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공부하거나 숙제를 할 때 나는 옆에서 종종 나는 책을 읽는다. 오늘은 4차 혁명에 대한 책을 읽던 중이었다. 가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궁금해하는 우리 집 꼬마는 한 번씩 엄마는 어떤 책을 읽는지 슬쩍 들여다본다. 수학 숙제는 하다 말고 내가 보던 책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엄마, 나 이거 치코 봉봉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야! 싱귤래러티(Singularity)!
한다. 좋아하는 영어 애니메이션에서 들어본 말이었나 보다. 어찌 용하게 영어단어를 알아봤을까 싶다가 나도 조금 생소했던 단어여서 얼른 검색창에 단어를 쳐보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기점’
앗! 싶었다. 4차 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음에도 나마저도 관련 어휘를 아이 덕분에 새로 알게 되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순간 관련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꼬마는 안타깝게도 수학은 어렵다며 자신 없어하던 차였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좀 더 재밌게 수학에 접근하는 법이나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의 근본적인 물음과 답변이 있는 영상을 찾아서 보여주곤 했다. 참 우연찮게도 오늘 아침에 보여줬던 영상 중에 수학과 인공지능을 엮어서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재미있게 설명해준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보여주면 싱귤래리티(Singularity)와 연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함께 영상을 다시 시청했다. 수학으로 인공지능을 만들고, 사람이 인공지능을 지배하려면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싱귤래리티(Singularity)에 대한 어휘를 설명해주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능이 같아지는 그 기점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아이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인간은 뇌가 있듯이 로봇의 뇌가 인공지능이라고 얘기했다. 사람이 공부하듯이 인공지능도 학습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고 묻길래 슬쩍 엄마 욕심도 껴 넣은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게 가르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공부한다는 신기한 얘기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로봇도 스스로 공부하는데 너도 그래야 하지 않겠니라며, 로봇이 스스로 학습하다가 똑똑해지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뭔가 떠오른 듯 아이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물었다.
“만약에 싱귤래리티 같은 시기가 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막연히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암울한 미래를 생각하며 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나는 좋을 거 같은데! 사람도 똑똑하고 로봇도 똑똑해지면 세상이 더 편해질 것 같아.”
의외의 대답에 좀 놀랐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깨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편견에 빠져있었나 보다. 아이는 나보다 더 흥미진진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문득 로봇이 아닌 사람으로 돌아가 싱귤래리티를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사람이 본인의 임계점을 넘는 어떤 시기를 맞이했을 때가 자신만의 싱귤래리티를 맞이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 일종의 티핑포인트 같이. 그러면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가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 아이가 꿈꾸는 미래가 밝은 것을 듣고 보니 안심이 됐다. 단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어야 할 임무가 나에게 주어진 듯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넘어서는 그 노력의 길은 길고 험난할 것이다. 나 자신도 아직 그 싱귤래리티를 맞이하지 못했고, 임계점을 넘지 못해 사실 방법은 잘 모르겠다. 이 점이 제일 두렵다. 자식에게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못할까 봐 말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으니 더 그렇다. 직접 지원해 줄 대단한 돈이나 백도 없다. 그저 방향이 맞도록 코치해줄 수 있는 게 전부다. 나는 그렇게 애쓸 거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브런치에 일기 같은 육아 일상을 쓰고자 한 이유는 나 자신의 티핑포인트가 되고, 나의 싱귤래리티를 맞이 할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흥미진진한 미래를 맞닥뜨릴 어느 날을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 우아하지 않은 일상을 매일 차곡차곡 쌓아 올릴 거다.