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의하는 정확한 단어의 힘에 대하여
Brand Marketer가 아닌
Context Manager라는 말을 찾기까지
일터에서 나는 오랫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케팅과 브랜딩이라는 필드에서 일하며, 세상이 규정한 전형적인 마케터의 인물상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애썼다. 애쓰다 보니 불편했다. 나부터도 풍부한 소비 경험, 감각적인 취향이 마케터의 자격 요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철저히 비브랜드적 소비 습관을 가진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로고보다는 가격이 중요했고, 취향을 쫓기보다 실용을 우선했다.
'이런 내가, 과연 브랜드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오랫동안 나는 이 질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늘 나를 향한 의구심과 검열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 속에서도 나는 계속 일을 이어오고 있었고, 그렇기에 질문을 바꿔 보았다.
'이런 나는, 과연 어떻게 브랜드를 해석하는가?'
내가 마케터로서 대단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의 내린 언어들이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그동안 날 괴롭혔던 모든 모순감은 어쩌면 '언어의 혼선'에서 비롯된 오해는 아닐까?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일반적인 사무일과 마케팅, 그리고 관리자의 일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느끼는데, 이런 일을 그냥 세상이 말하는 '마케팅'이라고 퉁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품의 화려한 스펙을 나열하기보다 그 제품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당위를 묻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반짝이는 유행을 좇기보다 그것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정리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았다. 나는 사람들이 왜 특정한 선택을 하는지, 감성적인 단어나 사진 한 장이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지, 그리고 조직과 브랜드가 어떤 태도를 견지할 때 고객의 신뢰를 얻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해 왔다. 또 어떤 메시지는 오해되고 어떤 말은 생명력을 얻는지, 왜 어떤 구조는 유연하게 흐르고 어떤 구조는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내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모든 비정형적인 것을 언어로 번역하고, 구조로 정리하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정립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사람과 시스템 사이를 중재하고,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언어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혹은 존재의 본질적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브랜드 덕후’의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다른 결의 능력, 즉 ‘의미를 다루는 설계자’의 일에 가깝다.
이 정의는 나의 개인적인 삶과 직업적 시간을 관통하는 가장 정직한 언어다. 이 문장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검열하지 않는다. 소비하지 않아도 통찰할 수 있고, 과시하지 않아도 설득할 수 있다. 맥락을 읽고 의미를 설계하는 힘,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나아가 나는 믿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협업에 용이한 사람이고, 협업에 용이한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맥락을 부지런히 가늠하고 공감하는 일이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서에도, 모든 대화에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언어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를 소모하지 않고, 억지로 증명하지 않으면서도,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단어. '맥락 설계자'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창조하고, 굳이 영어로 context manager라고 불러본다. 이 명확한 언어를 찾았을 때 나는 비로소 해방된 기분이었다.
나는 브랜드를 맹신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브랜드에 엄격하게 일해온 사람이다. 이 문장에는 모순이 없다. 오직 정확함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확함이 나를 좀 더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context manage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