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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Dec 25. 2021

상처받은 청춘에게

네가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24살부터 28살 즈음까지 일기들을 봤어.


지금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는 복잡했고 미묘했고 순수했다. 

심지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네가 싫어하는 네 모습을 자꾸 보게 된다며, 

자꾸만 남의 탓을 하기 시작한다며,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벌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지.


단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가 너의 기대와 많이 달랐던 것 뿐인데, 

너는 거기 가면 너를 잃어버릴까봐 무서워했고, 몇 년을 도망가고 싶어했지.


마음이 아프다.

넌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에도 식당에서, 빵집에서, 텔레마케팅 센터에서, 편의점에서... 

참 열심히 살았는데 항상 일기에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뤄 놓은게 없다, 미래가 암담하다, 바보같다'  슬프고 아픈 말들 뿐이네.

그러면서 자꾸만 놀고 싶고, 쉬고 싶고, 울고 싶어 하는 너 자신을 많이 자책했구나. 그래서 많이 아팠구나.



하지만 안심하렴.

너는 머지 않아, 좋아하는 일도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던 그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도전해 보고,

그렇게 싫어하던 '마케팅'으로 돈도 벌어 보고, 심지어 마케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고, 여전히 지키고 싶은 너만의 키워드들도 잊지 않고 있단다.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겨서 - 더 이상 월세살이가 아니기 때문에 - 소중하다고 생각한 가치들에 대해 현실적인 도움도 줄 수 있게 돼.

물론 네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던 '죽은 회사원' -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 


네가 가야 할 방향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부조리함 속에서도 소신을 지킬 수도 있게 된단다.

상처 주는 사람을 찾아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똑부러지게 변할거야.  


안타깝게도 네가 그리던 '아름다운 사회'는 표면 상으론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지만, 그런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 마음이 모여서 조금씩 태동하는 것이 느껴져. 

더 이상 부당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학대 받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사회는 달라질거라 믿는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단절되고 붕괴되어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너는

네 천성이 나약하다고 해서, 우울하다고 해서, 가난한 문과 출신 여자애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버리렴.


그때의 네가, 우연히 구한 직업이나 직장 등에서 사회적 소명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전문가답지 못하거나, 크리에이티브 하지 못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해서,

네가 잘못된 건 하나도 없어.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맡은 바 일에 성실히 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는데,

너는 너의 열정을 의심하고, 부족한 자신을 비난했구나.

그건 그냥 그 업무들이 해 본 적 없는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인데 말야.

네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말야.


그때 너의 두려움을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무조건 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너는 좀 더 자존감을 가지고 어른이 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많이 생채기를 내며, 그래도 어찌저찌 꾸역꾸역 버텨온 네가 자랑스럽다.

이 삶과 행복과 꿈에 대한 책임감으로, 죽지 않고 살아 주어서 고맙다.

 


성선설을 믿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고 믿던 순진하고 미련스럽던 어린 청춘아,

지금은 타인이 아닌 네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렴.

천직을 찾지 못했다고 네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조바심 내던 너를.  


너무 많이 울지 말고, 너무 많이 외로워도 마.

네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지도 마. 너를 비난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어.

넌 그냥 네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해.   


모든 것은 네 탓이 아니란다.

네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안녕. 


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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