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고질

by 마디


오후 1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설거지 후 책상에 앉았다. 어제 잠들면서는 출근 전에 옆 동네 카페에 다녀올까 했던 것도 같은데, 막상 눈을 뜨니 어제보다 심해진 복통에 조금 더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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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도 열정도 없이 다 미루고만 싶어지는 요즘, 남아 있는 가장 적은 힘으로 쓰기만큼은 놓지 않으려 애쓴다. 어떤 문장도 부드럽게 쓰여지지 않고, 잘 써지던 날의 감각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다 보면 점차 살이 붙겠지. 유려하게 쓰여지는 날도 있겠지. 쓰기는 인내심 없는 날 버티게 만든다. 살면서 이렇게 막연한 믿음을 가져본 적이 있나. 눈앞의 성과가 없으면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 투성이지만 쓰기는 좀 다르다. 써야만 느껴지는 삶의 생동감은 평생 계속될 것 같다.



나는 나를 막연하게 믿어주지 않는다. 믿음이 깨지거나 기대가 깨지는 순간이 싫다. 세상만사야 어찌할 수 없으니 그렇다 쳐도, 나조차 거기에 포함해 버렸다는 건 꽤 슬퍼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어디에든 너무 큰 기대를 걸어버린다면 물론 커다란 실망이란 위험을 동반하겠지만, 작은 기대야 해볼 수 있지 않나. 설사 그것이 좌절되는 순간이 많다고 해도, 왕왕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서 예상치 못한 최애 곡을 들었을 때의 희열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은 기대가 불러일으킬 잦은 실망들을 대체 어떻게 ‘쿨하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더 쉽다고 섣불리 단정 지었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단점, 바로 ‘냉소’가 따라붙었다. '어차피 안될 거야. 나한테 그런 행운이 올 리 없어.' 그러나 아무리 스스로를 제어한다고 한들, 피어오르는 기대를 어찌 다 막을 수 있겠어? 사실 마음속 깊은 구석에서는 좋은 결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만 쌓여갈 뿐이다. 나는 바라는 게 없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가짜 만족을 연기하며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사고방식도 일종의 습관이라는데, 어느새 기대를 접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씁쓸하다.

실망할 일 좀 생기면 어떻다고. 고난을 없애주겠단 감언이설에 꾀어 실망에게 빼앗기는 것이 있다. 기대가 불러일으키는 ‘설렘’이란 감정이다. 설렘은 내일이 기다려지게 하고, 그런 기다림이 자주 반복되면 결국 행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뭐든 다가왔을 때 마음껏 기대해 보자. 실망과 자책과 창피함에 현혹돼 희망의 끈을 등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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