것은 로마가 파괴했다. 이슬람이 건설하면 스페인이 파괴했고 스페인이 건설하면 영국이 파괴했다.

처음에 인간은 막대와 돌로 서로를 죽였다. 그 다음엔 화살과 창으로, 중장갑보병대와 군단으로, 대포와 소총으로, 전함과 잠수함으로, 탱크와 비행기로 죽였다. (월 듀런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이 책이 쓰인 1930년 이후에는 핵미사일로 죽였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태어나 479년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 일이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는 너무도 혼란했다. 인간이 차마 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온갖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중세를 종교가 지배하던 암흑기라 하지만 오히려 신이라는 하나의 진리로 인해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철학이나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서 인간의 고민이 고대 그리스나 춘추전국시대와 달라졌을까?


씨줄의 개인과 날줄의 시대가 얽힌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 당연히 투표를 하고 모든 것을 당연히 누리며 살아왔다. 더이상 침략과 전쟁, 멸망은 없고 그런 것들은 역사책 속에서나 봤다. 2021년에 판단하기로는 이런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하다. 이제 인류는 UN을 세웠고, 노예제도를 폐지했고, 종교의 자유도 가졌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대, 중세, 근대의 모든 철학자들이 물어왔지만 결국 답은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질문에 답한 사람들의 결론은 자살 뿐이었다. 스스로 찾은 답은 삶의 허무함만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그만 살 이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유의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수만 년 전에 형성된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몸뚱이 위에, 현대인의 고질병인 디스크와 거북목, 탄수화물 중독 등을 받아들이며 이제 더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문득 지루해서, 요즘 괜히 우울해서, 그때는 행복했는데 지금은 안그래서 '사는 게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이 글을 읽으렴.

남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만 바보 같아서, 내 인생만 꼬인 것 같아서, 이런 모자란 내가 앞으로 남은 날들을 살 수 있을지 두렵고 불안해서 '나 같은 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울 때도 이 글을 읽으렴.


왜 살아야 하나 회의적으로 묻지만 유튜브의 건강 시리즈를 누구보다 경청하는 나. 내일이 오는 게 싫지만 막상 아침이 되면 성실히 청소하고 출근하는 나. 인생 그냥 막 살겠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잠깐 돈을 안 버는 정도, 그마저도 늘 전전긍긍하는 나. 삶의 의미란 바로 그 모순적 자연스러움, 갈망, 경험, 성취, 좌절, 그 모든 과정이다. 그냥 살아간다는 행위 그 자체다. 그 인생 전체에 있다.

'지금'이란 언제나 삶이라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이 지점을 통과하는 것 뿐이란다. 죽지 말고 나아감으로써 나 같은 것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다면, 진짜 죽는 날에는 나의 삶이 꽤 의미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의미는, 살아가는 것을 달성하는 것에 있다.


20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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