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워크숍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들어간 첫 학교에서 하는 첫 학부모 대상 강연이었다. 긴 학교생활을 막 시작한 1~2학년 학부모 가 대상이었다. 나는 기대에 찼다. 학교라는 곳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다르게 공교육이 제대로 시작되는 곳이기에 학교에서 하는 강연은 무언가 얻어갈 것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말 내가 학부모로서 아이의 독서습관을 위해 배워둬야 할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망을 금치 못한 두 시간이었다. 두 시간의 강연에서 포인트는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뻔한 얘기였다. 그 간단한 한 줄짜리 이야기를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에 늘여놓은 것뿐이었다. 이 포인트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육아서에서건 육아 강의에서건 수없이 읽고 들어 본 이야기였다. 요즘 책 육아 안 하는 집이 어디 있고, 책 안 읽어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독서의 중요성도 이미 많은 부모가 알고 있다. 초등 고학년, 중학생이 되어도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주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나도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이상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단 한 권이라도 안 읽어준 날이 없다. 부모가 읽어주는 책 읽기가 아이와의 관계 형성, 아이의 경청 능력, 어휘력 등등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핵심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점은 ‘그래서’ ‘어떻게’ 읽어줘야 하냐는 것이었다.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그다음에 어찌해야 하는지였다.
이 문제의 고민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부터 시작됐다.
첫째가 태어나고 초반에 책을 읽어줄 때는 무작정 글이라는 걸 읽어주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아이에게 맞는 책인지 어떤 건지도 모르고 책을 읽어주다가 내용은 이해하는지가 궁금해졌다.
또 첫째와 둘째 사이에 터울이 지다 보니 읽어줄 책 수준이 달랐다. 첫째 아이 위주로 고른 책은 아직 어린 둘째에게 어려웠고, 둘째 기준에 맞춰 선택한 책은 첫째에게 시시했다.
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한 첫째 아이의 난독으로 한글을 늦게 깨치다 보니 읽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나에겐 그래서 ‘어떻게’ 책과 친해지게 키워야 하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가 주된 고민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참 책을 안 읽었다. 아니 읽고 싶은데 못 읽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장마다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겁부터 났다. 정말 읽고 싶었다. 나도 폼나게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다니고, 어디서든 책 속에 푹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많은 책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도저히 선택할 수 없었다. 선택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게 더 정확했을 거다.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어느 책에서 찾아야 하고, 내 수준에 맞는 책은 어떤 거며,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이고, 글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이해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선뜻 골라내서 읽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러웠다. 나는 왜 그게 안 되었을까. 내 아이는 나와 같은 책에 대한 두려움이 없길 바라면서 차곡차곡 책과 친해지는 경험을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