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 같다.
약을 복용한 지 3주가 됐는데 약 먹기 전의 모습으로 도돌이표 되어버렸다.
3주 전 병원 진료를 받은 후 아이의 스트라테라 복용량을 늘렸다. 그동안 먹어왔던 복용량에 특별한 부작용이 없어서 의사가 용량을 더 늘려보자고 했다. 의사가 약을 먹으면서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는데 나는 내가 예전에 비해 아이에게 화내거나 잔소리하는 것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큰 변화가 있진 않았지만 그런 것 같은 기분은 있었다. 내 얘기에 의사는 보통 부모들이 아이에게 약을 먹인다는 안타까움이나 미안한 마음에 그리 말한다며 그런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의사는 부작용이 없으면 약 용량을 늘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약을 먹인다는 미안함은 없었다. 그보다는 아이가 이 약으로 조금이나마 부정적 피드백에서 벗어나서 이런 것들로 인해 혹시 모르게 생길 내면에 쌓일 아픔이나 분노를 덜었으면 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조급함도 없지 않았겠지만 아이가 학습적인 부분에 도통 집중력을 오래 발휘하지 못해서 오는 인내력의 한계였다. 한글을 깨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우리 아이다.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했다. 책을 읽으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이나 인과관계를 이해했고, 질문에도 적절하게 대답도 잘하고, 본인 나름의 생각이나 의견도 내는 아이였다. 그런데 도무지 가르쳐도 문자와 음가를 헷갈려하거나 읽을 때나 쓸 때 희한하게 글자를 빼먹고 삽입시키는 건 2~3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음절이나 조사를 누락하거나 비슷한 말로 대치시켜 읽기도 했다. 영어 파닉스처럼 한글 파닉스를 익히는데도 참 어려워했다. 내가 볼 때 아이가 한글을 통으로 이미지화해서 외우는 듯하게 보였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는데 오류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숙제 외에 했으면 싶은 추가적인 공부는 둘째치고 학교 숙제만이라도 시키려고 책상 앞에 앉히려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압력을 빼지 않고서는 정말 폭발할 것만 같았다. 겨우겨우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나 보면 조용하게 손과 눈이 부산스러웠다. 어떤 때는 글자 하나 쓰는데도 멍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그 작은 입을 가만히 쉬게 하는 법이 없었다. 작은 움직임, 소리에는 어찌나 반응이 빠른지 도통 집중이란 걸 붙들어 두지를 못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기 그지없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든 제학년 학교교육과정만큼은 제대로 따라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에 앉히려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의 아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앞서 나가는 모습에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이마다 다른 발달의 차이인지 지능의 차이인지 진짜 원인부터 파고들지 않으면 그저 내 새끼가 머리가 나빠서 못한다라고 단정 짓게 되어 버리던지 조금 늦을 뿐이라고 마냥 기다려주다가 적절한 교육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기를 놓칠 것만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소아정신과를 찾아 진단을 받았다. 시대가 바뀐 만큼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감기 걸렸을 때 내과 가듯 그런 곳이고 적절한 처방은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아직도 정신과 통원을 쉬쉬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해결책은 찾지도 못하고 엉뚱한 민간요법이나 하면서 지병처럼 달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 필요했다. 나는 내 아이를 오해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받은 ADHD 약은 효과를 좀 보는 것 같았지만 약효라는 게 금방 내성이 생기는 건지 3주 차 때는 그대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의사의 조언으로 복용량을 늘려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약이 만병통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이 없을 때 부수적으로 드는 에너지를 줄이고자 한다. 오롯이 아이가 사회에 잘 적응하고 지 몫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집중하고 싶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