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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Sep 08. 2020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 2

테넷

얼마만에 와 본 극장인지 모르겠다. 어쩐 일로 딸이 같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솔직히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도 안가주면 자기 딴에는 엄마 생각해주는데, 딸이 섭섭하게 여길까봐 따라왔다.


코로나로 극장에는 그녀와 그녀의 딸만 있었다.  카운터에 직원은 보이지 않고 직원 호출용 벨만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딸 말로는 뭐 시간 이동 영화라는데 그녀는 극장 문을 여는 순간 이미 그녀가 알지 못하는 상막한 미래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2/3는 가리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는 노인네들의 눈빛이 괜스레 싸늘하게 느껴졌다.

"야. 이런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거야?"

"응? 코로나 때문에 이런데도 사람 많이 짤렸어. 그리고 엄마를 누가 써줘. ㅎㅎ"

"아니. 저기 저렇게 테이블 닦고 의자닦고 하는거 나도 하고 싶은데."

"엄마. 그러다 코로나 걸리면 어쩌려고 요즘 50,60대 코로나 확진자가 제일 많은거 알지? 저런 일은 젊은 것들이 해야지. 어떻게 제일 취약한 어르신을 시켰데? 별로 아름답지 않네."

"젊은 사람들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저런거 하면 쓰나. 야. 나도 저런거라도 하면서 돈 좀 벌면 좋겠다."

그녀는 알고있었다. 젊었을 때 해야 할 일과 늙었을 때 해야 할 일. 그 때가 있다는 것.

그녀 역시 30대에 어르신들과 공공 근로 사업으로 하는 거리 쓰레기 줍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뭐 이런 짓을 하고 있냐!" 라고 호통 지던 할아버지의 말보다

"아이고 그런 소리 말어.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것어." 하며 위로 해주시던 할머니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었다. 낙오자가 된 기분. 그 자괴감.


영화제목은 테넷이었다. 뭔내용인지... 총은 계속 쏘고 음악도 시끄럽고 혼이 쏘옥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저 뒤로 걷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생각 했다.  


영화가 끝나고 딸과 커피를 마셨다. 딸은 평행우주가 어떻고 엔트로피가 어떻고 신나서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많은 대사와 장면과 이야기 중 그녀의 기억에 남은 것은 한 장면 밖에 없었다. 그것은 여주인공이 했던 말이었다.

"그가 그걸 봤어요. 아들을 포기하면 놓아주겠다고 했을 때 잠깐 흔들리던 내 눈을 그가 봤어요. 그가 봤다는게, 내가 잠깐이나마 흔들렸다는게 나는 너무 화가나요."

그 장면에서 그녀는 잠시 가슴이 저렸다. 그녀도 그랬다.  엄마로써 삼십여녀의 시간동안 수도없이 포기하고 싶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일 나가야 하는데 자기와 함께 있어달라고 하는 아이의 울음에 아이를 포기하고 싶었고 , 그녀 대신 아이들을 키우다 몸져 누운 그녀의 어머니 병수발을 들 때도 아이들만 없었어도 하며 수도 없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여주인공을 만나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다 그래요. 모든 엄마들은 다 그래요. 세상은 아이들이 축복이라고 하죠. 아이들은 축복이고 선물이죠. 하지만 자식은 다른것 같아요. 자식은 내 마음의 거울이에요. 그 순간 내 마음을 자식이 보여주죠. 자식을 포기하고 싶어했다고 자책할 건 없어요. 그건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던 거에요. 그럴 때는 아이에게만 미안해 하지 말고 자신에게 미안해하도록 해요. 자신을 더 잘 보살펴야 해요. 자신의 마음을 잘 닦아주고 살펴봐야 해요."


그녀는 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인다.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이 보였다.

울며 불며 메달리던 아이를 할머니 손에 맡기고 도망치듯 나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 역을 향하는 그녀의 젊은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모르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그녀의 딸이 웃으며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금발의 잘생긴 남자가 했던 말이었다.

"어린 것이... 세상을 좀 아시는 군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 큰 아이들에게 그 때 못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다. 모든 일은 그 때가 있고, 일어나야 하는 일이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그 일을 받아들이는 마음까지 결정 된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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