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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Mar 27. 2022

우아한 아줌마

우리동네 우아한 아줌마 Y에게!


'우아한 :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그녀는 자발적 소시오패스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육아휴직 중인 그녀는 스스로 사람을 사귄다는 것에 이력이 나 버린 상태였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도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는 고개만 까딱 인사를 했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책에 코를 쳐박았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다른 아줌마들하고 말 안해?"

"왜? 그래서 불편해?"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엄마만 놀이터에 만날 혼자 있으니깐. 엄마가 심심할 것 같아서."

"엄마가 저기 아줌마들 보다 나이도 많고, 엄마는 혼자 있는게 더 편해."


사실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를 둔 엄마의 능력은 휴대폰 연락처에서 나온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다른 엄마들과의 네트워크는 좋은 엄마인가? 덜 좋은 엄마인가?를 판가름 짓는다. 

육아면에서 그녀는 덜 좋은... 아니. 무능력한 엄마였다.


그녀는 아이의 태권도 도장에서 Y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태권도장에서 Y가 스스럼 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에 놀랐다. 

Y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그녀보다 어려보였고, 싹싹하고 깍듯한 태도는 참 호감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Y가 그녀보다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Y는 그녀를 학원 밴드에 초대해 주었고 이것 저것 알려주었다. 그녀의 뚱한 태도가 어색했는지 Y는 그녀의 아이를 칭찬했다. 

"그러게요. 저런 애에게 이런 똘아이 엄마라니. 뭐 그래도 다행이죠. 애는 엄마 안닮았으니깐"

"아니죠. A가 엄마 닮아서 당차고 똑소리나는 거였네요."

그녀의 '똘아이' 발언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이후, 그녀는 놀이터에서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Y는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다른 엄마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녀는 Y가 소개해주는 아줌마들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Y덕에 그녀도 드디어 좋은 엄마의 필수 요건인 그 네트워크에 조인하게 된 것이었다.


Y는 그녀와 동갑이었다. 회사를 다니다 바로 결혼하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고 했다.

Y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다. 아이들의 진상 짓에도 귀엽다는 말을 연발해주고,  화내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Y의 주변에는 항상 다른 아줌마들이 함께 있었다. 

그녀는 Y야 말로 최적화된 현모양처구나 생각했다.


Y와 조금 가까워진 후 그녀는 Y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인간이 좀 솔직해져봐. 진짜 애새끼들 저 진상 짓이 귀여워? 이뻐 죽겠어? 이거 가식이지? 내가 보건데 OO엄마는 현실캐릭터가 아니야. 신사임당의 재림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살아?"


놀이터에 Y와 그녀만 있게된 어느날이었다. (Y는 항상 다른 아줌마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대학을 왜 다녔나 싶어. 이렇게 애나 보고 살림하는 것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한건데 말이야. 나 벌써 갱년기 왔나봐. 자꾸 화가나. 애들이 나 무시하는 것 같고, 내 인생은 뭔가 싶어."

그녀는 Y의 이런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스러웠다. 

"이제 좀 사람 같네. 나는 OO엄마는 사람 아닌 줄 알았어. 너무 완벽한 아줌마라서."

"완벽한 아줌마... 그거 욕이야?" 

"아니. 미안. 내가 말을 잘 못 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아한 아줌마'라는 뜻이었어."

"에휴. 무슨...  우아까지... 나는 그냥... 평범한 아줌마지."


그녀의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던 일요일. Y는 우연히 그 얘기를 듣고 자기 집에 있는 해열제를 기꺼이 주었다.

그리고 아래 층 아이에게는 그 구하기 힘들다는 포켓몬 빵을 나눠주기도 했다. '1타3만'과 같은 알짜 정보를 아무 생각없이 사는 그녀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공연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Y는 다른 사람을 돕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고상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생색을 내거나 불편하지 않게하는 고상함이 있었다. 선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람 만나기 참 힘든데 말이다. 그녀가 만나왔던 그 누구보다도 Y라는 사람은 참 우아했다. 


사실 Y의 행동은 다른 어떤 아줌마들도 하는 행동이다. 가끔씩 자발적 소시오패스인 그녀도 했던 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줌마 모두가 우아한 것은 아니다. 행동에서 나오는 뭐랄까..... 암튼 무엇인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우아함을 만든다. 그리고 Y는 그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Y가 자신을 제대로 알기를 바란다. Y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요즘 유행하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동네 '인싸'라는 것도. 그리고, 전업주부로서 전문영역을 평정한 Y같은 사람들를 롤모델로 삼고 노력하는 임시 무직자들도 있으니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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