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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추 Aug 05. 2020

01. 해버렸다, 취업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이유는 뭘까

[00. 해버렸다, 퇴사] 글을 쓴 지 2개월이 흐른 지금

나는 중고신입으로 20년 상반기 공채에 합격했다.


이전 회사보다 업계 평판도 좋고

나와 같은 직종을 꿈꾸는 취준생들이라면 한 번쯤은 지원해보았을 기업이다.


합격 화면을 보는 순간 오열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왜 나는 이 기쁜 순간에 온전히 기뻐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돌아이인가?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요즘의 험난한 채용과정에 비해 "합격했습니다"라는 하나의 문구가 너무나도 담백하다고 느껴서 일까?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고, 기쁘지만 마냥 기쁘지 않은(?) 역설적인 감정이 피어올라 그 원인을 찬찬히 밝혀보고자 오랜만에 브런치를 찾게 되었다.




퇴사와 재취준의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파편들을 기록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재취준의 과정은 치열했고,

잠시 멈춰 서 기록할만한 여유조차 나지 않았다.


코로나의 여파로 6월까지 상당히 여유로운 취준생활을 보내다, 7월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인턴 도중 타기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어 2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반년만에 2번의 퇴사라니..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퇴사 후에는 곧바로 눈 코 뜰 새 없이 입사를 하게 되어 내 생에 가장 정신없는 1개월을 보내는 중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합격 화면’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인턴하던 회사 화장실에서 정확히 오후 6시 23분에 접하게 되었다.


내 생에 가장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보았던 창피한 면접이자 공격 또한 가장 많이 받았던 면접이었기에

전혀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합격 화면을 보는 순간, 말 그대로 벙쪘다.

기쁘단 생각보단 ‘아,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1. 퇴사와 동시에 목표로 삼았던 최애 기업의 전환형 인턴

2. 목표로 삼지 않았으나, 좋은 평판을 지닌 기업의 신입


인턴 vs 신입의 싸움에서

승기의 주도권은 당연히 '신입'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고민에 빠졌느냐..

그 답은 바로 '사람' 이었다.


1년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회사의 일원으로 지내며 깨닫게 된 점은 일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전환형 인턴의 면접 또한 신입 면접에 못지않게

치열했고 무수히 많은 단계가 존재했다.

(나의 추측이지만) 인턴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면접관이셨던 팀장님의 영향이 상당히 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해당 팀장님이 계시는 팀으로 발령이 났고, 겉으로 드러내시지는 않지만 '보잘것없는 나'라는 사람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봐주고 계신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인성의 문제를 떠나

사람 간 첫 만남, 첫인상, 케미가 주는 힘이 있다.

팀장님과 몇 명의 팀원분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아, 이런 분들 아래에서 일한다면 배울 점이 참 많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턴이 주는 리스크는 너무나도 컸다.

취준시장에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난 할 수 있다' 라는 긍정마인드보다는 '혹시 안된다면' 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모든 고민의 과정을 나열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이기에 결론적으로 나는 안정적인 '신입'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실패해도 상관없어'와 같은 패기로 가득 찼던 20대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현실과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은 서럽다. 아니 솔직히 많이 서럽다.

이러한 서러움이 '기쁘지만 기쁘지 못한' 감정을 생성해냈던 것 같다.

패기를 지니기에는 너무나도 얼어붙은 채용 환경,

자신의 선택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나이,

등등..


원인을 파악했으니 찡찡거림은 이 정도로 끝마쳐야겠다. 지금 택한 길도 내게 과분한 길인데, ‘사람’ 때문에 괜한 아쉬움이 들었나 보다. 선택은 끝이 났고, 새로운 길에 진입한 상태이니 이탈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 나가야겠다.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리!

잘 적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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