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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Sep 24. 2021

나는 콘텐츠가 없다.

'쓸만한 인간'박정민씨고마워요.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270일이 지났어요."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로 1년이 넘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쓰고 싶다. 하지만 쓸 말이 없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쓸 말이 없다. 무엇을 써야 하지?


후엠아이. 내가 누구인지 나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너무 싫어서 여기의 대부분의 글은 '그녀'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소진되었다. 너무 뻔한 아줌마의 일상.

애 학교에 보내고 유치원 등원시키고 친정에 들러 엄마, 아버지랑 커피 한 잔 하고 집에 와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나면 12시.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깐 라면 하나 끓여먹고 이제 나를 위해 뭣 좀 해볼까 하면 첫째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다. 아이 간식 주고 다음은 둘째 유치원에서 데려와 학원 보내고 도시락 설거지하고 또 학원에서 둘째 자식님 모셔오고 나면 저녁 식사를 차린다. 이렇게 하루를 살고 자기 전에 전화기를 보면 딱 만보를 걷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곳의 작가님들은 나보다도 더 바쁘지만 글을 쓰고, 또 잘 써서 진짜 작가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면 제삼자가 보기에 나는 한가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금요일 오전에 시간 있죠? 이거 강의 좀 들어보세요. 왜? 바빠요?"

"아니요.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 그래도..."

(이 시간은 내가 '오천만의 변호인' 도진기 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놀아도 스케줄은 있다.)

"그렴 들으세요. 좋은 거예요."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오늘 샤론 선생님에게 "초등교육 과목별 공부방법"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뭔... 초딩이 공부를 한다고.... 공부 방법까지 배우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듣고 나니.... 우리 애들이 정말 '뇌가 순수하구나'라는 생각은 했다.


매일 같이 강의를 듣지는 않으니깐 뭐 의미 있는?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지만 엉덩이를 의자에 댈 수 없을 만큼 바쁘다. 지금도 락스에 담가놓은 욕실화 꺼내서 헹구고 말려놔야 한다. 하지만 "작가님~ 보고 싶어요~"라고 부르는데야 뭐라도 대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니까.


배우 박정민의 "쓸만한 인간"이라는 책을 봤다.

연기 천재라고 남편이 엄청나게 추켜세운 배우. 그리고 전에 방구석 1열에서 본 그의 모습은 꽤나 내성적이었다. 영화를 위해 고려대를 자퇴하고 한예종에 입학. 나는 전혀 모르지만 남편 말로는 그렇게 어렵다는 영화과에서 연기과로 전과에 성공한 천재. (사실, 나는 천재라면 이유 없이 환장을 한다.) 그의 책이 나오고 나서 그의 인터뷰를 봤는데 꽤나 진지하게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만큼이나 뭔가 사색적이고 연기, 영화, 인생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돈 주고 사서 봤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내가 생각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는 내 상상보다 욕을 잘했고, 담배를 피우며, 내성적이라서 연애도 별로 못 해봤을 것이라 믿었는데(!) 적어도 나보다 연애를 많이 했다. (심지어 그는 나보다 한~참 어리다.) 'Topclass'라는 잡지에 2013년부터 써온 칼럼을 보은 산문집이었는데, 아.... 내용은 제목에 비해 심하게 가벼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박정민 배우가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찍을 갔을 때의 글이었다. 그동안 소규모 단편영화에만 출연하다, 장편영화장에 가보니 카메라, 음향 도구 등 무엇이든 다 크게 보였다. 거기서 작은 것이라고는 이제훈 머리통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하하. 


천재라는 타이틀(남편만의 타이틀 일 수도 있지만)을 가진 배우의 글이라고 믿기 어렵게 소탈하고, 그냥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 자신을 "쓸만한 인간"이라 표현하는 자신감. 


아무튼 고맙다. 나를 다시 노트북 앞에 앉게 해 준 책이다.

'쓸 것 없는 인간'을 뭐라도 '쓸만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해 줘서.


추가 : 아직도 부담스럽다. 주어가 '나'가 되는 글. 그런데 나 아직 작가 맞나? 너무 글을 안써서 짤리거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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